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밥은 먹고 다니세요?" 보이스피싱 받은 시민들 오히려 조롱

원선우 기자 2015. 5. 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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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상륙 10년… 당하기만 하던 시민들, 이젠 逆攻

‘밥은 먹고다니나’ 놀려

시민들 복수심리 확산

말꼬투리 잡거나 욕설

사기범 당황하게 만들어

“밥은 먹고 다니세요?”

직장인 윤정현(32)씨는 지난 14일 서울지방경찰청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서 이렇게 말했다. “네?” 주춤하는 상대의 틈을 윤씨는 놓치지 않았다. “쯧쯧, 요즘 사람들이 잘 안 속아서 먹고살기 힘들죠?” 사기범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윤씨는 “한 달에 네댓 번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는데 ‘요즘 실적이 어떠냐’ ‘고생이 참 많다’고 대응하면 오히려 그쪽에서 끊어버린다”고 말했다.

올해는 보이스피싱이 한국에 본격 상륙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초 피해 사례가 확인된 것은 2006년 5월이다. 당시 국세청을 사칭한 사기범들이 제주도 지역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세금을 환급해주겠다’며 접근했다. 경찰청은 “대만과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던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제주도를 시작으로 한국에 상륙했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지난해까지 7만6868명이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은 6536억원으로 집계됐다. 경찰청은 “실제 피해자는 최소 10만 명, 피해액 역시 1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보이스피싱은 한국인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KT는 지난 3월 한 달 동안 걸려온 보이스피싱 전화 건수가 7077만건으로 지난해 3월 2395만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5000만명 국민이 한 달에1.4회 이상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기 전화 발신 건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시민들이 예전만큼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점잖게 전화를 끊던 시민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윤씨처럼 ‘밥은 먹고 다니느냐’며 안부를 묻기도 하고, ‘무슨 검찰 직원이 그러느냐’며 일장 훈계를 하는가 하면, 대놓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사기범들은 황급히 전화를 끊기 바쁘다. 시민들이 대반격에 나서면서 사기범들이 굴욕을 겪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전화 4번째인데…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굴욕을 안겨주는 시민들의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인터넷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 등에는 ‘보이스 피식’ ‘보이스피싱 사기범 능욕’ ‘보이스피싱 역공’ 등 제목을 달고 있는 녹음 파일 200~300여개가 올라와 있다. 이 파일 내용을 들어보면 사기범에게 ‘고생한다’며 위로해주는 ‘연민형’이 가장 먼저 두드러진다.

#“제가 또 어떤 잘못 저질렀나요?”

최근 한 방송사가 공개한 녹음 파일에서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을 사칭한 전화를 받은 여성은 웃으면서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자 사기범은 “거 왜 웃으세요?”라고 묻는다. 이 여성은 “아니 자꾸 경찰·지검에서 전화가 와서요”라고 하고, 당황한 사기범은 “계속 이런 전화 받으셨어요?” 여성이 “네 지금 4번째인데”라고 하자, 사기범은 미리 준비한 대사로 공격에 나선다. “우리 여성분이 검찰 조사는 처음이시죠?” 계속 웃던 어머니가 옆에서 거든다. “여러 번 받았지.” 사기범은 더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린다. “아, 정말 웃겨.” 작업에 완전히 실패한 사기범에게 여성은 “아이고, 아침부터 고생이 많으시네요”라며 위로한다.

#“‘주소간’은 대체 무슨 직함인가요?”

‘자폭형’도 있다. 김재명(43) 건양대 의료인문학교실 박사는 지난 20일 ‘부산 고등검찰청 형사 1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아, 검찰이라고요? 연락처가 어떻게 되시죠?” “공오일에 육공’류’에 삼삼공공…” 시나리오에는 없는 ‘숫자 읽기’ 요청에 조선족 억양이 나왔다. 사기범은 당황했다. “실례지만 전화 거시는 분은 누구신지?”라고 김 박사가 묻자 사기범은 “네, 저는 양동진 ‘주소간’입니다”고 답했다. “네? 주소… 뭐라고요?” 전화는 거기서 끊겨버렸다. 김 박사는 “아마 ‘주무관’을 ‘주소간’으로 말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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