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퀴아오-메이웨더전, '복싱 몰락'에 확인사살?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2015. 5. 5.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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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몰락하는 계급은 언제나 새롭게 대두되는 계급과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로 유명한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의 글귀다. 어쩌면 복싱도 그랬는지 모른다. 자신들은 몰락하는 계급임을 부정하고 '세기의 대결'을 계기로 다시금 자신들의 전성기를 재현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세기의 대결'은 도리어 복싱이 왜 종합격투기에게 밀려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는지만 증명하는 꼴이 됐다. 이번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의 경기는 약 2,700여억원의 대전료와 엄청난 관심도를 반하는 졸전으로 매듭됐다.

메이웨더는 3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복싱평의회(WBC)·세계복싱기구(WBO)·세계복싱협회(WBA) 웰터급(-67kg) 통합 타이틀전에서 파퀴아오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이날 경기는 사상 최초의 계체량 티켓 판매, PPV(페이퍼 뷰-경기를 보기 위해 TV시청료를 따로 내야하는 시스템)로 인해 한 경기 약 11만원에 달하는 금액, 전 세계 생중계, 대전료만 해도 약 2,700여억원 등 성사 그 자체로 폭발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사실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최근 세계적인 흐름상 격투기 종목은 UFC로 대변되는 종합격투기가 예전 복싱의 명성을 대체하고 있었고 복싱은 개발도상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로 인식됐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

UFC는 사실상 신체 전 부위를 활용한 공격과 타격이 가능하면서 화끈한 경기력, 유혈이 낭자하며 목숨에 위협이 갈 정도로 잔인한 KO 등이 주를 이루며 더 강하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줬다.

잔인하고 자극적이기 그지없는 UFC 경기장면

반면 복싱은 여전히 글러브를 낀 채 상체 타격만을 고집했고 결국 더 화끈한 경기가 많은 종합 격투기에게 '격투기 왕좌'를 내줘야했었다. 그럼에도 이번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경기는 그동안 부진한 인기를 보였던 복싱에서 전 세계적 관심이 일었기에 복싱계는 이번 경기를 계기로 다시금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알려진 바와 같이 졸전 중에서도 졸전이었다. '무패 복서'와 '8체급 챔피언'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선수답지 않게 지나치게 신중한 경기로 시종일관 진행됐다. 이에 다운은 단 한 차례도 없었고 경기 후 두 선수의 얼굴은 상처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야말로 '프리티(Pretty)'한 얼굴이 '어글리(Ugly)'한 경기를 낳은 것이다.

경기 후 팬들은 화가 났다. 환호성보다 야유가 더 컸다. 미국 팬들은 11만원에 달하는 거금을 주고 시청했음에도 화끈한 경기는커녕, 포인트를 따는 아마추어식 복싱에 화가 났다. 메이웨더는 늘 그랬듯 피하고 방어를 주로 했음에도 '이번만큼은 달랐어야 했다'는 여론에 휩싸이며 악명은 더욱 높아졌다. 파퀴아오는 더 적극적인 공격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역시 아쉬움만 가득했다.

챔피언 타이틀을 지켜낸 메이웨더

오죽하면 판정에 납득할 수가 없어서가 아닌, 재미없는 경기였기에 '재경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오간 경기는 그보다 재미없을 수 없는 경기만을 남기며 허탈함만 남겼다.

1977년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결정전에서 '4전5기'의 신화를 쓰며 '한국 복싱계의 대부'가 된 홍수환(65)은 "역대 타이틀전 가운데 가장 재미없는 경기였다. 두 선수에게 대전료 지급을 하면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종합격투기 UFC의 최고 대전료는 60억∼70억 원 수준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경기는 2천억 원이 넘었다. 그런데도 팬들에게 이 정도 재미밖에 주지 못하니 UFC가 인기를 얻는 것이다. 이러다가 UFC에게 밀릴 수도 있다"며 자조 섞인 한숨만 들려줬다.

그렇다. 결국 이번 세기의 대결은 왜 복싱이 몰락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바로미터와 같은 경기가 되어버렸다. 혹자는 이번 대결로 복싱의 부흥을 기대했는지 모르지만 이번 경기는 복싱의 자멸에 확인사살을 하는 것이 돼버렸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 '몰락하는 계급은 언제나 새롭게 대두되는 계급과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다'고 했다. 몰락하는 복싱은 새롭게 대두되는 종합격투기라는 계급과의 전쟁이 아닌, 자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복싱 팬들은 두 선수가 훈훈하게 안는 모습보다 한쪽이 누워있는 모습을 더 원했을 것이다

사진= ⓒAFPBBNews = News1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jay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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