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잃어버리고 집에 갔더니 웬 쪽지가..

유정열 입력 2015. 5. 24. 17:36 수정 2015. 5. 2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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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한 이 염려하며 달려온 고마운 이웃.. 쪽지 한 장에 감동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유정열 기자]

5월 23일 토요일도 다른 주말처럼 오전 9시 30분에 성당에 갔습니다. 우리 성당 빈첸시오회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성당 주방에서 반찬을 네 가지 정도 직접 만들어 20여 가구에 배달하고 있습니다. 대상이 되는 가정은 대부분 생활이 매우 어렵습니다. 독거노인이거나 건강이 좋지 않거나 벌이가 거의 없는 가구인데, 우리가 배달하는 반찬들은 그들에게 유용한 양식이 되어줍니다.

나는 주위의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정방문 등을 통해 대화를 나누거나 반찬 등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빈첸시오회 회원입니다. 23일도 다른 주말처럼 성당에 가서 지난주에 걷어온 대상자들의 가방에서 반찬그릇을 다 꺼내서 회장과 같이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한 가구에 보통 그릇이 네 개 정도 되므로 한꺼번에 꺼내 모아놓고 설거지를 하기기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회장은 세제로 그릇들을 깨끗하게 닦고 나는 옆에서 헹구는 일을 했습니다. 여자 회원들은 전날에 시장에서 준비한 여러 가지 재료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감자를 까고 파를 다듬고 마늘을 빻기도 하며 그들은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뒤늦게 젊은 남자 회원이 한 명 더 와서 회장과 나, 그리고 그 이렇게 셋이서 여자들이 만든 반찬들을 깨끗하게 닦아놓은 그릇에다 알맞게 담는 일을 했습니다. 식구가 많은 집과 적은 집을 구분해서 양을 조절해 담았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늘 환한 미소를 자랑하는 회장이 지난 5월 18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그걸 거짓말처럼 찾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장소가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운동하는 근린공원이었다며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여자 회원들이 빨리 밥을 먹자고 해서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듣기로 했습니다.

20여 가구에 정성껏 만든 반찬을 배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건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므로 꼭 밥을 해서 점심을 먹습니다. 그날은 모두 10명의 밥상 공동체가 이뤄졌습니다. 내 가족에게 맛있는 것을 해준다는 마음자세로 만든 반찬이기에 우리들은 웃음꽃을 피우며 저마다 숟가락을 놀리기에 바빴습니다. 돼지불고기, 기름 냄새 물씬 풍기는 시금치나물, 카레, 상추 등이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었습니다.

20여만 원 현금과 카드 든 지갑을 잃어버리다니...

회장이 지갑 되찾은 이야기를 다시 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공원에서 귀중한 지갑을 찾았다는 말은 다른 여자 회원들의 눈을 회장의 입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도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어서 더 귀를 쫑긋 세우고 회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8일 퇴근을 하고 간단한 운동을 한 다음에 쉴 생각으로 그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갔습니다. 잔디가 깔려 있는 구장 외곽은 우레탄으로 트랙을 만들어 놨는데 거기를 몇 바퀴 돈 다음에 성당에 다니는 한 여자 신자를 만나서 함께 큰 원을 그리며 뛰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옆에 있는 장미공원에 가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다양한 꽃들을 구경했습니다.

지갑이 없어졌다는 걸 안 것은 바로 그 공원에서였습니다. 그는 얼굴이 완전 사색이 된 상태로 그동안 걸어 다녔던 곳과 뛰었던 곳을 두 눈을 크게 뜨고 샅샅이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두 번이나 찾아봤지만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지갑에는 현금이 20여만 원이 있었고, 카드가 5개나 있었습니다. 그는 재빨리 공원 관리사무실에 가서 지갑 분실을 말하고 방송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그 넓은 공원 곳곳에 그의 지갑이 분실되었으며 습득하신 분은 관리사무실로 갖다 달라는 내용이 방송됐습니다.

그는 방송이 끝난 후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카드 두 개의 회사로 연락해서 사용중지를 요청했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안 때부터 카드 중지 요청을 한 때까지 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넋이 완전히 나갔다고나 할까요. 누가 안 그럴까요? 내가 그 입장이라 하더라고 몹시 당황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걱정했을 겁니다.

그 일이 끝난 후 그는 힘이 쭉 빠진 상태로 아무런 힘없이 집에 왔습니다. 아, 그런데 집 현관문에 뭔가 네모난 쪽지가 하나 붙어있는 게 아닙니까? 매우 궁금해서 급히 뛰어가 그 쪽지를 봤습니다. 그걸 본 순간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혹 김**씨
연락주세요
※ 장미공원 운동중
   지갑건
108동***호
Tel. 010-****-****

"당신이 무사히 지갑을 찾았으니 됐습니다"

 잃어버린 지갑이 거짓말처럼 돌아온다면?
ⓒ 유정열
그는 그 쪽지를 떼어 거기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자기 이름은 영수(가명)라고 하면서 집에 있으니 지금 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쪽지를 손에 들고 가까운 곳에 있는 108동으로 빨리 갔습니다. 영수씨는 문을 열어주었고 거실 소파 옆 탁자에 놓여있는 지갑을 들고 나와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영수씨는 아주 짧게 이야기했습니다. 공원에서 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지갑을 발견하게 됐고, 그 안에 있는 주민등록증의 주소를 봐서 그렇게 쪽지를 남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걱정을 할까 하는 생각에 운동하던 걸 멈추고 집으로 바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영수씨의 말을 들으며 지금 자기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일이 아무리 해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지만 요즈음 하도 각박해서 보통의 경우 안에 있는 쓸모 있는 것은 다 꺼내서 자기 주머니에 넣고 빈 지갑은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영수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분실한 사람이 얼마나 걱정할까 오히려 염려하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다 말고 집으로 급히 와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고마워서 영수씨에게 다만 몇 만원이라도 고마움의 뜻으로 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영수씨는 몇 번이나 거절하면서 됐다고, 당신이 무사히 지갑을 찾은 것으로 다 된 것이라고 하며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회장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모두 끝났습니다. 맛있게 밥을 먹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들도 모두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회장은 아직도 그때의 감동적인 순간이 되살아나는 듯 얼굴이 사랑으로 흠뻑 젖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지 뒷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영수 씨가 따뜻한 사랑으로 정성들여 쓴 쪽지를 우리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줬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쪽지가 풍기는 사랑의 향기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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