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리포트] 두 달 급여 79만원 '열정페이' .. 내 열정이 아깝네요

정강현.임지수.김나한.백민경 2015. 5. 6.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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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값 노동'이 아픈 청춘
이모(28)씨</br>방송국 시사 프로그램 제작</br>보조 아르바이트</br>2개월간 급여 79만원
정모(26·여)씨</br>영화 홍보사 인턴</br>월 급여 90만원
임모(30)씨</br>유엔 산하 여성지위위원회</br>(CSW: The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br>뉴욕 현지 인턴</br>2개월간 무급

요즘 노동시장에는 이상한 계산법이 떠돕니다. ‘청춘의 열정=저임금 노동’. 기업들이 취업난을 겪는 청춘들의 열정을 빌미 삼아 헐값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걸 비꼬는 등식입니다. 최저임금(시급 5580원)에도 못 미치거나 아예 무급으로 일하는 청춘이 많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정페이’를 견디고 있는 청춘 3명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foneo@joongang.co.kr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열정페이 고발 프로 만들고 열정페이 받아

덮어 놓고 “오케이(OK)”했다. PD 지망생에게 그건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건너건너 알게 된 PD님에게 연락이 왔다. “일 거들면서 방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경이나 해라.” 벅차올랐다. 열정이 아니라 영혼이라도 바칠 기세였다.

 내가 일한 곳은 ‘열정페이’ 문제를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 현장이었다. 취업이 다급한 청년들의 열정을 이용해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현장을 고발하는 내용. 하지만 나는 몰랐다. ‘열정페이’를 고발한다는 그 프로그램이 ‘열정페이’를 악용하는 바로 그 현장이었다는 것을.

 방송국에선 근로계약서 한 장 없이 일부터 시켰다. 일정 기간이 끝나야 임금을 통보받았다. ‘우린 아쉬울 게 없지만 네가 원하니까 일할 기회를 준다’는 식. 일은 무작위였다. 제보 전화를 받다가 출연자가 도착하면 마중을 나갔다. 틈틈이 세트와 촬영장비도 챙겼다. 오전 9시에 나가 늦게는 오후 11시까지 일했다. 무명 배우들의 사연을 받는 날엔 하루 100명도 넘는 이와 통화했다. 주로 방송국에서 임금을 착취당했다는 제보였다. “계약서 한 장 안 쓰고 굴리더니 말도 안 되는 액수를 던져 주더라” 등등. 구구절절 내 얘기처럼 들려 가슴이 떨렸다.

 방송국에선 제작이 끝나야 돈을 준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구했다. 방송국 일 마치자마자 마라톤 행사업체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자정이었다.

 방송국에서 두 달간 일한 대가는 79만원. 시간당 1681원을 받은 셈이다. 최저임금(5580원)보다 약 4000원이나 적은 액수. 두 달간 매주 5일씩 빠짐없이 나갔는데 일한 날로 쳐 준 건 열흘 정도였다. 제작국 안에서 한 일은 모두 봉사로 쳤단다. 서러웠다. 말로만 듣던 열정페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용당했구나 싶었다.

 취업 면접관들은 습관처럼 묻는다. “졸업하고 뭘 했나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저임금이든 무급이든 경력을 쌓아야 하는 게 요즘 청춘들의 현실이다. 이제 다큐 프로그램을 보면 피고름 내가 난다. 수많은 청춘의 열정을 착취해 만든 한 컷 한 컷을 보면.

임지수 기자 yim.jisoo@joongang.co.kr

경력 쌓으러 왔지만, 월급날마다 한숨

영화 홍보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한 지 4개월이 지났다. 계약서상으론 인턴 기간 동안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만 근무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밤 10시 전에 사무실을 나서본 적이 없다. 12시가 넘어 퇴근하는 날도 부지기수. 한 달에 서너 차례는 홍보하는 영화 시사회를 진행하기 위해 토요일도 회사에 나온다.그렇게 죽어라 일해 주어지는 월급은 90만원. 이 돈은 점심값 12만원, 하숙비 45만원, 용산 자취방과 강남구 회사를 오가는 왕복 지하철비 4만6000원. 매달 61만6000원이 고정비용으로 빠진다. 커피값 등 나를 위해 허락된 사치비용은 한 달에 28만4000원 정도다.

