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감독들 단장의 '꼭두각시' 되나

이용균 기자 2015. 5. 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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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마이애미의 제프리 로리아 구단주는 '괴짜'를 넘어 '악당'으로 묘사된다. 팀의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대신 유망주들의 성장을 기다렸다가 비싸지면 팔아치우기 일쑤였다. 팬들은 정들었던 선수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울화통이 터졌다. 지난 겨울 리그 홈런왕 지안카를로 스탠튼과 역대 최고액인 13년간 3억2500만달러라는 엄청난 계약을 했지만 스탠튼을 13년동안 데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팬들은 거의 없다.

로리아 구단주가 다시 한 번 사고를 쳤다. ESPN조차 "미친 짓"이라고 평가했다. 로리아 구단주는 18일 마이크 레드먼드 감독을 해고한 뒤 댄 제닝스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제닝스는, 마이애미의 단장이었다.

감독 경험은 커녕, 코치 경험도 없다. 심지어 메이저리그에서 뛴 적도 없다. 대학때까지 투수를 했지만 신인 드래프트 때 지명받지 못했다. 1984년 테스트를 통해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됐다. 1986년 신시내티 스카우트를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프런트로 일해 온 인물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단장과 감독은 역할이 구분된다. 단장이 구단 선수 구성을 맡는다면 감독은 실제 경기의 운영을 맡는다. 그런데, 현장 경험이 없는 단장이 감독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ESPN은 "야구를 쉽게 생각하는 프런트가 미친 짓을 했다"고 평가했고 NBC스포츠 역시 "황당한 사건"이라고 전했다.

제닝스 신임 감독은 이날 자신의 감독 데뷔전인 애리조나전을 앞두고 "내 어머니도 '제정신이냐'로 물으실 정도다"라면서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논란에서 시작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제닝스 감독은 "감독은 팀의 26번째 선수다. 감독은 팀을 패하게 할 수 있다. 승리를 거두는 것은 선수들"이라며 자신의 역할보다 선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닝스 감독의 발언은 최근 메이저리그의 감독 선임 흐름과 맞물리며 의미를 지닌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밀워키 역시 지난 5일 론 로에니키 감독을 경질한 뒤 크레이그 카운셀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했다. 카운셀 역시 코치·감독 경험 없이 단장 보좌로 일하다가 바로 감독이 됐다. 최근 2~3년 사이에 코치·감독 경험이 없는 인물들의 감독 직행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로빈 벤추라를 시작으로 콜로라도의 월터 와이스, 디트로이트의 브래드 어스무스,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크 매시니 등이 모두 코치·감독 경험없이 곧장 감독이 된 인물들이다.

이들의 '장점'으로 평가받는 부분은 모두 경기 내에서의 전략이 아닌 팀을 이끌고 가는 리더십이다. 화이트삭스는 로빈 벤추라 감독을 결정할 때 미국내 리더십 관련 전문가들의 평가를 참고로 했다. 마이크 매시니 감독 역시 은퇴 뒤 리틀야구를 이끌었고, 당시 어린 선수들과 부모에게 강조한 덕목들이 화제를 모았다.

감독의 역할이 경기 운영이 아닌 '리더십'에 방점이 찍히는 것은 그만큼 야구라는 경기 자체가 '시스템화'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40년 동안의 경험과 함께 측정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세밀한 부분까지 분석이 가능해졌다. 상황에 따른 '전술'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유행하는 수비 시프트는 데이터에 따른 결정이다. 불펜 운영 역시 해당 투수의 적정 투구수, 좌우타자에 따른 스플릿 성적 등 어느 정도 '답안지'가 있다. 정해진 틀 안에서 '결정'만 하면 되는데, 그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

시스템이 강화됐고, 그 안에서 '루틴'이 정해졌다. 야구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는 역할은 강화됐고, 감독의 역할은 축소됐다.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은 것도 영향을 미친다. 스탠튼은 3억달러가 넘는 금액을 받지만 메이저리그 감독의 연봉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기껏해야 200만~300만달러 수준이다. 감독의 역할은 탁월한 경기 운영보다는 '비싼 선수들을 어떻게 팀으로 모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지'에 집중된다. 메이저리그의 산업규모가 거대해지면서 생겨난 흐름이다.

그럼에도, 야구는 야구다. ESPN은 제닝스 감독의 선임을 두고 "책상에서 바라보는 야구와 더그아웃에서 보는 야구는 완전히 다르다. 앞서 초보 감독들은 선수로서 오랫동안 미디어를 상대해봤지만 제닝스는 그런 경험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단장 출신 감독이 과연 선수들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겠냐는 점이다. ESPN은 "제닝스 감독이 우선 싸워야 할 것은 상대팀이 아니라 제프리 로리아 구단주의 꼭두각시라는 이미지"라고 꼬집었다.

어쩌면 균형이 성적을 만든다. 최근 5년간 3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가장 큰 힘은 브라이언 세이빈 단장과 브루스 보치 감독의 찰떡호흡이다. 세이빈 단장은 "각자 분야의 최종 결정권은 분명히 각자에게 있다는 점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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