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는 최악의 직장상사? "외로워 놀아달라고.."

이원광|백지수|이재원 기자|기자|기자 입력 2015. 5. 6. 05:06 수정 2015. 5. 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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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기획-기러기아빠 20년③-1]새둥지 찾은 기러기아빠의 취미생활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백지수 기자, 이재원 기자] [편집자주] 1990년대 중반 상류층을 중심으로 조기유학 붐이 일면서 아내와 자녀를 해외로 보내고 국내에서 뒷바라지를 하는 '기러기 아빠'가 사회현상의 하나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20년. 기러기아빠가 대중화하면서 해외로 떠난 상당수 자녀들이 대학진학과 취업, 결혼을 앞둔 청년기에 진입했다. 최근 국내외 경제난, 청년취업난은 물론 달라진 가족관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는 기러기아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정의 달 기획-기러기아빠 20년③-1]새둥지 찾은 기러기아빠의 취미생활]

가족을 해외로 보내고 혼자 사는 아빠, 일명 '기러기 아빠'들이 취미생활이란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을 잊기 위한 것. 그러나 종종 기러기아빠들의 취미생활에 동참하길 반(半)강요당하는 직장 동료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자녀 3명과 부인을 캐나다로 보냈다는 한 금융투자회사 임원 A씨는 대표적인 '운동형' 기러기다. A씨는 "매일아침 하루 1차례 1시간 이상씩 꼭 운동을 한다"며 "주로 피트니스센터에서 근력운동을 하고 트레드밀로 유산소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혼자 있으니 스스로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혼자 사는 데에 큰 불편함이 없다"며 "아침마다 가족들과 화상 채팅하고 수시로 문자도 보내는 등 가족관계도 괜찮다"고 했다.

'요리형'도 있다. 외부 음식을 꺼린다는 한 보험회사의 B부장은 최근 요리를 즐긴다고 전했다. B부장은 "일주일치 반찬을 한꺼번에 만들고 밥은 한두번 짓기, 휴일에 고기 먹기, 라면은 반개 먹기 등 나름 규칙대로 요리해 먹고 있다"며 "초반 한달은 식사, 빨래 등 모든 면에서 힘들었으나 지금은 즐기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기러기 생활을 정리했으나 조만간 다시 자녀를 해외로 보낼 예정이라는 B부장은 "기러기 아빠는 그냥 혼자 사는 사람과 미리 준비하는 사람 등 2가지가 있다"며 "심리적으로 우울하고 아니고 차이는 여기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나홀로족'과 달리 주변 지인들과 새둥지를 트려는 기러기들도 있어 주변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서울 소재 4년제 한 대학 교수는 "주말만 되면 기러기 아빠들이 '산에 가자, 골프치러 가자' 등 먼저 불러내 곤란하다"며 "기러기 아빠들은 적응돼 편하겠지만 우리는 가정이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C대리(36)는 '외식형' 기러기 아빠인 D부장(48)으로 인해 곤혹스러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오후 3시가 되면 저녁 약속 없는 후배들을 찾는다는 D부장은 일주일에 3번은 회사 직원들과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C대리는 "다들 상사와의 저녁자리가 너무 잦은 것은 꺼리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주로 막내들이 부장과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격주로 운영되는 사내 자전거 동호회에 불참하면 기러기 아빠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 한다. 주말마다 번갈아 자전거와 요트를 탄다는 D부장은 사내 자전거 동호회를 주도한다. C대리는 "D부장은 자전거를 타는 직원들 중 일부가 모임에 안 나오면 꼭 한마디를 한다"며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은근히 스트레스"라고 한숨지었다.

'워커홀릭형'도 있다. 대기업 연구직 12년차 E씨의 시곗바늘은 저녁 6시에 멈춰있다. 같은 회사 5년차 후배 F씨는 "우리 회사는 통상 오후 6시면 다들 퇴근하지만 E선배는 다르다"며 "후배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선배가 장난처럼 '먼저 가냐'고 하면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미안해했다.

심지어 월차휴가까지 포기하면서 일에 매진한다. F씨는 "E선배는 아이들을 만나러 1년에 1~2번 몰아 장기 휴가를 내야하기 때문에 월차도 쓰지 않고 아낀다"며 "'집에 가봤자 가족도 없고, 어차피 일은 누군가 해야하지 않나'며 일에 몰두한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러기 아빠들이 여가 생활이나 직장 생활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 또한 외로움의 표현이라면서 장기간 혼자 사는 생활이 계속될 경우 가족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기선 카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기러기 아빠들이 동료들과 술 약속, 취미생활 등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만드는 것은 내면 깊숙한 외로움의 또다른 표현일 수 있다"고 했다.

최양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과 교수는 "직장 동료들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은 가정에서 느끼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며 "기러기 아빠들은 화상전화나 문자 등 기계적 교류를 통해 가족과 소통하려 하지만 같이 살면서 느끼는 정서적 유대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들도 편모 가정이 아님에도 사실상 편모 가정에서 크면서 남성 롤모델을 잃는 등 정서적으로 취약해지고 부인들도 외국 생활에서 살림과 시집관계 등에서 자유로워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오길 꺼려할 수 있다"고 했다.

이원광 기자 demian@mt.co.kr, 백지수 기자 100jsb@mt.co.kr, 이재원 기자 jayg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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