 하루 중 가장 큰 즐거움은 집에 돌아와 오전 1시까지 ‘라디오스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인기 드라마를 다운로드 받아 보는 것. 하지만 화장품을 사거나 주말에 친구를 만나 맛집에 가는 것처럼 드라마 속 직장인들의 흔한 소비도 나에겐 그림의 떡이다.

 매일 점심 회사 동료와 회사 근처에서 가장 저렴한 백반집을 찾아 6000원짜리 김치찌개와 불고기백반을 시켜 나눠 먹으면서도 ‘혹시나 오늘 저 친구가 쏘지는 않을까’ 기대를 하는 게 현재 나의 처지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 때문에 열악한 근무조건에도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인 게 이 바닥이다. 누군가 그만둬도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어하는 청춘 수백 명이 해외대학 졸업장 등 각종 스펙으로 무장한 지원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드라마 PD나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어 이곳에 왔다. 지금 하는 일 자체는 좋다. 개봉 영화가 나오자마자 스토리를 체크하고, 선배들과 감독에 대해 얘기하고, 홍보 기획을 짜는 게 좋다. 영화 생각을 이렇게 많이 할 수 있는 회사는 여기뿐이다. 이곳은 나 같은 인턴 두 명과 입사 1~2년차 선배 두 명의 ‘열정’으로 굴러간다.

 요즘 내 통장에는 매달 90만원이 찍힌다. 내 열정과 노력의 대가가 고작 저 정도라고 생각하면 조금 억울해진다. 경력이 쌓이면 좋아하는 일 하면서도 괜찮은 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 한 달에 딱 200만원만 받을 수 있다면 평생 이 영화 일에 매달릴 텐데….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말라리아 걸려도 출근 … 스펙 한 줄이 내 피땀

‘유엔 인턴은 원칙적으로 무급. 정규직은 석사 이상’.

10년에 한 번씩 공석이 나고 전 세계 수천 명과 경쟁하는 자리. 박봉이지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 유엔난민기구(UNHCR)나 유엔환경프로그램(UNEP)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거다. 그곳에서 일하며 시리아·아프가니스탄 등 학교가 부실한 나라에서 태권도도 가르치고 싶다.

 꿈이 자리 잡은 건 열일곱 살 때다. 형편이 어려워 화장실과 세면대도 없는 집에서 끓인 물을 찬물과 반반 섞어 씻고 먹었다. 그러다 나와 마찬가지로 난민처럼 살면서 버려진 아이들에게 눈이 갔다.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겠다’ 몇 번이고 다짐했다.

 혼자 힘으로 고교에 입학해 영어·프랑스어를 공부했다. 악착같이 준비해 2012년 1월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인턴이 됐다. 뉴욕에서 꿈에 그리던 일을 하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이곳은 또 다른 착취의 현장이었다. 뉴욕행 비행기표, 집세, 식비 모두 자기 부담이었다. 하루 8시간 동안 각종 잡무를 처리했고 통·번역을 했다. 급여는 0원. 많은 친구가 인턴을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는 이유를 깨달았다.

 뉴욕에선 도시락을 싸고 궁상을 떨며 생활비를 아껴도 한 달에 500달러(당시 59만원) 정도 들었다. 싸게 구했다고 좋아한 집은 바퀴벌레 소굴이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통장 잔액이 줄어 퇴근 후에는 한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그렇게 ‘국제 열정노예’가 됐다.

 내 스펙은 모두 무급 노동의 결과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케냐 몸바사 등에서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네팔의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등 봉사활동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했다.

 나는 지금 뒤늦게 대학에 다시 입학해 공공정책을 공부 중이다. ‘국제 열정노예’라고? 내 열정이든 몸이든 마음대로 착취하시라. 나는 꼭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니까.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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