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왜 SK보다 '한화 감독'이 잘 어울릴까

2015. 4.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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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최고의 화제팀은 단연 한화다. 시즌 초반이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만년 하위팀의 선전에 한화 팬은 물론 전체 야구 팬들의 시선이 쏠린다.

벌써 세 번째 만원을 이룬 홈 흥행은 물론 중계 시청률에서도 대박이 났다. 24~26일 주말 3연전의 경우 2% 안팎의 시청률이 나왔다. 케이블 TV에서 이 정도 수치면 가을야구급이다.

한화 신드롬의 중심에는 '야신' 김성근 감독(73)이 자리잡고 있다.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승부사' 김 감독 특유의 야구 철학이 패배 의식에 젖어있던 한화에 구현되고 있다. 올해 12승(10패) 중 절반이 역전승에, 또 그 절반이 끝내기 승리다. 막판까지 향방을 알 수 없는 끈질긴 승부에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사실 김 감독 야구 인생의 전성기는 SK 시절이었다. 생애 첫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일궜고 온전히 시즌을 보낸 4시즌 모두 KS에 나섰으며 그 중 3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이른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SK 왕조'를 구축했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는 정작 SK보다 지금의 한화 사령탑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어울리는 인상을 준다. SK 시절이 김 감독과 맞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한화 지휘봉을 잡고 있는 현재가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를 잘 아는 주변인들이 그렇다고 한다. 왜일까.

▲순탄치 않았던 김성근의 야구 이력

이는 김 감독이 밟아온 독특한 야구 이력 때문이다. 다소 기득권에서 벗어나 있던 삶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재일교포 출신 김 감독이 1960년대 한국으로 넘어와 선수와 지도자로서 고군분투했던 과정은 잘 알려진 사실. 학연과 지연이 만연했던 당시 야구계에서 오로지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인정받은 김 감독이었다.

KBO 리그가 출범한 이후에도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 두산의 전신 OB(84~88년)에서 처음 사령탑에 데뷔한 김 감독은 이후 태평양(89~90년), 삼성(91~92년), 쌍방울(96~99년 7월15일), LG(01년 5월16일~02년)을 거쳤다. OB와 삼성에서 두 차례씩 가을야구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이 빛났던 때는 태평양과 쌍방울, LG 시절이었다.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전력에도 불굴의 투지로 가을야구를 수놓았다. 89년에는 인천 연고팀 최초 태평양의 플레이오프(PO) 진출을 이끌었고, 쌍방울 때는 돌격대의 정신의 '벌떼 야구'로 KBO 리그에 신선한 돌풍을 안겼다.

2002년에는 4위 LG를 이끌고 이승엽, 양준혁, 마해영이 버틴 막강 삼성과 KS에서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펼쳤다. 풍족함보다는 얇은 선수층으로 전력을 극대화하는 데 일가견을 보이고 익숙했던 김 감독이었다.

상대적으로 SK 시절은 선수층이 두터웠다. 전임 강병철, 조범현 감독(현 케이티)이 다져놓은 초석이 있었다. 김 감독 부임 전인 2006년 SK는 6위에 머물렀지만 2003년 KS, 2005년 준PO에 나섰던 팀이었다. 가을야구를 할 만한 전력이 충분했다. 김 감독이 꿸 수 있던 구슬이 너끈히 서말쯤은 됐던 팀이었다.

▲'구슬이 서말' SK와 '쌍방울보다 못한' 한화

하지만 지난 시즌 뒤 김 감독이 맡은 한화는 SK와 비교할 수 없는 팀이었다. 최근 2년 동안 의욕적으로 FA(자유계약선수)들을 영입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리빌딩과 선수 육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산증인과도 같은 팀이었다.

박철호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는 "올 시즌 전 김 감독님이 종종 '지금의 한화는 예전 쌍방울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걱정을 하시더라"고 귀띔했다. 박 이사는 쌍방울 때부터 SK 시절까지 프런트로 김 감독과 동고동락해왔던 인물이다. 누구보다 김 감독과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나름 팀의 핵심 전력과 기본기가 갖춰졌던 SK에 비하면 한화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박 이사는 "SK가 2006년 6위를 했지만 기본적인 전력은 갖추고 있었다"면서 "특급 선수는 없었어도 잘 하는 선수들이 많았고, 신생팀에 하위권에 있는 동안 신인 지명 상위권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부임 첫 해부터 정규리그와 KS 통합 우승을 일굴 수 있었던 이유다. 잘 다져진 초석에 김 감독의 용병술이 더해진 결과였다. 김재현, 박재홍(이상 은퇴), 이호준(NC), 이진영(LG), 정근우(한화), 박정권, 박재상 등의 타선에 채병용, 윤길현, 정우람(이상 SK), 정대현(롯데) 등이 마운드에서 맹활약했다.

