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갈등 해법을 찾자] 연금 곳간 채울 확실한 방법은 '출산율 높이기'

문수정 기자 2015. 5. 18.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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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민연금 장기 재정 안정화 대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마치 이 영화 제목을 웅변하듯 현재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에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당사자'는 노인이 아니다.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에 반대하는 정부는 2060년 이후 미래의 젊은 세대를 걱정하고 있다.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측도 현재의 젊은 세대가 당장 마주하게 될 부담을 우려한다. 연금제도를 논하면서 현세대든 미래세대든 '노인'과 '노후'에 대한 논의는 최대한 배제돼 있다.

'부담 떠넘기기'란 표현이 연금제도 논의의 전면에 부상한 것은 연금 재정 위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재정에 문제가 생기면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젊은 세대가 즉각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보험료를 더 걷고 연금 지급액을 깎아나가며 비용을 절감해도 기금은 언젠가 바닥을 드러내게 돼 있다. 보험료를 더 걷거나 연금을 덜 주는 것 말고 국민연금 재정을 살찌울 방법은 없는 걸까.

해답은 뜻밖에도 간단하다. 전문가들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2013년 3차 장기 재정추계 보고서'에도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출산율 제고 등 인구정책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적혀 있다.

◇출산율 1.4명 vs 2.1명의 차이=국민연금 제도를 지금처럼 유지하면 2060년 기금이 고갈된다는 게 '2013년 장기 재정추계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재정추계는 인구전망(출산율·사망률), 거시경제 변수(경제성장률·임금상승률·물가상승률·금리 등), 제도 변수(보험료율·가입률·징수율 등)에 따라 달라진다.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2028년 이후)=2060년 기금 고갈'이란 추계는 출산율이 2010년 1.2명, 2020년 1.3명, 2040년부터 1.4명 수준을 유지한다는 가정에서 나온 결과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놓고 출산율 변수를 달리하면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보고서는 두 가지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①출산율이 2020년 1.7명, 2035년 2.1명까지 높아지면 기금 고갈 시점이 1년 늦춰진다. 고갈을 늦추는 효과는 작지만 고갈 후 연금 운용 체계를 '부과방식'(매년 지급할 연금액만큼 보험료를 걷는 방식)으로 바꿨을 때의 보험료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출산율이 고작 1.4명일 때 부과방식이 되면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2070년 22.6%로 치솟는다. 하지만 출산율이 2.1명까지 오르면 2070년 보험료율은 17.3%면 된다. 무려 5.3% 포인트 낮춰진다. 2083년에 이르면 보험료율 차이는 더 벌어진다. 출산율 1.4명일 때 필요한 보험료율은 22.9%인데 2.1명이면 15.0%로도 가능하다.

②두 번째 시나리오는 출산율이 2020년부터 계속 1.7명을 유지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보험료율은 2070년 19.5%, 2083년 18.5%면 된다. 출산율 1.4명일 때보다 3.1∼4.4% 포인트 낮다.

보험료를 아무리 올려도 기금은 언젠가 고갈될 수밖에 없다. '낸 것보다 많이 받는' 국민연금의 기본 구조 때문이다. 공적연금 역사가 긴 유럽 국가들은 이미 부과방식으로 전환했다. 중요한 것은 기금이 고갈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부과방식으로 '연착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전문가들은 이 연착륙을 위해서도 반드시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구제도실장은 "국민연금의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급액을 깎는 식으로 연금제도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은 임시방편밖에 안 된다"며 "그런 식으로는 노인 빈곤이 악화되는 등 미래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출산율을 높이는 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가 몇 가지 '당근'을 제공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출산과 양육으로 잃게 되는 기회비용, 아이 키우기에 불안정한 온갖 상황에 대한 종합 대책이 제시돼야 가능한 일이다.

◇출산율 제고의 또 다른 효과=연금 재정의 규모는 경제성장률, 임금상승률, 금리, 물가상승률이 어떤 곡선을 그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커진다. 고용률이 올라가고 임금과 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상승효과는 가입자의 소득 증가로 이어져 연금 재정을 두텁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출산율 1.4명 상황에서는 경제성장률 전망도 어둡다. 2013년 장기 재정추계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은 2020년까지 평균 3.8%를 유지하다 2020년대 2.9%, 2030∼2060년 1%대로 떨어진다. 2060년 이후에는 1%에도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경제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크게 둔화하는 게 장기 재정추계에서 채택한 기본 가정이다.

경제지표가 이 추계의 가정보다 상승곡선을 그리는 경우 기금 고갈 시점은 1∼2년 더 늦춰진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 소득대체율을 낮추지 않아도 재정 전망이 좋아지는 것이다. 반대로 경제지표가 가정보다 나빠지면 고갈 시점은 1∼2년 앞당겨진다.

높은 출산율은 이 경제지표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인구가 많아져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또 출산율 제고와 함께 공공 부문의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의 부실한 사회 안전망을 손보지 않으면 이미 최악인 노인 빈곤 문제가 더 나빠지리란 우려에서다. 가난한 노인이 늘면 젊은 세대가 감당해야 할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산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미래 한국의 경제성장은 발목을 잡힐 것"이라며 "저출산에 대응하는 정책적 노력은 단순히 복지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사회적 투자로 간주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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