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역사를 바꾼 '오월의 바람'

2015. 5.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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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중국 산둥 성 칭다오엔 붉은 지붕의 유럽풍 건물이 많다. 과거 독일의 조차지였던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독일식 칭다오 맥주가 유명한 것도 그래서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5·4광장에 있는 ‘오월의 바람’이다. 바람에 일어나는 횃불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높이 30m, 지름 27m의 조형물이다. 칭다오가 중국의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큰 획을 그은 5·4운동의 배경이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세워졌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기념사진에도 자주 등장한다.

▷1919년 5월 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약 3000명의 학생이 모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전승국들이 파리 강화회의에서 전쟁 전에 독일이 갖고 있던 이권을 분배하면서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수용한 탓에 칭다오 등 산둥 반도의 주권을 중국이 되찾지 못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격분한 학생들은 ‘칭다오를 반환하라’는 요구를 하며 거리로 나섰고 상인, 노동자들이 적극 가세했다. 두 달간 22개 성, 200여 개 도시를 뒤흔든 시위는 사회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조선은 독립을 도모하면서 독립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고 말했다.” 당시 베이징 학생들은 선언문에서 5·4운동을 두 달 전 한국의 3·1운동에 비유했다. 훗날 중국 공산당 창당을 주도한 천두슈 등이 만든 ‘매주평론’은 3·1운동 기사를 전하며 조선의 독립운동이 중국 인민을 뒤흔든 최대의 사건이라고 평했다. 한국에선 일제의 3·1운동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가 5·4운동에 합류한 이들도 있었다.

▷“그날은 여느 때와는 달리 쾌청했고, 바람도 없어서 베이징의 명물인 먼지도 일지 않았다.” 역사서에 기록된 5·4운동 당일의 실제 날씨다. 폭풍 직전의 고요였던 셈이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 동북아는 일본 때문에 다시 풍향계가 요동치려 하고 있다. 한중일의 국력과 역학 관계가 바뀌었지만 세 나라의 평화 공존은 얼마나 세월이 더 가야 가능할 건가. 오월의 바람 속에서 ‘오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마음이 무겁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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