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기 지겨울 때, 숟가락 얹어도 될까요?.. 밥상과 밥상 잇는 '소셜 다이닝'

김상범·배장현 기자 2015. 5. 24. 21: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20·30대 1인가구 '46만'.. 집밥·대화 그리운 참석자 모여
취미 동호회보다 '평등함' 매력.. 일회성 만남 그치는 건 아쉬움

지난 14일 오후 7시쯤, 서울 마포구의 한 가정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갖은 음식 냄새가 훅 끼쳐왔다. "일찍 오셨네요. 아직 준비 중이라서…." 집주인 이미선씨(38·여)는 멋쩍게 웃으면서 분주하게 브로콜리를 썰었다. 5평 남짓한 거실은 주방과 식당 겸용으로 쓰인다. 6인용 테이블 위엔 락앤락 용기에 담긴 반찬과 썰다 만 당근, 고추 등이 널려 있었다.

이씨는 소셜다이닝 커뮤니티 '집밥'의 호스트다. 소셜다이닝은 각자 둥지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2030이 같이 모여 밥을 먹는 '밥상 모임'이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가정집에서 열린 '소셜 다이닝' 모임에서 김민석(가명)·황새롬(가명)·김우근·이미선씨(왼쪽부터)가 식사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상범 기자

이씨는 지난해 1월 같이 살던 친구가 나간 뒤 소셜다이닝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초대해 밥을 해 먹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2년째에 접어들었다. 이씨 집에서 열린 집밥 모임만 약 60회. 이씨 집의 문을 두드린 2030만 해도 어림잡아 200~300명은 거뜬히 된다.

이씨는 "집에 혼자 있으니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준 반찬들이 많긴 하지만 혼자 있을 땐 주방에 가지 않는다. 그게 싫어 소셜다이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음식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레시피를 보고 양과 간을 맞춘다. 냄비에 김치와 밥을 볶으며 굴소스를 뿌리던 이씨는 "실력보다는 빨리 조리하는 요령만 늘었다"며 웃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어색했던 기자가 수저 놓는 것을 거들 때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레 현관문이 열리더니 황새롬씨(31·여·가명)가 들어섰다. 물방울무늬 카디건과 청바지 차림에 짐은 없다. 친구 집에 놀러온 차림새다. 오후 7시30분, 강수현씨(26·여)와 김민석씨(37·남·가명)도 왔다. 아무래도 초면이라 서먹하다. 이씨가 준비한 김치볶음밥, 브로콜리 두부샐러드, 닭날개간장조림, 잡채, 양송이볶음이 상 위에 차려지자 서로 음식을 떠주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30분 뒤 마지막 참석자 김우근씨(28)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쯤엔 '베이비 펌이 잘 어울린다' 정도의 인사는 건넬 정도의 친밀함이 식탁 위에 퍼졌다.

지난 4월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로 본 서울 가족구조 및 부양 변화'를 보면, 2015년 서울시 1인가구 수는 약 98만가구(추정치)다. 20·30대 1인가구는 약 46만가구다. 서울시 1인가구의 절반이다.

참석자들은 '집밥'과 '대화'가 그리웠다고 입을 모았다. 황새롬씨는 집밥 모임에 이날 처음 참가했다. 혼자 산 지 10년이 넘었다는 그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돼 사람이 그리워서, 혼자 밥 먹는 것이 우울해서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 강수현씨는 "회사에서 말을 거의 안 한다. 회사 동료들과 업무 얘기를 하는 건 대화가 아니잖느냐.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말을 나누며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혼자' 말고 '같이' 먹는 밥이 그리워 소셜다이닝 모임을 찾은 이들이 이미선씨 집에만 있는 건 아니다. 15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자리한 요리 작업실 '머스터(MUSTER)'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집밥 호스트 김준용씨(33)와 김현수씨(23)가 주최한 소셜다이닝 모임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인상적인 30대 후반 김종훈씨는 서울에서 혼자 산 지 11년이 넘었다. 김씨는 "혼자 먹으면 늦게 먹고 많이 먹어서 배가 나오기 십상"이라며 "같이 먹어야 집에 들어가면서 운동이라도 가게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40회 넘게 소셜다이닝 모임에 참가한 단골 참석자다.

"왜 하필 '밥'이냐, 사람이 그립다면 와인 동호회나 직장인 야구단을 찾으면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참석자들은 '음식'이 주는 평등함을 얘기했다. 김민석씨는 "원래 와인 동호회를 나갔는데, 그런 건 취향을 많이 타잖아요. 잘 모르면 대화에 끼기도 어렵고. 집밥 모임은 그냥 밥만 먹으면서 얘기하는 거니까"라고 했다. 실력과 지식에 따라 눈에 안 보이는 '서열'이 정해지는 취미 동호회보다 음식 앞에서 훨씬 평등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집밥이 주는 편안함도 큰 이유다. 강수현씨는 얼마 전 취미 삼아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강씨는 "배우는 데 정신이 없어서 퇴근 후에도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편하게 한 끼 먹으며 쉬다 가는 느낌이 좋아 집밥 모임을 찾았다"고 했다.