한화는 최근 6시즌 동안 5번이나 최하위에 머물렀다. 특히 최근 3년 동안은 꼴찌를 도맡았다. 2013년에는 신생팀 NC에도 밀렸고, 정근우와 이용규 등 137억 FA가 합류한 지난해도 최하위였다. 특히 팀 평균자책점(ERA)이 6.35, KBO 리그 출범 첫 해인 1982년의 삼미(6.23)를 넘어선 최악이었다.

▲야신의 야구, 한화에서 더욱 진가

그런 한화를 맡은 김 감독이 시즌 초반이지만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27일 현재 한화는 12승10패로 올 시즌 우승후보로 꼽히는 SK와 공동 4위에 올라 있다.

한화의 팀 타율은 8위(2할5푼9리), 팀 ERA는 7위(4.97)에 머물러 있다. 투타에서 하위권인데 팀 성적은 상위권이다. 박 이사는 "예전 쌍방울 때도 그랬다"고 운을 뗐다. 그는 "특급 선수 없이 고만고만한 투수들로 상황에 맞게 운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김 감독이 말하는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벌떼 야구라는 말도 SK가 아니라 쌍방울 시절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프링캠프에서 진행된 지옥훈련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한화는 수비율에서 9할8푼1리로 3위다. 실책에서도 16개로 10개 팀 중 7번째로 적다. 가끔 어이없는 본헤드 플레이도 나오지만 후유증 없이 끈덕진 승부를 펼치는 이유다. 하위권 팀을 혹독한 조련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김 감독의 특기다.

김 감독의 장악력이 온전히 선수단 전체에 미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사실 SK 시절 후반기 김 감독은 구단 수뇌부와 마찰이 잦았다. 때문에 김 감독의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때가 많았다. 한 야구인은 "당시 김 감독은 고립된 상황이었다"면서 "훈련이나 선수 영입 등에서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한화는 일단 지금까지는 김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이 대규모로 이뤄졌고, 배영수와 권혁, 송은범 등 FA들도 영입했다. 권혁은 최근 1승4세이브를 올리며 한화 마운드의 기둥 역할을 해내고 있다. SK보다 한화 사령탑이 김 감독에게 더 어울리는 또 한 가지 이유다.

▲쌍방울 시절 불면의 밤, 이제 더 돋보인다

한화의 지원은 예전 쌍방울, 태평양 때처럼 빈약하지 않다. 김 감독의 요구에 100% 가깝게 맞춰주고 있다. 한화 관계자들은 "감독님이 원하는 것들에 최대한 맞추려고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전력만큼은 그러나 한화가 당시 쌍방울보다 낫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쌍방울은 96년 2위 97년 3위로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한화는 올해 초반 선전하고 있으나 포스트시즌을 장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서 김성근의 한화가 더 잘 어울리게 보이는 것이다. 박 이사는 "예전 쌍방울과 지금의 한화는 하위권 전력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면서 "김 감독님은 쌍방울 때는 어떻게 이 전력으로 전술을 짤까 밤을 새우다시피 한 적이 많았는데 지금도 그러신 것 같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더 강한 도전 의식이 생긴다는 것이다. 박 이사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감독님은 더 포기를 하지 않으신다"면서 "예전 쌍방울 시절 수많았던 불면의 밤이 지금 한화에서는 더 업그레드된 게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20년 이상 감독님과 인연을 맺고 있지만 지금처럼 생기가 있는 모습도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SK 시절 김 감독은 야신의 야구 철학을 마음껏 꽃피웠다. 하지만 SK와 인연의 마지막은 아름답지 못했다. 2011년 시즌 도중 사퇴하면서 한동안 KBO 리그를 떠나 있어야 했다. 본인도 말을 쉽게 꺼내지 않지만 아쉬움을 진하게 토로했던 마무리였다.

그런 김 감독이 3년 반여 만에 사령탑으로 돌아온 팀이 한화다. 갖춰진 팀에서도 빛났지만 갖춰가는 팀에서 더 돋보이는 야신. 야구 인생을 정점을 찍었던 김성근의 팀으로 더 어울리는 구단이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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