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된장녀-고추장남이 만났다

김현주 2015. 5. 7. 05: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즐기는 20~30대 여성을 싸잡아 이른바 '된장녀'라고 부르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1인 가구 및 싱글족 급증으로 소비 패턴이 '나(me)'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사회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는데요. 필요에 따른 소비가 아닌 기호에 따른 소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소비 여력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인데요. 최근 경기불황 속에서도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작은 사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남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명품을 사들이는 것이 아닌, 개인 취향에 따른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개념 있는 소비가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작은 사치의 '명(明)'과 '암(暗)'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 봤습니다.

경기 불황에도 작은 사치를 누리려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내수 침체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지만 ▲밥값보다 비싼 커피나 아이스크림 ▲한 줄에 5000원이 넘는 프리미엄 김밥 ▲수십만원짜리 니치 향수 ▲수백만원에 달하는 오디오 기기 ▲수십만원대 헤드폰 등 자신의 취미나 기호에 맞는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은 급증했다.

한 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자사의 디저트 매출 신장률이 매년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식품 전체 매출 신장률을 뛰어넘고 있다. 또 지난 2008년 디저트 매출이 400억원 수준에서 2013년에는 900억여원으로 2배 넘게 늘어나고, 취급 브랜드도 100여종에 이르는 등 디저트 시장이 큰 폭의 확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국내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문화는 5000원짜리 밥 한 끼와 7000원짜리 케이크류로 대변된다"면서 "디저트 숍으로 명명돼 있는 곳에서 마카롱을 즐기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파리 살롱문화의 한국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작은 사치가 기존의 샤넬·루이비통·프라다 등 해외명품 등 사치재 구매와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들여 자신에게 최대한 사치스러운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는 소비를 한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를 '나에게 선물하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저성장이 고착되면서 불황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소비 여력 없이 절약하는 생활을 하다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위안을 얻고자 작은 사치를 부리는 것"이라면서 "사람이 돈이 없다고 해서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어지는 게 아니며, 이것이 눌려있는 상태가 지속하다가 작은 사치로 발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 자체가 우울해지면서 대놓고 보이는 사치를 하는 것은 수용하기 힘들어졌다"면서 "예전에는 보여주는 소비였다면, 지금은 자기만족을 위한 소비로 방향이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들어 '나에게 선물하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30대 젊은층 중심의 '포미(FOR ME)족'이 대표적인 사례다. 포미는 ▲건강(For 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등장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1인 가구가 늘면서 자신을 위해 지갑을 여는 포미족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자기 위로 차원에서 본인에게 향수를 선물하거나,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증가했다"고 귀띔했다.

사실 이쯤 되면 작은 사치를 하는 사람이나 '된장 남녀(男女)'나 소비 측면에서는 다를 게 없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점은 같기 때문. 된장녀는 밥값보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는 허영심 많고 사치스러운 여성을 비하해 사용된 용어다. 된장녀 논란이 일기 시작한 2005년만 해도 밥값보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과시가 아닌 자기만족을 위해 커피를 마신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작은 사치식 소비 행태가 증가하면서 이제는 너도나도 속칭 '된장녀'·'고추장남'이 된 듯한 모양새다.

한 전문가는 "최근 사회 분위기는 절약을 통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보다 자기만족과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것을 가치 있는 소비로 여긴다"면서 "가치 소비라고도 명명되는 작은 사치는 이번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며,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에도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이어 "2000년대 중반부터 싱글 가구가 급증하면서 취향과 기호에 따른 소비가 본격화됐다"며 "커피를 비롯한 특정 품목들이 과다하게 소비됐다"고 부연했다.

물론 이런 작은 사치도 사치의 일종이다.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 뿐이다. 그러나 명품처럼 객관적인 가치가 아닌, 각자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품목을 소비한다는 점이 보통 사치형 소비와 다르다. 혹자는 작은 사치식 소비가 '개념 소비'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소비자학 전문가는 "작은 사치는 다듬어진 소비라며, 만족스러우니까 소비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원하는 소비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생각하는 소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무조건 절약하는 것이 좋은 소비는 아니며, 쓸 수 있는 사람은 써야 하고 경제 여력 안에서 조절해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과도하지 않은 한도에서 소비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작은 사치는 자기만족을 위한 소비라는 점 때문에 과시적 소비와 구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급 디저트를 먹으러 가서 사진을 찍은 뒤 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올리는 이용자들의 심리에는 과시하고 싶은 욕구도 함께 내재돼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밖에 상품이 출시된 초기와 후기에 따라 '자기만족형(혹은 과시형)'이나 '자기보호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같은 작은 사치 덕분에 즐거워하는 이들이 또 있다. 바로 기업들이다. 사치를 부려도 '자기 위로'란 명분으로 용인되거나 과거처럼 '된장녀' 이미지를 덧씌우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기업에 대한 비난은 잦아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제품 가격을 내릴 필요가 없어졌다.