기자가 찾은 '밥집' 모임에서 나온 얘기는 직장, 연애 고민 등 2030세대가 흔히 나누는 화젯거리였다. 마포구 모임 참가자 중 한 명이 "집에서 결혼하라고 성화"라면서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한 얘기를 꺼내자 다른 사람들은 "에이, 그 나이에 벌써?"라며 맞장구를 쳤다. 이태원 모임에서도 참석자들은 공감대를 조심스럽게 찾아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이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면 한두 명이 공감하고, 이태원 얘기를 하면 다른 한 명이 와본 경험을 이야기했다. 대학 시절 맛집 동아리 회장을 했었다는 김우근씨는 "음식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면서 "맛있는 식사와 달콤한 술, 즐거운 대화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며 웃었다. 낯선 사람들이 모인 자리지만 마음이 맞으면 긴 인연이 되기도 한다. 식사가 끝나고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최준영씨(33) 등 4명의 손님이 더 찾아왔다. 지난 1월 여기서 만난 것이 인연이 돼 지금까지 모임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관계의 지속성'이라는 면에서 집밥 모임이 언제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회성 만남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미선씨는 "하루 저녁 정말 재미있게 놀았는데 다음날이면 못 보는 게 아쉽다. 어차피 다시 안 볼 사람들이니까 자기 속내를 다 털어놓고 대화했나 싶다"며 "일회성 모임이 아닌 지속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작은 목표"라고 했다. 김종훈씨는 150회 이상 집밥 모임에 참석한 지인의 사례를 들면서 "뭐, 외로운 거겠죠"라고 짧게 평했다.

이진영씨(32)는 "소셜다이닝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집에 가도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슬픈 모임 아니냐"면서도 "직장인이 가장 피로해하는 시간에 따뜻한 밥 한 끼 나누자는 차원에서 시작했고, 그게 공동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 윤고은은 2010년 발표한 소설집 <1인용 식탁>에서 음식점에서 '혼밥'(혼자 밥을 먹음)하는 2030의 고독을 그렸다. 혼자 먹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다니는 화자는, 수료할 때가 가까워 오자 왜 이 학원의 수료율이 15%밖에 되지 않는지 깨닫는다. 화자는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혼자 자유롭게 먹는 방법이었으나, 정작 내가 얻은 것은 수강기간 동안 내가 혼자 먹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위안이었다"고 고백한다. 수료 후면 여지없이 혼밥의 세계로 던져지는 공포가, 윤고은이 본 2010년 현재 2030의 한 감정이었다. 그의 소설로부터 약 5년 후, '혼밥'의 어려움과 외로움에 지친 청춘들이 1인용 식탁을 들고 한 장소에 모여 밥숟갈을 들기 시작했다.

'혼자'를 편해 하던 청춘들이 새삼 '함께'를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평론가 정지은씨는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즐거운 상상이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씨는 "2000년대 초까지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서 혼자 우아하게 밥을 먹으며 비즈니스를 하는 상상이 가능했다"며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면 그것이 간혹 현실이 되는 일말의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지금 젊은 세대는 직장인이 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된다고 해도 세련된 환경에서 살며 '우아한 혼자'로 남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필 '한 끼 식사'를 하는 현상을 과거와 다른 "음식요리 부족(생활공동체)의 발생"으로 본다. 김씨는 "젊은 세대일수록 밥 먹는 행위에 문화사회적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다"며 "내 음식 취향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모인 이들이 만든 느슨한 공동체에서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로운 청춘들의 '한 끼 밥 만남'이 대안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 김헌식씨는 "소셜다이닝은 장애인, 독거노인, 기러기 아빠 등 불가피하게 '혼밥'하는 사람들의 복지 문제와 연결지을 수 있다"며 "전통사회가 해체된 시점에서 21세기형 식구 개념을 사유하는 데 소셜다이닝이 모티프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온라인에서 촉발된 관계의 특징은 한번 맺어지면 끊기 쉽다는 점인데, 소셜다이닝을 통해 만난 사람들도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며 "소셜다이닝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맺는 것은 지속적인 '관계'이기보다, 일시적 '접속'에 가깝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소셜'다이닝이 생겨나는 이유를 '사회'의 부재에서 찾는다. 이 교수는 "정부나 국가 단위에서 시민사회를 제대로 구성하고 가꾸지 못해, 단자화된 개인이 역으로 '소셜'을 갈망한다"며 "요즘 앞에 '소셜'을 붙이는 조어가 유행하는 것은 역으로 사회적인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배장현·김상범 기자 sayit@kyunghyang.com>

<김상범·배장현 기자 ksb1231@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