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의 위기' 제대로 보여준 '세기의 대결'

조영준 기자 2015. 5. 4.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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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V NEWS=조영준 기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경 중 하나가 '싸움'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간은 타인이 서로에 해를 입히는 장면에 본능적인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본능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격투 스포츠는 보는 이들에게 전율과 카타르시스 혹은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복싱은 격투 종목 중 가장 오랫동안 대중들의 곁에 있었다. 최고의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은 무하마드 알리(미국)가 이 종목에서 등장했다. 또한 스포츠 역사에 길이남을 명승부도 복싱에서 자주 나타났다.

이러한 복싱이 시대가 흐르면서 위기에 몰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들은 조금 더 자극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호한다. 현재 대중들은 3분 12라운드로 펼쳐지는 복싱보다 5분 3라운드 혹은 5라운드로 진행되는 종합격투기(MMA)에 열광하고 있다.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복싱 시장이 더 큰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복싱의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간) 전 세계의 시선을 고정시킨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 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 필리핀)의 경기는 모처럼 펼쳐진 '복싱 빅매치'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박진감, 전율, 감동'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앞에서 언급한 단어 대신 들어간 것은 '지루함, 안정, 소극적'뿐이었다.

너무 늦게 만난 두 천재, 과정보다 승리에 연연

메이웨더의 경기 스타일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맞춰져있다. 경기 내용을 떠나 '이기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메이웨더는 분명 현존하는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슈거레이 레너드의 뒤를 잇는 '천재 아웃복서'다.

20대 시절 메이웨더의 경기는 KO승도 자주 발생했다. 메이웨더는 절대로 먼저 상대에게 돌진하지 않는다. 잽과 스트레이트 연타로 상대를 견제한 뒤 상대가 접근할 때 빈 틈을 노려 카운터를 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서른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메이웨더의 카운터는 점점 고개를 숙였다. 20대보다 파워가 떨어진 메이웨더는 철저하게 포인트 위주의 경기를 펼쳐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빅토르 오티즈(미국)에 4라운드 KO승을 거둔 뒤 이후 치러진 6번의 경기는 모두 판정승을 거뒀다.

인파이터인 파퀴아오의 공격력도 티모시 브레들리와 후안 마르케즈에 연패를 당한 뒤 한풀 꺾였다. 이후 3연승을 거뒀지만 모두 판정승이었고 메이웨더에게는 3-0 심판전원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30대 후반에 만난 이들은 솔직히 전성기를 지난 상태다. 이 대전은 너무나 오래 지연됐고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늦게 만났다. 또한 서로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지나치게 승리에 연연했다. '이기는 승리 공식'에 충실한 메이웨더는 12라운드 내내 링 사이드는 돈 뒤 클린치와 숄더 롤로 파퀴아오의 공격을 차단했다. '수비 끝판왕'답게 가드는 견고했고 상대 펀치를 흘러버리는 유연함은 최고 수준이었다.

파퀴아오는 이러한 메이웨더의 스타일에 말려들었다. 경기 내내 메이웨더보다 경기에 적극적이었지만 유효타는 적었다. 메이웨더의 경기 스타일은 '재미 없기'로 유명했지만 파퀴아오와의 대결에서는 정점에 달했다.

그동안 복싱 역사를 보면 테크니션이 강타자들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1987년에 열린 '마블러스' 마빈 헤글러와 슈거레이 레너드(이상 미국)의 일전은 유명하다. 당시 링 사이드를 돌며 짧은 연타로 헤글러를 공략하고 빠진 레너드는 2-1 판정승을 거뒀다.

이 두 선수의 경기도 당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경기 결과는 판정으로 끝났지만 두 선수는 수준 높은 복싱을 구사했다. 반면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자신의 경력에 힘이 갈 정도로 조심스런 경기를 펼쳤다.

경기 내용보다 승리에 지나치게 연연한 이들의 플레이는 소극적이었다. 결국 12라운드까지 이렇다 할 난타전을 한 번도 전개되지 않았다.

80년대 헤글러와 레너드 그리고 토마스 헌즈(미국)와 로베르토 듀란(파나마)은 복싱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수도 없이 연출했다. 이들은 승리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링 위에서 펼쳐진 과정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경기가 자주 펼쳐졌기 때문에 당시 복싱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와 비교해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경기를 현재 복싱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있음을 증명했다. 이 경기는 2천억이란 천문학적인 거액이 걸렸다. 이번 경기는 파이트머니에 걸맞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복싱보다 자극적이고 박진감이 넘치는 종합격투기는 수많은 스타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와 비교해 현재 세계 복싱을 대표하는 두 선수의 대결은 '재미'를 선사하지 못했다.

이번 메이웨더-파퀴아오 전은 복싱 부활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조금의 감동도 안겨주지 못했다.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세기의 대결'은 현 복싱의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진1] 그래픽 = 김종래

[사진2]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오른쪽) 매니 파퀴아오 ⓒ Gettyimages

[사진3]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오른쪽) 매니 파퀴아오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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