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와 결혼, 해? 말아?

2015. 5. 2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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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연애와 다르다. 단순히 좋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선택하기엔 다양한 문제들이 발목을 잡는다. 14년을 알고 지낸 멀쩡한 남자친구의 청혼을 받고도 결혼을 망설인 이유들.

이름 김보라. 방년 34세. 올해 5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10년지기 친구가 4년 전 갑자기 남자로 보였고(술의 도움이 컸다), 우린 연인이 됐다. 그와의 연애는 항상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진지하게 '결혼하자'고 말했을 때 난 즉시 '수락'할 수는 없었다. 그를 결혼 상대로 바라보는 순간, 연애할 땐 대수롭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와의 결혼이 무작정 싫었던 건 아니다.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라고 생각해 그를 동반자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가장 고민되는 것과 그것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야만 했다. 넌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그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스무 살 때부터 같은 과에서 마음이 잘 맞는 친구 10명 정도가 혼성 그룹처럼 항상 몰려다녔는데 둘 다 그 그룹의 멤버였다. 다 함께 모여 술 마실 때면 안주처럼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가끔 19금 이야기까지 털어놓곤 했다. 거기다 CC였던 내가 캠퍼스에서 벌인 모든 연애 행각도 그는 소상히 알고 있었다. 배우자가 몰라도 될 과거까지 낱낱이 알고 있다는 건 분명히 큰 문제였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니 그가 나에 대해 아는 만큼 나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선제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방패는 최소한 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겐 너무 무뚝뚝한 너그는 내 손을 5분 이상 잡고 있지 못한다. 사람들 앞에서 사소한 스킨십도 어색해 한다. '보고 싶어' '사랑해'라는 말은 둘이 있을 때조차 잘하지 않는다. 이런 남자와 산다면 머지않아 다른 살가운 남자와의 일탈을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표현은 서툴러도 조용히 뒤에서 챙겨주는 타입인 그에게서 조련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자체적으로 정한 '삼사오보(하루에 세 번 사랑한다, 다섯 번 보고 싶다 말하기)' 미션을 그에게 던져줬다. 강제성을 띠긴 했지만 어색해 하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에서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보수적인 부모님 설득하기"전라도는 절대 안 된데이." 사윗감에 대한 부모님의 기준은 확고했다. 모든 면에서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부모님이지만 지역 감정 하나만큼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분명 전라도 남자인 그와의 결혼은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했다. 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라고 시켰다. 차로 6시간을 달려 부모님이 계신 포항으로 갔다. 연봉 공개로 시작해 결혼 후 가정을 경영할 방법, 바쁜 아내를 위해 남편으로서 자신이 할 것들,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책 등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믿음직한 사윗감이라는 인식까지 심어주면서. '장남'이란 이름의 한국 남자형제라곤 아래로 여동생 한 명이 전부지만 어쨌든 그는 장남이다. 한국에서 장남은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진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바꿀 수 없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스스로 장남의 무게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평생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책임을 나눠 가질 자신이 없었다. 진심 없는 행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결국 막내로 자란 내게 친오빠가 한 명 더 생긴 것으로 마음먹었다. 덤으로 좋은 부모님까지! 이 생각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외에도 내가 꿈꿔왔던 이상형과 전혀 다른 외모, 고집스러울 만큼 확실한 취향, 소비의 미덕을 모르는 짠돌이 성향 등 많은 부분이 고민 리스트에 올랐다. 스릴 넘치는 '연애의 정글'에 더는 발붙일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했다. 결혼 결정을 앞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문제와 각자 사정에 따른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오죽하면 '메리지 블루(결혼 전 이유 없이 찾아오는 우울증)'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체크리스트를 정리하면서 하나씩 해답을 찾아가다 보니 근본적인 답은 하나였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고 싶다면 감수해야 할 부분들이 당연히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그때마다 함께 의논하고 해결책을 찾으면 되니까.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믿음으로 일단 결혼의 세계로 뛰어들기로 했다. 지레 겁먹고 해보지도 않은 채 후회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

editor 김보라 photo 전성곤 design 최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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