法으로 세상을 밝힌 이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김태훈 입력 2015. 5. 25. 14:34 수정 2015. 5. 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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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기택 부장판사 10주기, 조영래 변호사 25주기, 김홍섭 법원장 50주기 맞아 법조계 추모 물결
왼쪽부터 고 한기택(1959∼2005) 전 대전고법 부장판사, 고 조영래(1947∼1990) 변호사, 고 김홍섭(1915∼1965) 전 서울고법원장.

한기택 전 대전고법 부장판사, 조영래 변호사, 김홍섭 전 서울고법원장…. 뛰어난 실력과 빼어난 인품, 거기에 뚜렷한 소신까지 갖춰 법조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법조인들의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40, 50대의 아직 한참 일할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떠난 점이 공통적이다. 법률가들 사이에선 "법조인이 되레 법을 안 지키거나 법치주의를 후퇴시키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세 법조인을 향한 그리움이 더욱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말도 나온다.

목숨 걸고 재판한 판사, 한기택

2006년 한기택 전 대전고법 부장판사 1주기 기일에 맞춰 출간된 추모 문집 '판사 한기택'.

올해는 여름 휴가 도중 외국 휴양지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진 한기택(1959∼2005) 전 대전고법 부장판사의 10주기가 되는 해다. 한 전 부장판사는 100명 안팎에 불과하던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300명 이상으로 급증한 1981년 제23회 사시를 거쳐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이 그의 사시 및 연수원 동기생이다.

한 전 부장판사는 육군 27사단과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1986년 서울민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법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서울지법 동부지원(현 서울동부지법) 판사, 대전지법 강경지원(현 논산지원) 판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2005년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중 가족과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4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생전에 한 전 부장판사는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통했다. 퇴근할 때마다 사건 기록을 싸들고 집에 가 이튿날 출근하기 전까지 읽고 또 읽었다고 가족은 기억한다. 민주화 직후인 1988년 사법부에도 개혁의 기운이 몰아칠 즈음 그는 동료 소장법관들과 함께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제2차 사법파동이 일어나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이 스스로 물러나고 법원 내부는 물론 법조계 전체에서 신망이 두터운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해 사법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한 전 부장판사는 평소 지인들에게 "나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진정한 판사로서 나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하며 욕심없이 청빈하게 살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늘 '내가 하는 재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어딜 가나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성품 때문에 한 전 부장판사가 다녔던 성당 수녀조차 그가 숨질 때까지 판사란 사실을 몰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가 학창시절에 쓴 일기, 부인 이상연씨와 주고받은 연애편지 등은 2006년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추모 문집 '판사 한기택'(궁리)에 고스란히 실려 지금도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유족으로 부인과 큰딸 동연(30), 둘째딸 동아(29), 막내아들 동균(25)씨가 있다.

10주기 추모 행사는 그가 각급 법원 합의부에서 부장판사로 일하던 시절 배석판사로 만나 인연을 맺은 황진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이정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고홍석 대법원 재판연구관, 김정욱 변호사 등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고인과 더불어 개혁 성향의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한 박시환 전 대법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부정매입 사건 특별검사를 지낸 이광범 변호사 등도 참여한다.

시대를 밝힌 자랑스러운 변호사, 조영래올해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조영래(1947∼1990) 변호사의 25주기가 되는 해다. 이에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는 조 변호사를 기리는 '시대를 밝힌 자랑스러운 변호사 조영래 기념사업'을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변호사회에 따르면 조 변호사를 추모하는 기념사업을 위해 김선수(사법연수원 17기)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조영래 기념사업위원회'가 꾸려졌다. 김한주(〃 15기) 변호사가 부위원장, 여연심 서울변회 인권이사가 간사,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위원으로 각각 위촉됐다.

경기 성남 모란공원묘지에 있는 조영래 변호사의 묘. '조영래지묘'라는 다섯 글자만 적혀 있다.

조 변호사는 1984년 서울 망원동 수재사건의 집단소송, 1986년 여성 조기정년제 철폐 사건, 1987년 상봉동 진폐증 사건, 그리고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을 변론하면서 노동, 빈민, 공해, 학생 관련 변호에 진력해 국민의 신망과 존경을 받았고 오늘날 '인권변호사'의 귀감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1990년 조 변호사가 타계했을 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법조인 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그를 떠나보냈다.

기념행사는 오는 12월 11일 서초동 변호사회관 1층에서 열린다. 가족 대표 인사, 조 변호사 추모영상 상영, 흉상 전시 등으로 이루어진다. 행사에 앞서 11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변호사회관 1층 회의실에 조 변호사의 사진 및 자필 문서 등을 전시하는 등 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서울변호사회는 조 변호사 가족 및 지인들의 인터뷰 녹취록, 후배 변호사들의 추모글, 조 변호사의 상세연보와 지금까지 발표되지 않는 미공개 자료 등을 수록한 기념책자도 만들어 배포할 예정이다.

조 변호사의 숭고한 정신을 후배 변호사들이 실천을 통해 기릴 수 있도록 하고자 '조영래 인권상'을 제정한다. 이는 조 변호사를 본받아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큰 기여를 한 서울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를 뽑아 시상하는 것이다.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이번 기념사업이 변호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고취하고, 법조인들이 화합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복 안에 성의를 입은 법관, 김홍섭

올해는 '사도(使徒)법관'이란 별칭으로 더 유명한 김홍섭(1915∼1965) 전 서울고법원장의 탄생 100주년이자 서거 50주기다. 김 전 원장은 우리 법조계에서 '사법부 독립'의 기틀을 세운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검찰의 양심'으로 불린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과 함께 '법조 3성(聖)'으로 꼽히며 존경받는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해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그는 광복 후 서울지검 검사로 임용됐으나 검사직에 회의를 느껴 그만두고 농사를 짓다가 법원의 간곡한 요청으로 판사가 되었다. 이후 서울지법원장, 서울고법 부장판사, 전주지법원장, 대법원 판사, 광주고법원장을 거쳐 서울고법원장으로 재직하던 1965년 3월 간암으로 타계했다.

전북 전주 덕진공원에 있는 '법조 3성(聖)' 동상. 왼쪽부터 김홍섭 전 서울고법원장, 김병로 전 대법원장,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외형만 놓고 보면 법원에서 출세를 거듭하고 판사로서 화려한 생활을 한 것 같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고뇌 속에서 "법관은 모름지기 겸허한 자세로 인간의 기본적 인권과 양심을 중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탈색한 군복 바지에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양복 저고리를 입고 옆구리에 사건 기록과 단무지 도시락을 든 채 매일 집에서 법원까지 걸어다녀 청렴한 법관의 표상으로 꼽혔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며 처가에서 보내준 쌀가마니마저 되돌려 보낸 일화가 전해진다. 생전에 많은 사형수를 찾아다니며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수인(囚人)들의 아버지', '법의(法衣) 속에 성의(聖衣)를 입은 사람' 등 칭호를 얻었다. 그가 타계한 뒤 '사도법관'이란 호칭을 지어 붙인 이는 다름아닌 장면 전 국무총리였다.

앞서 서울고법은 지난 3월 12일부터 18일까지 법원에서 '사도법관 김홍섭 회고전'을 열었다. 현직 법관들과 생전 지인들이 말하는 선생에 대한 기억을 담은 녹취록, 그가 관여한 주요 사건들의 판결, 논문을 비롯해 사진자료, 글, 신문기사 등을 보여줬다. 최종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김 전 원장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공정한 재판을 했으며, 소외된 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했다"고 추모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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