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는 떠다니는 관.. "차라리 미얀마에서 죽을걸"

김세훈 기자 2015. 5. 1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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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로힝야족 실상 보도.. 살인·탈수·질병 등 '처참'국제사회 따가운 시선에 태국·인니·말레이 '곤혹'

"일가족 모두 몽둥이에 맞아 숨지는 걸 봤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의 시신이 바다에 던져졌다."

지난 17일 인도네시아 아체주 앞바다에서 구조된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족 모함마드 아민(35)은 미얀마를 떠나기 위해 타고온 배에서 벌어진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마누 아부둘 살람(19)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칼과 망치로 오빠를 죽였다"며 "보트 생활이 이렇게 참혹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미얀마에서 죽을 걸 그랬다"고 말했다. 모하메드 살림(30)은 "선장과 선원이 엔진을 망가뜨린 뒤 배를 버리고 도망간 지 2개월 됐다"며 "탈수, 기아, 질병, 폭행으로 배에서 죽은 사람이 최소 100명"이라고 했다. 가디언, BBC 등 외신들을 통해 전해진 난민들의 실상이다.

BBC는 난민들이 남은 음식을 놓고 싸우고 있으며 "오줌을 마시면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난민 보트에 접근한 알자지라방송은 "많은 사람들이 설사에 걸렸고 물도, 음식도 없다. 미쳐서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사람도 10명을 넘는다"는 난민의 목소리를 소개했다. 정부의 핍박을 피해 말레이시아로 가겠다며 많은 돈을 내고 배에 오른 로힝야족의 상황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이들을 돕고 있는 구호단체 직원은 "옷과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 짐승처럼 지내고 있다"고 했고, 파르한 하크 유엔 부대변인은 이들이 타고 있는 배를 "떠다니는 관"이라 표현했다.

로힝야족의 탈출과 좌초는 현재 진행형이다. 17일까지 6000~8000명이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인근 해안에 떠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받아주려는 나라는 없다. 태국은 이미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인도네시아도 난색을 표했다.

수년 동안 4만5000명을 받은 말레이시아도 "받을 만큼 받았다"는 입장이다. 무히딘 야신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로힝야 문제는 자국 내에서 다뤄라"고 미얀마를 압박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난민을 발생시킨) 미얀마·방글라데시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자우 흐테이 미얀마 대통령실장은 "난민들을 영해 밖으로 쫓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며 오히려 주변 국가들을 비난했다.

로힝야족은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1000년 이상 살아온 민족이다. 건국영웅 아웅산 장군이 다민족 공존을 위해 노력할 때만 해도 큰 핍박은 없었으나 1962년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했다. 1991년 정부군의 대규모 공격 속에 12만5000명이 집을 잃었고, 2012년에는 불교도들의 공격으로 200여명이 숨졌으며 14만명이 난민이 됐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 사태를 "인종청소"라 규정했다. 처음에는 종교 갈등으로 시작됐으나, 지금은 다수 민족인 버마족의 극단적 인종차별로 비화됐다.

정부는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에서 밀입국한 사람들'로 몰아붙이며 국적·투표권·학습권 등을 주지 않고 있다. 미얀마는 2011년 선거로 테인 세인 대통령이 선출된 뒤 민주화 과정을 걷고 있으나 유독 로힝야족에게는 강경하다. 오는 11월 총선을 의식한 때문인지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야권조차 입을 다물고 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 등 15개국은 20일과 29일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회의를 주도하는 태국의 쁘라윳 짠오짜 총리에게 18일 전화를 걸어 "난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다뤄 달라"고 요청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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