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축구話: 이탈리아 축구의 배신은 짜릿하다

홍재민 입력 2015. 5. 15. 12:17 수정 2015. 5. 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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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많은 이가 '엘클라시코 파이널'을 기대했다. 한 골은 극복할 것 같았다. 전반 23분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반전 이탈리아 챔피언이 달아났다. 그대로 베를린으로 떠났다. 유벤투스가 모든 이의 예상을 뒤집었다. 짜릿한 배신이었다.

2014-15시즌 UEFA챔피언스리그 대망의 결승 무대에 설 주인공이 결정되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다. 전자는 매우 익숙하다. 최근 10시즌간 네 번째 결승전이다. 후자는 오랜만이다. 올드트라포드에서 벌어졌던 '올 이탈리안' 결승전 이후 12년만이다.

토너먼트가 시작되면서 세상은 예상을 시작했다. 막강 화력을 지닌 레알 마드리드의 2연패, 리오넬 메시의 뻔한 활약, 바이에른 뮌헨의 새로울 것 없는 강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한풀이 등이 마구 뒤섞였다. 16강과 8강을 거치면서 강약 구분이 예상대로 맞아 들어갔다.

8강까지만 해도 유벤투스는 행운의 팀이었다. 무림고수를 모두 피해 AS모나코와 만났다. 안드레아 피를로와 잔루이지 부폰을 향한 찬사 뒤에 세리에A의 어두운 현실을 비꼬는 목소리가 따라 붙었다. 준결승에 다다르자 유벤투스는 외로운 이방인 신세가 되었다. 나머지 세 팀이 너무나 화려했기 때문이다.

성급한 사람들은 결승전에서 엘클라시코의 성사를 노골적으로 바라기 시작했다. 1955년 출범 이후 반 세기 넘게 단 한 번도 없었던 화려함의 극치를 보고 싶었나 보다. 클럽이면 클럽 선수면 선수 모두 시대를 대표하는 두 클럽이니 당연하다. 원래 결승전은 그래야 하니까.

모든 예상과 기대가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유벤투스가 이겼다. 카를로스 테베스와 알바로 모라타가 꾸민 투톱은 너무나 효율적이었다. 조르지오 키엘리니와 레오나르도 보누치의 중앙수비는 얄미울 정도로 노련했다. 안드레아 바르자글리의 투입은 마치 경기 종료 휘슬 같았다. 올 시즌 조세 무링요에게 미결과제로 남은 '굳히기'를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가 이렇게 해낼 줄이야.

운 좋은 손님인 줄만 알았던 유벤투스가 갑자기 챔피언의 모든 덕목을 갖춘 우승후보로 변신했다. 이번 대회 유벤투스는 경기당 평균 0.58실점만 허용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0.75실점), 바르셀로나(0.83실점), 바이에른 뮌헨(1.08실점)에 앞선다. 이번 대회를 통틀어 유벤투스만큼 확실한 필승 전략을 갖춘 팀은 없다. 세상 편견에 대한 배신의 완성이다.

토너먼트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시즌 운영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재미있다. 엄한 팀이 올라오거나 강팀이 엄한 단계에서 떨어진다. 예상을 배신한 자들의 진격은 팬들을 열광시킨다. 혹자는 꿈이라고도 표현한다. 위대한 성과는 당연한 찬사다. 올 시즌 AS모나코가 그랬다. 유벤투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시에 팬들은 이중적이다. 화려하고 익숙한 강자를 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원망하기도 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자. 기존 질서가 뒤죽박죽 엉켰다. 네덜란드는 아예 본선에 참가하지도 못했다.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은 3경기만에 짐을 쌌다. 전세계 팬들은 대한민국, 멕시코, 세네갈, 터키의 약진에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보고 싶었던 스타들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베를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보지 못해 아쉬운가? 그럴지도 모른다. 일년 최소 두 번 이상 찾는 상객(常客)이어도 매번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명실상부한 슈퍼스타들이 펼치는 맞대결은 단순히 승패 여부를 떠나 90분 자체가 한 편의 퍼포먼스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03-04시즌 FC포르투와 AS모나코의 결승전은 대다수 팬들에게 시시함으로 기억된다. 세상은 원래 간사하다.

팬들의 그런 욕심을 유벤투스는 보란 듯이 짓밟았다. 승부조작 스캔들, 2부 강제 강등, 우승 박탈로 얼룩졌던 날들에 묵직한 펀치를 날렸다. 힘겨운 시간을 거쳤음에도 이탈리아 특유의 전술 기교와 조직적인 수비, 단칼에 상대의 숨통을 끊는 필살기가 여전했다.

한 후배는 이탈리아 축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한껏 웅크려 상대가 휘두르는 주먹을 어깨와 등으로 받아낸 다음에 숨겨놨던 '짱돌'로 한방에 후린다고. 시간이 흐른 지금도 유벤투스는 어쩜 그렇게 '이탈리아'스러울까? 결국 이기는 이탈리아 스타일은 왜 아직도 이렇게 효율적일까? 상대를 속이듯이 세상의 예상과 기대를 배신하는 것까지 유벤투스는 뼛속까지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축구의 배신을 환영한다. 즐겁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우승했던 것처럼, 유로2012에서 당당히 결승전에 진출했던 것처럼 유벤투스의 결승 진출이 신기하고 놀랍다. 올 시즌 UCL 결승전은 6월6일 열린다. 세상의 예측은 뻔하다. 바르셀로나가 우세할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이탈리아의 배신이 먹히는 시나리오도 정말 흥미진진할 것 같다.

'이탈리아 축구는 한 번도 수비적이었던 적이 없다. 단순히 남들보다 수비를 잘할 뿐이다." (Calcio, 존 풋, 2007)

글=홍재민,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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