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먹튀' 메이웨더VS파퀴아오 졸전이 남긴 의혹

스포츠 2015. 5. 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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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

두 명의 '세기의 복서'가 펼친 '세기의 대결' 결말은 메이웨더가 48전 48전승의 기록을 이어가고, 파퀴아오가 6번째 패배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메이웨더는 지난 3일(한국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서 열린 세계복싱평의회(WBC)·세계복싱기구(WBO)·세계복싱협회(WBA) 웰터급(66.7㎏) 통합 타이틀전에서 파퀴아오를 상대로 12회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데이브 모레티 부심은 118-110으로 8점차 메이웨더 우세, 글렌 펠드만 부심과 버트 클레멘트 부심은 나란히 116-112로 4점차 메이웨더 우세로 판정을 내렸다. 실제로 이날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메이웨더가 435차례 펀치를 날려 148개를 적중한 반면 파퀴아오는 429차례 주먹을 뻗어 81회 적중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메이웨더가 파퀴아오보다 나은 경기를 펼쳐 합당한 승리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경기를 지켜본 전 세계 수많은 복싱 팬들은 경기 내용이 당초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큰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2억5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대전료를 받은 두 복서가 치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재미없는 경기였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메이웨더는 시종일관 파퀴아오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자신의 펀치 사정권 안에 파퀴아오가 들어오면 적중률 높은 잽으로 포인트를 쌓아갔다. 포인트를 쌓기는 했지만 메이웨더가 던지는 펀치의 강도는 파퀴아오에게 어떤 충격도 안겨주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과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자주 보던 아마추어 선수들의 포인트 위주의 경기를 메이웨더는 '세기의 대결'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프로 경기에서 펼친 셈이다. 자신이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출신임을 과시하려 했는지는 몰라도 프로다운 펀치로 파퀴아오에게 당혹감과 충격을 안기는 모습을 상상했던 팬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졸전이었다.

파퀴아오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12라운드 내내 파퀴아오는 잽과 같은 리딩 펀치 없이 큰 펀치 한 방으로 메이웨더를 눕혀보겠다는 듯 메이웨더를 링 코너로 몰고 다니기 바빴다. 간간이 몇 개의 펀치가 성공이 되면서 메이웨더에게 연타를 날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펀치는 메이웨더의 커버링에 막혔고, 복부공격은 메이웨더의 스피드를 잡는데 실패했다.

12라운드 경기가 모두 끝났을 때 사람들은 어느 선수의 우열을 점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현장에서 채점을 맡은 부심들에게 상당히 어려운 숙제가 주어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간단명료했다. 메이웨더의 승리였다.

경기 내용만을 놓고 보면 적극성에서 앞선 파퀴아오가 그나마 근소한 우세를 보인 경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였지만 장소가 필리핀이 아닌 미국이라는 점과 메이웨더가 47전 무패에 5체급 석권에 빛나는 미국인 챔프라는 점, 그리고 판정으로 갈 경우 메이웨더가 유리할 것이라던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을 종합했을 때 4-8점이라는 점수차에는 의구심이 든다 하더라도 승패에 대한 판정은 놀랍지 않았다.

문제는 역시 경기 내용이었다. '이에 2억5000만 달러짜리 경기야?'라는 식의 반응이 쏟아졌다.

이날 경기에 앞서 메이웨더가 '내가 (무하마드) 알리보다 위대하다'고 자화자찬하자 메이웨더에 대해 "작고 비겁한 남자"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던 전 헤비급 통합 세계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은 자신의 트위터에 "5년이나 기다렸는데.."라는 글을 적었다. 과거 파퀴아오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던 '골든보이' 오스카 델 라 호야 역시 자신의 SNS에 "미안합니다. 팬 여러분"이라는 글귀를 남겨 경기 내용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4전5기' 신화의 주인공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역대 타이틀전 가운데 가장 재미없는 경기였다."며 "이번 경기는 2000억원이 넘었다. 그런데도 팬들에게 이 정도 재미밖에 주지 못하니 UFC가 인기를 얻는 것이다. 이러다가 UFC에 밀릴 수도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WBA 주니어플라이급 17차 방어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우 씨 역시 "메이웨더의 아웃복싱도 복싱을 잘 아는 마니아들 입장에서는 정말 보기에 흥미진진한 스타일이다. 파키아오가 메이웨더를 잡지 못했을 뿐이다"라면서도 "나도 경기를 정말 재미없게 봤다. 마니아가 아닌 일반적인 팬들 입장에서는 정말 실망스러운 경기 결과"라면서 "지루한 경기가 돼 버려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6년간 복싱 팬들의 애간장을 태워 어렵사리 성사된 '세기의 대결'은 이렇게 '세기의 졸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현재는 이 같은 졸전의 책임이 모두 메이웨더의 책임인 것처럼 비쳐지고 있으나 파퀴아오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파퀴아오 스스로 어깨 부상이 있었다는 점을 나중에 밝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이 같은 졸전의 이유가 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메이웨더는 이번 경기로 인해 '무패의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지켰는지는 몰라도 위대함과는 거리가 먼 그저 '계산에 능한 챔피언'일 뿐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였다. 파퀴아오 역시 '8체급 석권'이라는 대단한 기록의 주인공이기는 하나 결국 메이웨더의 '계산기'를 극복하지 못한 선수가 됐다.

그리고 이들 두 선수는 공통적으로 '복싱 역사상 최악의 먹튀'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이쯤에서 돌이켜 볼때 작년 연말 메이웨더가 그 동안 피해오던 파퀴아오와의 경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드러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선수가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장에서 조우하고, 길지 않은 기간 협상을 통해 대전에 합의하고 이날 경기를 펼친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잘 짠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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