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日, 어두운 과거 숨긴채 '산업혁명' 과시하려다 제동 걸려

도쿄/김수혜 특파원 2015. 5. 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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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관련 "역사의 전모 알게 하라" '23곳중 7곳 강제징용 반영돼야' 국제학계가 인정한 것 韓·日 도쿄서 논의.. 한국 "반영 방식은 유연하게 대응"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권고안이 갖는 의미는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평하게 부각될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일본 남부 규슈(九州) 일대에 건설된 탄광·항만·제철소 등 스물세 곳을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이라 이름 붙이고, 이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지난 2001년부터 14년간 공들여 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ICOMOS에 제출한 보고서만 3000쪽 분량에 달한다.

문제는 이 스물세 곳 가운데 일곱 곳에서 태평양전쟁 말기 강제징용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나가사키현에 있는 미쓰비시 제3드라이 독·자이언트 크레인·옛 목형장(木型場)과 다카시마·하시마 탄광, 후쿠오카현에 있는 미이케 탄광과 야하타 제철소 등이다. 특히 '군함도' '지옥도'라 불린 하시마 탄광에서는 조선인·중국인 광부들이 최저(最低) 1000m까지 해저 갱도를 파고 들어가 하루 12시간씩 혹독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이 일곱 곳 외에 야마구치현에 있는 사학 '쇼카손주쿠'(松下村塾)도 일본인에겐 뿌듯하지만 한국인에겐 가슴 시린 곳이다. 스물아홉 살에 막부에 참수당한 사무라이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바로 여기서 메이지유신의 주역을 길러내는 한편,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征韓論)을 펼친 탓이다.

ICOMOS 권고안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일반 대중이 "역사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게" 하라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이 스물세 곳은 모두 1910년 이전에 건설됐기 때문에, 일본의 산업혁명 성과를 보여줄 뿐 식민지배나 침략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일본 역사의 성취를 보여줄 뿐, 그 성취가 타국의 고통으로 이어진 다음 장(章)에 대해선 눈을 감았다.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지가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정치적 주장을 가지고 들어올 일이 아니다"라면서 공개적으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ICOMOS는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ICOMOS 권고안은 또 "각각의 장소가 일본 산업화의 한 단계 혹은 여러 단계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강조하는 해석 전략을 준비해달라"고 명기했다. 일본은 스물세 곳을 보면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산업혁명에 성공했음을 뿌듯하게 느끼지만, 그에 이어 펼쳐진 장면이 침략과 수탈이라는 사실도 조명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국제 학계가 인정했다고 풀이된다. ICOMOS는 유네스코 산하 위원회 형태를 띠고 있지만, 국제기구라기보다 독립적인 전문학술단체 성격이 훨씬 강하다.

우리 측 대표로 협상 실무를 맡아온 최종문 한국 외교부 유네스코 문화협력대사는 "일본의 역사적 성취를 부인하자는 게 아니라, 식민지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강제징용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도 조명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 "ICOMOS 권고안은 국제사회가 우리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서 20일 서울을 방문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만나 "유감스럽게도 일본이 일부 시설에서 비인도적인 강제노동이 자행된 역사를 외면한 채 해당 시설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 하는데, 이것은 세계유산 조약 정신에 어긋난다"고 우리 쪽 우려를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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