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김성근, 절묘한 '펑고 경고'
방심할 수 있는 팀 분위기 다잡기.. 鄭도 감독 의중 읽고 성실히 수행
kt전 만루포 포함 4안타 화답
[동아일보]
자존심 상했지만…한화 정근우(아래쪽 사진)는 3일 롯데와의 대전 경기 뒤 김성근 감독의 펑고를 받으며 30여 분간 그라운드를 굴렀다. 한화 제공 |
김 감독이 시즌 중에 직접 ‘지옥 펑고’를 한 건 이례적이다. 경기가 끝난 직후로 많은 관중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어서 정근우는 팬들이 보는 앞에서 30여 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그라운드를 굴러야 했다.
대개 감독들은 선수들을 공개적으로 혼내지 않는다. 그런데 김 감독은 공개적으로 정근우를 굴렸고,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 정근우는 굴렀다. 표면적으로는 실책을 한 정근우에 대한 징벌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켜본 김 감독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김 감독의 진짜 속내는 선수단 전체에 일종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전부터 김 감독은 팀 내 스타 선수들에게 더욱 엄격했다. LG 감독 시절에는 양준혁과 이병규를 심하게 혼냈고, SK 지휘봉을 잡았을 땐 김재현을 선수단 앞에서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스타 선수들을 봐주지 않아야 선수단에 위화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김 감독의 철학이다. 난생처음 그런 대우를 받아본 스타 선수들은 엄청난 실망과 섭섭함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김 감독의 진심을 알게 됐다.
역전 그랜드슬램한화 정근우가 5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 5회말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린 뒤 헬멧을 벗어 환호하는 팬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대전=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
지난해 한화의 일본 마무리캠프 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한화의 지옥훈련 사진을 보면 정근우의 얼굴이 빠지질 않는다. 흙으로 까매진 유니폼을 입은 그는 ‘저 좀 살려 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누워 숨을 헐떡이곤 했다. 물론 훈련은 힘들었다. 하지만 약간의 ‘과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진기자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한화는 시즌 초반 선전하고 있다. 약체라는 평가를 비웃듯 5일 현재 16승 12패(승률 0.571)로 4위를 달리고 있다. 자칫 방심하거나 자만할 수 있는 성적표다. 실제 최근 들어 실책이 많아졌다. 김 감독은 바로 이때 전체 선수단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펑고를 꺼내들었고, 정근우는 그라운드를 구르며 김 감독이 자신에게 원했던 임무를 100% 수행했다.
효과는 100%였다. 그것도 바로 다음 경기에서 나타났다. 5일 kt와의 안방경기에서 정근우는 만루홈런을 포함해 5타수 4안타 4타점 4득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한화는 이날 홈런 3개로만 9점을 올리며 15-8로 승리했다.
2013년 말 정근우가 SK에서 한화로 이적했고, 지난해 말 김 감독이 한화 감독이 됐을 때 야구계에 돌았던 농담이 있다. “절(김 감독)이 싫어 중(정근우)이 떠났는데, 절이 중을 따라왔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하건 둘은 눈빛만 봐도 통하고, ‘쿵’ 하면 ‘짝’인 찰떡궁합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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