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계약직 내몰리는 대졸 취준생

권영은 2015. 5. 23.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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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Cover Story]

기업들 핵심인력 外 외주화 추세

파견업종 모든 사무직으로 확산

장기 취업준비 지친 대졸자들

"돈 벌며 경험 쌓겠다" 지원했다

저임금ㆍ차별ㆍ미래 불안에 눈물

대기업 정규직 등 괜찮은 일자리 얻기가 바늘구멍이 된 요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이 파견계약직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높아진 취업 문턱에 청년 산업예비군의 폭증과 고용 유연성을 높이려는 기업의 요구, 파견 업종 확대가 맞물린 결과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대학시절 항공사 지상직 근무를 꿈꿨던 이모(29)씨는 지금 A 외국항공사에 다닌다. 친구, 친척들도 그렇게 안다. 사실은 파견업체인 B사 소속 직원이다. A사의 한국지사에는 3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지만 진짜 A사 소속은 지점장을 포함해 3명뿐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 졸업, 학점 3.5점, 토익 935점, 영미권 교환학생, 금융권 인턴십, 예약발권시스템 자격증 등. 빠질 게 없는 스펙이다. 2010년 8월 졸업한 이씨는 양대 국적사에 3번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여자 나이 26세. 다음은 어렵겠다 싶었다. 수강료 150만원(3개월)인 항공사 지상직 전문학원을 다니면서 외국항공사로 눈을 돌렸다. 외항사는 학원을 통해 특채로 뽑아 혼자서는 채용정보를 알 수 없다. A사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한 이씨에게 면접관은 일은 A사에서 하지만 월급은 B사에서 준다고 했다. 파견계약이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연봉도 2,000만원이 안 됐지만, 일단은 하고 싶은 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요량이었다. 그렇게 이씨는 졸업 1년 6개월 만에 백수에서 벗어났다.

예약 업무로 첫 해가 금세 지나가고, 현실이 보였다. 동료들의 이직이 잦았다. 박봉 탓이다. 4년째 회사를 다니는 동안 월급이 10만원 올랐다. 보통 타 항공사나 여행사, 국내의 외국 관광청으로 회사를 옮기지만 들여다보면 또 파견계약직이다. 이씨는 "온 스태프(정규직)가 되는 게 목표지만 운이 좋아야 되는 일이라 높은 몸값으로 이직하는 것만 보고 버틴다"고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 등 괜찮은 일자리 얻기가 바늘구멍이 된 요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이 파견계약직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높아진 취업 문턱에 청년 산업예비군의 폭증과 고용 유연성을 높이려는 기업의 요구, 파견 업종 확대가 맞물린 결과다. 한 파견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공채를 뚫기 어려울 경우 파견계약직을 통해 경력을 쌓아 이직하겠다고 생각하는 대졸자들의 지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항공사는 물론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사무보조, 외국계 회사의 업무보조, 디자인 보조, 방송국 AD 등의 모집 공고에는 대졸자 이상이 지원 자격인 경우가 많다. 간접고용인 파견근로가 도입된 1998년 이후 초기에는 생산직이나 콜 센터 상담원, 비서직 위주였지만 업종이 계속 확대(26개 업무 138개 직업군에서 32개 업무 197개 직업군)돼 사실상 전 사무직으로 번졌다. 기업들도 비용 절감 등을 위해 핵심인력을 제외하고는 파견계약 등으로 외주화하는 추세다.

불안정한 파견계약직에 적지 않은 대졸 취업준비생들이 지원하는 것은 그만큼 답답하다는 방증이다. 취업 재수, 삼수 등 길어지는 취업준비기간과 경제 문제로 "돈도 벌고, 경험도 쌓겠다"며 과도기 노동으로 삼아 뛰어들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저임금과 차별적 업무환경은 물론 무엇보다 미래의 불안이 가득하다. 김민수 청년 유니온 위원장은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희망이 있다면 모를까, 과도기 노동이 확산되는 현상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mailto: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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