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받아야 할 홍명보의 재도전에 대한 불편한 비아냥거림

김태석 2015. 4. 2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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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1969년에 열린 1970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 호주전. 무조건 이겨야 할 경기에서 후반 20분까지 팽팽했던 접전을 펼치던 중 한국에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회택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 낸 것이다. 넣으면 승리할, 나아가 월드컵 본선에 출전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페널티킥이 한국 축구사의 비극이 됐다. 키커로 나선 임국찬의 슈팅이 골키퍼에게 막혔다. 임국찬은 성공시키지 못한 페널티킥 때문에 국민적 지탄을 받아야 했고, 결국 현역 생활을 포기하고 도피하듯 미국으로 이민 갔다. 임국찬이 한국 축구와 인연을 다시 맺게 된 것은 그로부터 33년이나 지난 후였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조별 라운드 상대였던 미국의 정보를 히딩크호에 전달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4강 신화에 약간이나마 보탬이 됐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이렇게 기억한다. "월드컵을 걷어찬 사나이."

임국찬은 한국 축구 사상 가장 비극적 축구 인생을 산 인물로 꼽힌다. 그가 범한 실책이 승리를 기대했을 팬들의 허탈함을 야기하고, 나아가 분노를 일으킨 건 맞다. 그게 승리로 연결되지 못하고, 나아가 월드컵 본선행을 가로막은 결정적 이유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건 축구에서는 일상적 일이다. 우리는 경기를 지켜봄에 있어 승리하길 바라지만, 질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실패라는 기억의 족쇄에 얽매여 가혹하게 반응한다. 임국찬은 있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홀로 짊어진 희생양이었다.

"연봉에는 대중의 욕값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자조하는 축구인들에게 이런 비난 역시 실책만큼이나 일상적 일이지만, 그게 과도할 경우 그 상황에 있어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페널티킥 실축 이후 미국으로 떠난 임국찬과 아무리 노력해도 백태클 퇴장이라는 주홍 글씨가 뒤따르는 하석주는 그 비극을 여전히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옳지 않은 족쇄다.

참담한 실패를 맛본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직후 마치 임국찬이 받았던 맹비난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있다. 한국 축구사에 있어 누구보다도 훌륭한 성공을 거뒀고, 그만치 큰 실패를 맛본 홍명보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홍 전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에 도전하면서 범한 실책,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내비쳤던 고집적 판단에 대해서는 옹호할 생각이 없다. 월드컵 준비 기간이 1년여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로 그를 옹호할 수 있을지 모르나, 홍 전 감독은 그 1년밖에 남지 않은 짧은 기간을 알고 사령탑직을 수락했다. 감독이 된 이상 모든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릴 권한이 있으며, 그만큼 책임도 뒤따른다.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실패하며 주저앉았기 때문에 비난을 감수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게 순리다.

십자 포화를 받고 물러난 상황이 딱하고 애처롭긴 하다. 그러나 홍 전 감독이 A대표팀 사령탑직을 수락한 시점부터 예상되었던 시나리오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를 그릇됐다고는 할 수 없다. "축구로 얻은 명예, 축구로 잃어도 괜찮다"라고 남긴 퇴임의 변은 홍 전 감독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이게 정상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우승 사령탑인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브라질 감독도 홍 전 감독과 마찬가지로 2014 월드컵서 자국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막지 못해 모든 명예를 잃었다. 축구판 생리가 원래 그렇다.

그런데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잃었던 명예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조차 용납지 않는 이 분위기가 너무 살벌한 게 안타깝다. 홍 전 감독은 일선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재단을 통해 어린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여전히 축구장에 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부터 차근차근 재도전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쩌면 46년 전 조국을 등질 만큼 비난을 받았던 임국찬처럼 아예 판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 모를 일이나, 홍 전 감독은 냉혹할 만치 차가워진 분위기에 정면으로 맞서 극복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런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실패를 딛고 다음을 준비하는 이런 모습에도 1년 전 그 일 때문에 비아냥거림과 조롱이 종종 뒤따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다. 전장뿐만 아니라 축구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말이라고 본다. 실패에 따른 갖은 비난을 충분히 감수한 만큼 다시 일어서려고 준비하는 홍 전 감독의 자세는 존중받을 만한 일이다. 때문에 재기 불능 상태라고 단정 짓는, 마치 제2의 임국찬과 같은 인물을 만들려고 하는 일각의 분위기는 매우 온당치 못하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찬란한 업적을 만든 인물이라는 점을 기억하라는 강요가 아니다. 월드컵 실패가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너무 아프기에 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참패의 책임을 지고 밑바닥에서부터 지도자 인생을 다시 시작하려는, 또한 쏟아지는 비난과는 별개로 주어진 자리에서 한국 축구에 헌신하려는 홍 전 감독의 자세에 여전히 날을 세우는 비난 여론은 대단히 잘못됐다. 시쳇말로 자체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씹을 거리'가 필요한 이들의 안줏거리로 전락시키는 게 과연 옳은지 되묻고 싶다.

홍 전 감독의 재도전은 박수받아야 한다. 어떤 자리에서 다시 팬들 앞에 설 수 있을지 모르나 재기하겠다는 용기와 노력 역시 인정받아야 한다. 실패의 책임을 따지는 분위기가 정상이라면, 다시 일어서려는 이에게도 그만한 격려가 뒤따라야 한다. 그게 순리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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