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서 불거진 보육대란, 교육대란으로 번지나

정은균 입력 2015. 5. 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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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지방교육재정 확대로 교육자치 실현해야

[오마이뉴스 정은균 기자]

지난 5월 20일 감사원이 지방교육청의 재정운용 실태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7월까지 실시되는 이번 감사에는 외부 감사위원 13명을 포함해 사회복지감사국 직원 전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서울, 경기 등 9개 지방교육청을 대상으로 하는 '특정감사'다.

현재 정부는 4조 원 가까운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청으로 떠넘기려고 한다. 지방교육청들은 열악한 지방교육재정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계산은 명백하다. 지방교육청들이 방만하게 편성한 예산이 있다면 한 푼이라도 밝혀내 누리과정 예산 전환에 따른 명분을 얻자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황찬현 감사원장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방교육재정과 관련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구노력을 한다면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음에도 방만하게 지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라고 발언한 맥락도 이와 관련될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도 언급했다. "학생 수는 계속 줄어드는데 복지기금이나 교직원 급여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은 맞지 않다"라고 한 발언이 그것이다.

학생 수 기준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아래 '교부금')을 '개혁'하자는 정부 복안은 오랜 전부터 있어왔다. 2000년 795만 명이던 학생 수는 올해 615만 명으로 22퍼센트 넘게 줄었다. 이에 반해 국세에 연동되는 교부금 규모는 2000년 22조 4000억 원에서 올해 39조 5000억 원으로 늘었다. 학생 수가 줄고 있으므로 교부금 규모를 늘리지 말고 배분 방식을 바꾸는 식으로 효율화하자는 정부 논리가 바탕을 두고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정부 논리는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학생 수가 감소한다고 해서 교육재정이 함께 감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의 질에 영향을 주는 교원?학급?학교 수 등이 학생 수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저출산 현상에 따른 학생 수 감소가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학급 당 학생 수와 같은 교실 여건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 까닭도 이와 관련된다.

우리나라의 교육지표는 전체적으로 열악하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중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33.4명으로 오이시디 평균 23.5명보다 10명 정도 많다. 그런데 이는 교육재정 한계로 학급 수가 줄어든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지난 4월 28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중학교 학급 수가 1600개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수 감소와 교육재정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와 같은 학급 수를 유지했다면 학생 수의 대폭 감소로 학급당 학생수가 올해 28.2명으로까지 줄었을 것이라는 게 정의원 측의 분석이다.

정부와 감사원이 대대적인 감사 국면을 조성하고 있는 이유는 결국 돈 문제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보육?복지?교육정책은 보편 시스템이 아니라 선별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보육?복지?교육비용 지원대상을 조건에 따라 선별해 차등화하겠다는 것이 기본 정책 기조다.

그런데 관련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 예산 규모를 더 늘리고 싶은 정책적 의지나 철학도 없어 보인다. 작년 말 국회에서 2015년도 예산안이 통과되자 정부는 복지예산이 115조 5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라며 홍보한 바 있다. 하지만 증가한 복지예산 9조 1000억 원 중 71.5퍼센트에 해당하는 6조 5000억 원은 정부가 복지 제도의 대상과 수준을 확대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자연증가분이라고 한다.

'복지' 싫지만 펼쳐야 하는 딜레마

복지는 싫지만 복지 정책은 펼쳐야 한다. 국민들이 그 결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 기조도 유지하고 싶다.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다. 이를 해결하려면 한정된 돈 문제를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13일 정부가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국가재정회의)를 열어 지출 효율화 명분으로 10대 분야 재정개혁 추진방안을 논의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지방재정과 지방교육재정은 10대 분야의 맨 앞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국가재정회의에서 논의한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누리과정을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한 뒤 교육청별로 누리과정 예산 편성 결과를 공개하게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다음해 예산 편성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교부금 배분 기준에서 학생 수 비중을 확대하고, 교원 증원과 정원 외 기간제 교사를 최소화한다는 계획도 나왔다.

