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길 터주기 위반' 어떤 경우 단속되나

김지성 기자 입력 2015. 5. 24. 09:33 수정 2015. 5. 2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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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양천소방서의 도움으로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 차량에 동승했습니다. 대열 맨 앞 지휘차량에 탑승해 시민들이 얼마나 '길 터주기'에 협조하는지 취재했습니다. 출동 시간은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 2시로 정했습니다. 훈련 취지를 감안해 상대적으로 덜 혼잡한 시간을 택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처럼 꽉 막힌 시간에는 시민들이 길을 비켜주고 싶어도 비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덜 혼잡한 시간인데도 교통 흐름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이렌을 울리고, "길 터주기 훈련 중이니 옆으로 비켜 달라"고 방송을 해도 옆으로 비켜주지 않는 차량이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 상황처럼 사이렌 소리를 키우고, 다급하게 "출동 중입니다, 비켜주세요"라고 소방관이 외쳐도 봤지만, 앞 길을 막는 차량은 꼭 있었습니다. 갓길에 불법 주차한 차량들도 소방차의 출동을 더디게 하는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결국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기를 서너 차례, 반대편 차선의 차량이 소방차를 보고도 멈추지 않아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불과 3㎞ 떨어진 모의 화재 현장까지 출동하는 데 7분 50초가 걸렸습니다.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이른바 '골든 타임' 5분을 넘겼습니다. 실제 상황이었으면 인명 피해가 커졌을 수 있습니다.

● 블랙박스로 단속 가능…2011년 2건→2014년 204건

도로교통법 29조는 소방차나 구급차와 같은 긴급 차량에 모든 차량이 진로를 양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기면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科料)에 처해 질 수 있습니다. (도로교통법 156조)

하지만 행정 처분인 과태료를 부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안의 특성상 경찰 등 수사기관에 단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출동 중인 소방차나 구급차에 단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과태료의 경우 소방이나 의료기관이 직접 부과하는 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넘기면 지자체에서 심의를 거쳐 최종 부과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과태료의 부과 건수는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늘었습니다. 2011년 2건에 불과하던 것이, 2012년 51건, 2013년 98건으로 증가하더니, 지난해에는 204건을 기록했습니다.

적발 건수가 늘어난 데는 '블랙박스'의 공(功)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단속을 하려면 출동 중인 소방차나 구급차에서 내려, 위반 차량 운전자에게 적발 사실을 알리고 고지서를 발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거나 환자를 이송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이렇게 단속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화재 현장에 먼저 도착한 선발진을 통해 화재가 경미하다고 통보를 받은 후발 소방차에게 적발되는 경우 등만 가능했습니다. '자발적인 길 터주기 동참'이 절실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다가 2011년 6월 법이 바뀌었습니다. 도로교통법 160조 3항, 즉 '사진, 비디오테이프나 그 밖의 영상기록매체'로 단속이 가능한 유형에 '긴급차량 양보 위반'(도로교통법 29조 4항·5항)이 포함된 것입니다. 다시말해, 출동 중인 소방차나 구급차를 세우지 않고도,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만으로 단속이 가능해진 겁니다. 다만, 이런 경우 실제 운전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과태료는 '차량 소유주'에게 부과하도록 했습니다.

바뀐 법은 2011년 12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이후 과태료 부과 건수는 소방차나 구급차의 블랙박스 장착 비율에 거의 비례했습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전국의 소방차와 구급차는 모두 6,539대. 이 가운데 블랙박스가 장착된 차량은 4,827대로 전체의 73.8%에 해당합니다. 국민안전처는 올해 안에 모든 소방차와 구급차에 블랙박스를 장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자발적인' 길 터주기가 더욱 필요해진 이유입니다.

● 3회 불응시 단속 대상…가로막기·끼어들기도 단속

그렇다고, 적발된 차량에 모두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지자체에서 최종 판단을 하게 됩니다. 양 옆 차선이 모두 꽉 막혀 있어 옴짝달싹 못하는 경우는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경우에 과태료가 부과될까요?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비켜 달라는 경고 방송을 세 차례 했는데도 불응하면 일단 단속 대상이 됩니다. 이 중에서도 왼쪽 차로든 오른쪽 차로든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도 비켜주지 않을 경우엔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또 멀쩡히 옆 차로에서 가다 갑자기 차선을 변경해 소방차 앞을 가로막는 경우, 소방차들이 죽 늘어서서 가고 있는데 그 중간에 끼어들어 앞 소방차와 뒷 소방차의 간격이 벌어지게 하는 경우도 단속될 수 있습니다.

국민안전처는 도로 상황별 양보 운전 요령도 마련했습니다. 먼저, 교차로나 교차로 부근에서는 교차로를 피해, 즉 교차로를 지나 곧바로 오른쪽 가장자리에 일시정지해야 합니다. 일방통행로에선 오른쪽 가장자리에 일시정지하되, 오른쪽이 오히려 긴급차량 통행에 지장을 줄 경우엔 왼쪽 가장자리에서도 정지가 가능합니다. 편도 1차로에선 오른쪽 가장자리로 최대한 붙여 운전하거나 일시정지하고, 편도 2차로에선 1차로를 긴급차량에 양보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편도 3차로에선 긴급차량이 2차로로 진행하고, 다른 차량은 1차로나 3차로로 양보운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암기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조금씩 비켜주는 것이라고 국민안전처는 강조합니다. 긴급차량이 자신의 차량 오른쪽 뒤에서 오면 왼쪽으로 조금 비켜주고, 자신의 차량 왼쪽 뒤에서 오면 오른쪽으로 조금 비켜주면 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렇게 비켜주다가 신호 위반으로 무인 단속기에 적발되거나, 더 나아가 다른 차량과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요? 신호 위반의 경우 국민안전처에서 공문 등을 통해 협조해 준다고 합니다. '긴급차량에 길을 비켜주다가 그랬다', '불가항력적이었다'는 내용으로, 이럴 경우 구제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났을 땐 상대 차량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라도 보험 처리는 불가피합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앞에서와 같은 공문 협조 등을 통해 개인 과실 비율을 줄일 수 있다고 국민안전처는 조언합니다.

외국에선 어떨까요? 미국 오리건주에서 양보 위반으로 적발되면 720달러, 우리 돈 78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러시아에선 2~6개월의 면허 정지가 뒤따를 수 있고, 캐나다에선 우리 돈 34만~43만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소방차나 구급차가 지나갈 때 다른 차량이 일사분란하게 좌우로 길을 터주는 장면을 우리는 흔히 '모세의 기적'에 빗댑니다. '진정한 기적'은 과태료나 벌금, 면허 정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동참할 때 이뤄지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김지성 기자 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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