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그도 '혼밥'을 알았을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한 후 그가 40년간 자기 생일과 휴일을 제외하곤 매일 각계 인사와 조찬 모임을 가져 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식사 자리를 챙기는 일에서 그는 무척 부지런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모진 선택을 하기 전날 저녁에도 한 야당 정치인과 30분간 함께 냉면을 먹었다.
그에겐 자신에게 부족한 인맥을 보충하는 수단이 열심히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그 흔한 동문(同門) 하나 없지만 그는 유용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20대 시절부터 지역 모임들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건설 회사를 운영하며 손쉽게 관급 공사를 따낼 수 있었고, 특별사면에 국회의원 공천도 받을 수 있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 중에는 조찬 모임뿐 아니라 점심·저녁 식사 약속을 두세 개씩 겹쳐 잡는 사람도 많다. 이들에게 식사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중요한 사람일수록 밥을 많이 먹는 것이다.
반면 혼자 밥을 먹는 것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로 받아들여진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혼밥(혼자 밥 먹기) 레벨 테스트'라는 게 잠깐 유행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혼자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피자집에 혼자 갈 정도면 혼밥 레벨이 꽤 높은 축에 속한다. 이는 혼자 밥 먹는 것이야말로 용기 있는 행위라고 우스개로 비꼬아 말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 자신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먹방(먹는 방송)'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지상파나 인기 케이블TV에서 '삼시세끼'류의 밥 먹는 모습 보여주기 방송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남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먹는 행위가 왜곡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이는 생존을 위한 기초적 행위인 밥 먹기에 네트워크 쌓기, 누군가를 만나 부탁하기, 아는 사람 과시하기 같은 부수적 요소가 더 강조되면서 순수한 먹는 즐거움을 찾기 힘들어져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대학생들의 '혼밥 놀이'에도 묘한 사회적 반감(反感)이 깔려 있다.
성 전 회장은 특유의 부지런함 덕에 평생 많은 사람과 밥을 먹었는지 모르지만 한 끼 식사의 즐거움을 나눌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도 하듯 먹는 즐거움은 맨 먼저 가족과 나누고 친구·동료와 같은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회식(會食)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먹는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에서 가족 간의 정이 생기고, 우정이 쌓이고, 동료애가 만들어진다. 거기에 무슨 의도가 있고 청탁과 뇌물이 있을 리 없다.
평생 그렇게 부지런히 조찬 모임과 식사 자리를 찾아다녔던 고인(故人)이 마지막에 '의리'를 외쳤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는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았지만 신뢰나 의리·우정은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혼밥'을 하느니만도 못한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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