문제가 많다. 지방교육재정 효율화가 아니라 지방교육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보여서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 의무화는 초?중등교육에 그대로 악영향을 미친다. 지방교육재정 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한 해 빚 이자만 1000억 원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적으로 편성하면 초?중등교육에서 그만큼을 포기해야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학생 수 비중을 기준으로 교부금을 배분하겠다는 방안이나 소규모 학교 통폐합 권고 기준을 마련해 재정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방안은 특히 치명적이다. 서울과 경기 등 인구가 몰려 학생 수가 많은 수도권 지역 교육청을 제외한 대다수 지방교육청이 예산상의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도시 구도심 학교나 농?산?어촌의 소규모 학교 등이 통폐합되면 지역 공동체가 고사되는 문제도 파생된다.

교원 정원 문제도 심각하다. 교원법정정원 확보율은 국민의 정부 시절 84퍼센트에 이르렀다가 참여정부로 오면서 82퍼센트로 떨어졌다. 그뒤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사상 최초로 70퍼세트대로 추락한 비율은 현재 70퍼센트대 후반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몇 년 전 학령인구 감소 추세를 명분으로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하여 교원법정정원 기준을 '학급당'에서 '학생당'으로 바꾸었다. 이나마도 예산 문제와 연동되는 공무원총정원제에 따라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 의한 교원 배치 기준에 따르더라도 현재 4만 명 정도의 교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교원 증원을 최소화겠다는 안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마땅히 지켜야 할 교육적 책무를 방기하다시피 하면서 외부 상황에 핑계를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 논란에서 촉발된 지방교육재정 문제는 결국 세금을 얼마나 걷어서 어떻게 나눠 쓸 것인가와 관련된다. 우리 정부는 걷히는 세금의 증가율보다 쓰는 돈의 증가율을 줄여 관리재정적자를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워왔다. 그런데 최근 3년간 이 목표가 달성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서울신문> 5월 14일자 보도(쓰는 돈 더 많은 나라살림… 현 정부 5년 재정적자 140조 예상)에 인용된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2~2014년 총수입 증가율이 각각 5.8퍼센트, 3.0퍼센트, 1.3퍼센트였던 데 반해 총지출 증가율은 각각 6.2퍼센트, 4.4퍼센트, 3.0퍼센트로 더 높게 나타나 해마다 그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나라 살림 적자 규모가 향후 5년간 140조 원에 이르러 역대 정권 중 최고액이 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경제 부진으로 인한 세수 부진을 이유로 들고 있다. 작년에는 정부 예상보다 세금도 덜 걷혔다고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적자 규모를 적정하게 관리하기 위해 덜 걷힌 만큼 최대한 씀씀이를 줄이고 내년 예산 편성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전체 국세 중 20퍼센트 정도 비중으로 할당되는 교부금 역시 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학생 수에 따른 교부금 차등 배분 지침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의무편성 여부에 따른 예산 차별 배정 원칙이 적용되면 지방교육청이 받게 되는 교부금 규모가 더 쪼그라들 수 있다. 전국 교육감들이 교육을 하지 말라는 얘기냐며 격렬하게 반발하는 이유들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논란에서 촉발된 '보육대란'이 '교육대란'으로 번질 수 있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 지켜야

해법은 나와 있다. 박 대통령이 누리과정을 책임지겠다고 한 지난 대선 공약을 지키면 된다. 이를 시·도교육청에 넘기고 싶다면 법적 충돌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시행령 개정이 아니라 관련 상위법령을 정비한 뒤 교육예산 총액을 높이는 방식을 쓰면 가능하다. 현재 국세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교부금 비중을 25퍼센트 정도로 올리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불필요한 예산 낭비나 비효율적인 예산 운용을 줄여 나라 살림을 건전하게 꾸려가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런 살림살이가 복지와 지방자치 중심의 사회 시스템으로 변해가는 시대 흐름에 맞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출을 최소화하는 데 골몰할 게 아니라 '중부담 중복지' 기조로 과감히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게 힘들다면 우선 대기업이나 고소득자의 세금 부담을 늘리는 방법도 있다. 이번 기회에 전체 예산의 80퍼센트를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종속 시스템에 손을 대어 진정한 의미의 지방(교육)자치를 확대하는 일도 고려할 만하다.

보육?교육?복지예산은 사람과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효율성이나 현실주의 논리로 재단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올해 누리과정에 드는 전체 예산은 4조 원 정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사이 부자 감세로 쌓은 돈은 150조 원, '사자방'(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에 쏟아 부은 세금은 100조 원 정도라고 한다. 사자방은 지금 각종 비리 의혹으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다. 국민 혈세를 누가 함부로 쓰는지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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