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사이드] 아내 죽음 앞두고 남편 투신.. 뒤이어 아내도 눈감아

광주 2015. 5. 7.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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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가정서 자라 "우린 이혼하지 말자".. 30代 부부 슬픈 순애보

"아내가 일어나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지난달 말 전모(30)씨가 던진 이 말을 처제 이모(33·여)씨가 되받았다. "아니, 그렇게 언니를 좋아하더니… 어떻게 그리 이기적일 수가 있어요." 전씨는 그냥 말없이 집을 나섰다.

전씨의 아내는 지난달 20일 급성 패혈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사경을 헤매던 중이었다. 병원에서는 뇌출혈, 뇌경색이 잇따라 온 탓에 생명을 건져도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처제의 눈에 형부는 매정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지난 5일 광주광역시에서 만난 이씨는 "그렇게 죽을 것처럼 사랑하더니…. 그땐 너무 원망스러워 막말을 쏟아냈다"고 했다. 눈물범벅이 된 그는 후회에 가득 차 있었다.

전씨의 아내는 다섯 살 연상이었다. 부사관으로 제대한 전씨는 2012년 7월 광주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아내를 처음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는 그의 말을 잘 들어줬다고 한다. 내성적이라 말수가 적었는데 아내 앞에선 수다쟁이가 됐다. "나랑 있을 때는 난리가 나. 말을 그렇게 많이 해. 만날 투덜투덜거리고." 아내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전씨는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했다. 공교롭게 아내도 그랬다. 서로에게 둘은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생활력이 강한 전씨는 월급을 아끼고 모아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광주에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다. 2013년 봄에 결혼식을 올리고 그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다.

직장에 있는 시간을 빼고 전씨는 늘 아내와 함께했다. 주말이면 영광·담양·장성 등 인근으로 나들이를 가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전씨 아내의 카카오스토리는 부부가 함께한 시간과 추억들로 가득 채워졌다.

악몽은 결혼 2주년이 지나고 한 달쯤 됐을 때 찾아왔다. 아내가 "갑자기 숨을 못 쉬겠다"고 호소하더니 응급실로 실려 갔다. 평소 몸이 약하기는 했지만 크게 아팠던 적이 없던 터라 간단한 치료만 받고 금방 퇴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응급실로 실려 간 지 하루 만에 의식을 잃었다. 다음 날 아내는 인근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급성패혈증이라고 병명을 알려줬다. 담당 주치의는 "폐렴이 와도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진행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고 했다.

전씨는 그날 밤 아버지(56)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꿈에 아내가 나와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했다'며 '난 어떻게 살아요' 하고 울더라"면서 "'걱정 마라, 아빠 삼촌 다 있지 않냐. 걱정 말고 기운 내라'고 위로했었다"고 전했다.

중환자실로 옮겨가면서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하루 30분으로 줄었다. 보고 싶어도 마음껏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전씨는 아내와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서로 얼굴을 맞대고 다정하게 웃고 있는 사진으로 바꿨다. 지난해 가을 '셀카봉'을 장만한 뒤 찍었던 사진이다. 전씨가 자기 얼굴 들어간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하기는 처음이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2주째 되던 지난 3일 밤, 의사로부터 아내가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실낱같은 희망은 이 말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전씨는 아내의 퉁퉁 부은 손과 발, 온몸을 쓰다듬고 만졌다. 꼭꼭 눌러뒀던 감정이 터져 나오면서 통곡을 했다. 처제 이씨는 "그동안 '언니 손 한번 잡아줘'라고 부탁해도 한 번도 그러지 않던 형부가 이날은 달랐다"고 회상했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병원을 나선 전씨는 자정이 조금 지나 자신의 아파트 21층에서 몸을 던졌다. 아내는 3시간쯤 뒤인 오전 3시30분 눈을 감았다.

지난달 말 처제와 다투고 난 후 전씨는 처제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집사람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한 아픔이 있고 저도 그래요. 우리 둘은 절대 이혼하지 말자고 했어요. 아내를 살리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처제는 "형부가 변심했다고 의심한 게 너무 후회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이 부부의 영정사진이 됐다.

광주=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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