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한 달 만에 첫 식량 구호.. 네팔 산지족 웃음 찾았다

글·사진 신상목 기자 입력 2015. 5. 25. 00:12 수정 2015. 5. 2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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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봉 월드디아코니아, 외부 손길 못미쳤던 산악마을에 2만 달러 상당 물품 전달

바람이 불었다. 우기(雨期)가 왔다는 신호일까. 습기를 흠뻑 빨아들인 바람은 거세졌다. 비포장도로 위의 흙먼지를 집어삼키더니 이내 흙바람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토네이도와 같은 돌풍이 몰아쳤다. 바람은 맹렬해 지진으로 주인 없는 집을 요란하게 흔들었고, 방수포 하나 걸쳐놓고 노숙하던 주민들의 보금자리를 날려버렸다. 휴일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여성들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공터에서 놀던 아이들은 "엄마"를 외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돌풍은 천둥과 번개까지 몰고 와 이미 폐허로 변한 거리의 쓰러진 전봇대를 때리며 불꽃을 일으켰다. 멀리 산 위에선 회색 먼지가 피어올랐다. 한 떼의 새들이 황급히 날아갔다. 한 달 전 대지진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데자뷔처럼 스치고 있었다.

23일 오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거리는 이렇게 묵시록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지난달 25일 세계 최대 빈국에 몰아닥친 지진은 사람들의 희망을 빼앗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 자기 집에 눕지 못하고 있다. 여진이 없는 날은 없었다. 주민들 사이엔 루머가 빠르게 퍼졌다. '네팔은 끝났다' '더 큰 지진이 올 것이다' '부자들은 탈출했다' 등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주민 800만명이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네팔은 이대로 종말을 맞는 걸까. 돌풍은 30여분간 지속되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곤 하늘이 열리더니 엷은 무지개가 드러났다. 약속의 무지개였다. 주민들의 얼굴엔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희망의 신호였다.

희망의 미소는 앞서 22일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0㎞ 떨어진 누아코트 설미 지역 주민들에게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날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 월드디아코니아(이사장 오정현 목사) 긴급구호단은 산지족 마을 620여 가구에 2만 달러 상당의 구호품을 전달했다. 구호품은 텐트 315개를 비롯해 쌀(25㎏)과 기름, 소금, 녹두 등 4인 가족이 한 달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이다. 이들 식량은 '달밧'이라 불리는 현지인들의 주식(主食) 재료다. 한교봉은 구호품을 현지 교회와 한인선교사회의 도움을 받아 마련해 트럭 5대에 싣고 전달했다.

누아코트 설미는 카트만두에서 차로 9시간을 가야 하는 산악지대다. 도로는 산비탈을 돌고 돌았고 마을까지 가는 본격적인 산행은 4시간가량 이어졌는데 깎아지른 듯한 경사로 비포장도로를 타고 올라야 했다. 도로는 군데군데 파여 있거나 갈라져 있었고, 트럭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해발 1500m 높이에 자리 잡은 마을에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주민들은 모두 나와 지켜봤다. 그리고는 웃었다. 여성들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코나 귀에 다양한 문양의 피어싱을 했고 빨간색 옷차림이 많았다. 티베트 라마불교의 영향이다. 남성들 역시 작은 키에 터번처럼 보이는 빨간 모자를 두른 채 몰려왔다. 이들은 '도리'라고 부르는 1.5m 길이의 줄과 '졸라'라는 다목적 손가방을 가져왔다. 쌀은 도리로 묶었고 나머지 식품은 졸라에 집어넣었다. 여성들은 도리 한쪽을 자신들의 이마에 두른 채 30㎏이나 되는 구호품을 지고 갔다.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이자 장로(長老) 격인 딜만 타망(55)씨는 "한 달 만에 주민들이 웃는 것 같다"며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진 직전 폐렴으로 남편을 잃고 6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카미마야 타마(50)씨도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자세로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그녀의 손은 거칠었고 까맸다. 타마씨는 이번 지진에서 그 손으로 자녀를 직접 구했다. 집이 무너지면서 자녀들을 덮쳤고 자신의 손으로 돌을 걷어내고 아이들을 끄집어냈다.

누아코트 설미는 지난달 대지진 이후 외부의 구호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곳이다. 지진으로 집과 가축우리 등이 무너졌고 주민 27명이 사망했다. 최근 프랑스의 NGO 단체로부터 받은 천막용 방수포가 유일한 구호품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그동안 무너진 집을 뒤져 벼를 꺼내 껍질을 벗겨내고 겨우겨우 끼니를 이어왔다. 이번에 공급된 쌀은 정제된 흰쌀로 곧바로 밥을 지을 수 있다.

긴급구호단과 함께 동행한 네팔한인선교사회 회장 어준경 선교사는 "지진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며 "산악지대 마을의 경우 곧 닥칠 우기에 대비해 안전한 임시 거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날 둘러본 누아코트 설미는 경사가 50도가 넘는 산비탈에 마을이 조성돼 있었고 매년 우기만 되면 산사태가 빈번해 주민 피해가 잇따랐다.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다니던 도로도 유실되는 일이 많아 1년에 3개월은 외지와는 단절된다고 한다. 이번에 장기간 비가 올 경우 주민들은 완전히 고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딜만 타망씨는 "비가 오면 마을의 상황이 심각해진다. 정부에선 가능하면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이번 구호품 전달에는 우루과이 출신 백인 여성도 참여했다. 딸과 함께 왔다는 산드라 로메묵(50)씨는 "인도에서 5년 동안 간호사로 봉사하다가 지진 소식을 듣고 왔다"며 "산지에 사는 사람들을 돕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교봉 월드디아코니아는 지난달 30일 1차 긴급구호 실사단을 파견해 카트만두 시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박타푸르 지역에 2만 달러 상당의 구호품을 전달했다. 월드디아코니아는 향후 긴급 구호를 위해 8만 달러를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또 기독 국제구호단체 연합인 '액트 얼라이언스'와도 협력을 모색 중이다.

카트만두, 누아코트 설미(네팔)=

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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