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2만시대의 그늘]직원 월급 못줘 변호사가 야반도주

박형수 2015. 5.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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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1인당 인구수 2769명..변리사 등 포함시 422명 급감소송건수 1990→2013년 260.1%, 서울 변호사수는 736.1%↑연 수임건수 55.7건서 24.0건으로 절반이상 줄어"법률상담 해주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

[이데일리 박형수 조용석 전재욱 기자] 00합동법률사무소에 근무하는 변호사 A씨는 최근 직원들로부터 임금 체불로 고소당할 뻔했다. A씨는 동료 변호사 3명과 함께 개업했다. 사무실 임대료는 4명이 나눠냈다. 직원은 변호사들이 개별적으로 채용해 월급도 각자 지급했다. 월요일 아침 A씨는 옆방에서 근무하던 변호사 B씨가 야반도주한 사실을 알았다. B씨는 직원들 모르게 짐을 챙겨 종적을 감췄다. B씨가 채용해 근무 중이던 직원들은 합동법률사무소측에 임금 지불을 요구했다. A씨와 다른 두 변호사들은 결국 갹출해 임금을 지급했다. A씨는 “B씨가 사건 수임이 없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야반도주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지 않았던 C씨는 변호사 개업 후 반백수 상태다. 장인 소개로 인연을 맺은 기업의 고문변호사로 일하며 받는 사례비 300만원이 월 수입의 전부다. 학원강사인 아내의 수입 덕에 가계를 꾸려나가는 형편이다. C씨는 “3수 끝에 어렵게 사시를 패스했는데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할 줄은 몰랐다”며 “차라리 공인회계사나 행정고시를 준비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도입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변호사 수는 급증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한 변호사 수는 지난해 2만명을 넘어섰다.

변호사가 많아지면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일반 국민이 법률 시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미미하다. 오히려 변호사 간 수임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규모 기획소송과 같은 부작용마저 나타나고 있어 양적확대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연구원이 발간한 연구총서 ‘적정한 변호사 수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14년 10월 현재 활동 중인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2769명으로 집계됐다. 미국(249명), 영국(437명), 독일(496명)보다 많고 일본(3625명)보다는 적다.

김형석 서울변회 법제연구위원은 “한국에서 변리사·세무사·법무사·공인노무사 등 법조 인접직역 종사자는 10만명에 달한다”며 “이들까지 더한다면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422명으로 영국이나 독일보다 오히려 적다”고 말했다.

사회가 복잡·다변화하면서 법률서비스 수요 또한 꾸준히 증가했지만 변호사수는 더 빠르게 늘었다. 서울변회가 1990년부터 2013년까지 소속 회원들이 수임한 소송 건수를 분석한 결과 손해배상, 이혼 등 변호사 선임이 필요한 본안사건은 같은기간 6만 9878건에서 25만 1655건으로 260.1%(18만 1777건)늘어났다.

그러나 같은기간 소속 회원 수는 1253명에서 1만476명으로 736.1%(9223명) 급증, 변호사의 평균 수임 건수는 연 55.7건에서 24.0건으로 절반이상 감소했다. 수임 건수가 줄어들면서 고소득 전문직으로 각광받던 변호사의 수입도 급감추세다. 이민 서울변회 법제연구위원은 변호사업 총 매출액이 지난해 3조 7248억원에서 2050년 6조 9320억원으로 186.1%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변호사수가 연 1500명씩 늘어나고 있어 변호사 1인당 연간 평균 순수익은 4344만원에서 1521만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위원은 “현 추세대로라면 변호사업이 부업 취급을 받고, 변호사 자격증은 사회봉사 자격증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매출 압박에 시달리는 변호사가 늘면서 부작용이 빈발하고 있다. 일부 변호사 사무실은 법무사 보수 기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집합건물의 등기를 대리해 법무사협회가 지방변호사회에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 한국전력은 전신주가 박힌 토지주를 상대로 보상소송을 부추기는 변호사가 있다며 서울변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보관위탁된 자금을 횡령하거나 등기 비용을 횡령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업 3년차인 한 변호사는 “사무실에만 앉아 사건을 기다리는 시대는 끝났다”며 “늦은 밤이고 새벽이고 고객이 원하면 찾아간다. 법률 상담해주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고 말했다.

박형수 (parkh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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