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비한 행사 속에 사람 구실 못해 더 괴롭다"..가정의 달이 두려운 사람들

이완기·정혜진기자 2015. 5. 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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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곽모(30)씨는 며칠 전 달력을 5월로 넘기자 한숨부터 내 쉬었다. 올해는 취업이 돼 반드시 챙길 거라고 표시해둔 기념일들이 달력에 빼곡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각종 결혼식, 그가 표시해둔 날이다. 하지만 이력서를 제출한 20여 군데에서 들리는 답은 아직 없다. 답답한 마음만 커져간다. "사람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달력이 말해주네요. 이번 어린이날에는 조카 선물을 꼭 주고 싶었는데..."라고 곽씨는 말끝을 흐렸다.

가정의 달 5월이 본격적으로 접어들자 연이은 기념일로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취업, 연애, 결혼 등을 놓아버린 삼포세대의 청춘들은 물론 이미 가정을 꾸린 이들까지 5월은 '벅찬 달'이 되어 가고 있다. 가정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취지와 달리 선물 등 부차적인 의무감만 커져 '가정의 달=잔인한 달'이라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실망실업자 김모(31)씨는 "가정의 달, 참 잔인하다"며 "사회적으로 선물과 화목을 무작정 강요하는 거 같아 맘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가벼운 주머니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주부들도 상당하다. 여성이 많이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최근 가정의 달과 관련된 고민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한 글쓴이는 "가정의 달을 맞아 주변에선 가족여행을 많이 간다고 하는데, 그럴 형편이 못돼 속상하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유계숙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각박한 현실로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가족·가정의 의미가 5월 들어 한 번에 의무처럼 밀려들기 때문"이라며 "돈이나 선물 대신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확충된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부담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시대가 변해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만 정상에서 벗어난다는 느낌을 가질 필요 없다"며 "다만, 시대의 변화를 고려할때 독거노인 가정에 대해서는 사회적 조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완기·정혜진기자 kingea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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