가령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는 1990년대 말 국내에서 문을 연 이후 현재까지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6월과 10월 스타벅스 커피에 대한 13개국 국제물가를 비교한 결과, 아메리카노 커피 가격은 4100원(톨 사이즈 기준)으로 한국이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카페라떼는 4600원(2위), 스타벅스 원두 250g기준 1만5000원(3위)으로 역시 비쌌다. 반면 미국에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는 2477원(12위) 카페라떼 3045원(12위), 원두 7618원(10위)에 불과했다.

고급 커피로 분류되는 스페셜티커피 가격 차이도 크다. 스타벅스가 지난해 3월부터 선보인 프리미엄 커피 '리저브' 한 잔당 가격은 6000~1만2000원이지만,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내 가격은 약 3255~7052원(약 3~6.5달러)으로 한국보다 절반 가량 저렴하다. 서울 시내 식당의 밥 한 끼가 5500~6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최소 밥 한 끼에 맞먹거나 2배가 넘는 돈을 내고 커피를 사먹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스타벅스가 먼저 진출한 서구국가에서의 커피 가격은 밥값보다 비싸지 않다. 커피는 사치재가 아니기 때문. 글로벌 물가조사 사이트 액스패티스탄닷컴에 따르면 뉴욕 시내 식당에서의 점심값은 8679~1만6274원(8~15달러), 영국 런던에서의 점심값은 8348~16200원(5.15~10파운드)다. 스타벅스 커피는 뉴욕에서 약 2477원에, 런던에서 3161원(1.95파운드)이면 사먹는다. 다시 말해 해외에서는 밥값의 최소 3분의 1~5분의 1 가격이면 아메리카노를 사 마실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 커피는 사치품"이라면서 "프리미엄 이미지가 있는 커피전문점 제품들이 굉장히 잘 팔리며, 기업들이 마케팅을 잘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비단 스타벅스뿐만이 아니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기업들은 작은 사치를 누리려는 소비자 심리를 이용해 가격을 비싸게 책정해도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해외에서 들여온 탄산수가 대표적이다. 수돗물에 석회질 함량이 많아 생수나 탄산수를 사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유럽에서 탄산수는 생수(스틸워터)의 대체재일 뿐이다. 그러나 국내에 수입된 물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덧입혀져 비싸게 팔린다. 실제 국내 레스토랑과 커피숍, 음식점에서는 330ml 페리에가 보통 3500원에 팔린다. 롯데칠성음료가 출시한 탄산수 '트레비' 역시 엔제리너스 등의 커피전문점에서 3000원(280ml기준)이란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1년 100억원 남짓하던 국내 탄산수 음료 매출은 지난해 40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지난해 보다 시장 규모가 2배 이상 커져 8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트레비는 2013년 23억원에서 지난해 179억원으로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다. 달리 말해, 작은 사치를 누린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 덕분에 고가 정책을 유지한 관련 업계는 반사적 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사치가 부상하면서 식음료 외에 초콜릿이나 향수 등에 대한 지출이 증가했지만 이런 품목들에 대한 가격 뻥튀기도 여전히 심각하다. 관세청이 지난해 5~7월 15개 수입품의 국내 판매가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향수의 국내 판매가는 수입가격의 8배, 초콜릿은 3.5배 비싸다. 이에 가격 거품 없는 소비를 위해 해외직구(해외 직접구매)가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직구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도 있으며, 설령 직구를 하더라도 작은 사치를 누리려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한 소비자는 "지난해 고가향수 수입자나 국내 에이전시들이 많이 생겼다"면서 "고급 향수는 소수의 제한된 고객을 위해 만들기 때문에 직구를 많이 하지는 않는 분야인데, 이는 시향을 하거나 샘플을 받아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 스스로 주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작은 사치의 장점은 많지 않으며, 소비자들이 모든 분야에서 사치를 하지 못하다 보니 보상심리 차원에서 특정품목을 과도한 소비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작은 사치 품목에 대한 전반적인 가격 상승이 있기 때문에 가치소비를 할 만큼 프리미엄 성능이 있는지 비교 조사하고 소비자끼리 정보공유를 해야 한다"면서 "비싼 가격에 대해 소비자 스스로 견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