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 보기] 아웅산 수지, 로힝야족 사태에 침묵하는 이유

김세훈 기자 2015. 5. 2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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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대표하는 야권 지도자 아웅산 수지가 입을 다물고 있다. 미얀마에서 출발하는 '보트 피플'로 최근 국제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족 난민 사태에 대해서 말이다. 군부정권에 맞서 싸우며 201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해 민주주의, 인권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아온 수지의 과거 모습은 사라졌다. 이에 대해 가디언, AFP통신 등은 수지가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 실리주의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안먀에서는 오는 10월 총선이 열린다. 현재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현재 상원에서 224석 중 4석, 하원에서 440석 중 37석에 머물고 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불교도의 표심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불교도들은 로힝야족을 혐오하고 흉기를 이용한 살상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수치 측근은 가디언을 통해 "지금 수치가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 입을 열면 다수 불교도들의 표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도 "수지도 (로힝야족 사태에) 가슴아파하고 있다"면서 "수치는 일단 선거에서 이겨야만 로힝야족 문제도 제대로 다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아웅산 수지. AP연합뉴스

수지는 최근 국제적인 언론과 인권단체로부터 로힝야족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아왔다. 그러나 2010년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뒤 정치적인 논란거리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껴온 수지는 로힝야 난민 사태에 대해서도 줄곧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지난주 냔윈 NLD 대변인은 "수지가 여행 중이라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서 대신 논평했다. 그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바다로 나서는 이슬람 사람들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로힝야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고 수지의 뜻을 대변한 발언도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는 "그들을 인권이 있는 사람으로 보고 시민권을 줘야 하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파키스탄 언론 '더네이션'은 "NLD는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선거에서 승리를 노리고 있다"며 "수지도 '선거 수학'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한 정치 분석가는 더네이션을 통해 "수지는 과거에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일이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해왔다"면서 "그러나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수지가 침묵을 지키는 게) 현실적으로 이해도 된다"고 말했다.

미얀마에 사는 로힝야족은 130만명 안팎이지만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 수학적 선거논리에서는 의미가 거의 없다. 호주국립대학교 미얀마연구소 니콜라스 페렐리 소장은 "수지와 그의 당은 선거 수학에 집중하고 있다"며 "그들은 NLD가 로힝야족에 대해 너무 온건하다는 느낌을 주면 표를 잃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군부에 지지를 받고 있는 여권도 입을 다물기는 마찬가지다. 역시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불교도들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권은 로힝야족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로힝야족 난민 문제를 국내가 아닌 '국제 이슈'라고 주장하며 발을 빼고 있다. 가디언은 "지금 수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수지가 무슬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수지를 깎아내리고 있다"며 "어쨌든 선거를 앞두고 누구든 로힝야족에 대해 언급하는 건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얀마 대통령은 테인 세인이다. 오랜 군부정권 이후 2011년 민주선거를 통해 선출됐고 임기는 5년이다. 수지는 2008년 군부가 주도해 제정한 헌법에서는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없다. 이 법은 군부의 정치참여와 규율을 전제로 한 다당제 민주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전체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군에 대통령 후보 추천권한도 주고 있다. 대통령 후보자의 자격조건으로 배우자와 직계가족이 미얀마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영국 남자와 결혼한 수지는 현재 헌법 하에서는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다.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박은홍 교수는 "수지는 군부의 환심을 사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속에서 보수적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미얀마에 더 많은 진보를 가져올지, 반대로 마얀마를 더 강한 보수로 귀결시킬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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