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 설치 의무화..약일까 독일까

최희정 2015. 4. 28.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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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희정 기자 = "취지는 좋은데…."

정부가 청소년 가입자를 대상으로 유해정보 차단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를 강제한 데 대한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6일부터 시행한 '전기통신사업법시행령' 일부 개정령에 따르면, 이동통신사 대리점은 청소년에 판매하는 스마트폰에 유해매체물을 차단할 수 있는 앱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또 계약 체결 후에도 앱(차단수단)이 임의로 삭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앱이 삭제되거나 15일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부모(법정대리인)에게 알려야 한다.

'청소년을 음란물 등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법의 취지만 놓고 보면 별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법령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정부가 부모 의사를 묻지도 않고 청소년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 탑재 의무화가 부모와 청소년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또 부작용은 없는지를 살펴봤다.

◇자녀 지켜준다 vs 감시 프로그램

27일 방통위와 이통3사, 알뜰폰업계 등에 따르면, 자녀의 휴대폰에 유해물 차단 앱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거부 의사를 나타내거나 삭제 요구를 하는 부모는 아직 없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부모 입장에서는 다들 선호하는 편이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스마트보안관 앱을 설치했다는 한 부모는 "음란물과 자녀에게 해로운 사이트를 부모가 차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용시간을 조정할 수 있어 자녀들이 모바일 게임에 중독되지 않게 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반면 청소년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구글플레이 내 스마트보안관 앱 리뷰에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던 시간이 줄어서 다른 취미를 즐기게 되고 성적도 올랐다"며 앱의 장점을 언급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다수는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 청소년은 "안심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들을 감시하고 구속하는 앱에 불과하다"며 "스마트보안관이 아니라 스마트 감시프로그램 혹은 스마트 올가미라고 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또 다른 청소년은 "차라리 게임 등을 제한 없이 할 수 있도록 해놓으면 질려서 더 하지 않게 될 텐데 왜 이런 앱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이건 스마트폰에다 CCTV를 달아놓은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스마트폰 감시법?

그렇다면 부모가 자녀의 스마트폰에 유해정보 필터링 앱을 설치하고 싶지 않다면 안 할 수 있는 것인가. 또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이 있다면 정부가 부모에게 묻지도 않고,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통제해도 되는 것인가.

방통위가 개정·시행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제37조의8)은 부모의 선택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부모는 어떤 경우에도 이통사의 앱 설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일본도 한국처럼 이통사에 대해 청소년 유해정보 필터링 서비스 제공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예외 조항을 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청소년 인터넷 환경정비법' 제17조 단서-"다만 그 청소년의 보호자가 청소년 유해정보 필터링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신청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방통위 인터넷 윤리팀 정일선 사무관은 "일본의 경우 필터링 앱 설치 여부는 부모가 자녀와 상담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차단 앱 설치 문제를 국민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방통위가 개정·시행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제37조의8)은 모법인 '전기통신사업법'(제32조의7)이 위임한 사항을 벗어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단법인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는 "법에서는 차단 앱을 제공할 것을 정해놓고, 절차나 방법만 시행령에 위임했다"며 "하지만 시행령은 좀 더 나아가 계약 체결 시 차단 앱을 설치한 뒤 설치 여부를 확인하게끔 돼 있다. 또 청소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앱을 삭제하면 15일마다 점검해 이통사가 연락한다. 시행령이 법에서 정한 이상으로 규정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유해정보 차단 서비스를 통해 청소년들이 어떤 서비스에 접속했는지를 다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사업자가 깔도록 강제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이자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 침해다. 부모의 교육권도 침해한다"며 "이런 앱 서비스를 하는 것은 한국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애매한' 차단 기준 등 한계 많아

필터링 앱의 유해 앱·인터넷사이트 차단 기준이 모호한 것도 문제다. 어디까지가 유해하다고 볼 수 있을지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가 않다. 또 어떤 기준으로 차단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도 없다.

이 때문에 청소년 이용자들은 "유해사이트가 아닌데도 접속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스마트보안관을 사용 중인 한 청소년은 "유해사이트라면 납득하겠지만, 아프리카 티비나 웃긴 사이트 같은 곳에도 들어갈 수 없게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SNS)상에 올려놓은 유해콘텐츠를 차단하기 어려운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유해사이트는 해당 인터넷 주소(URL)를 차단하면 되지만 구글과 트위터, 유튜브 등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의 경우 삭제 요청 등 협조를 구할 수 있을 뿐 직접 시정을 할 수 없는 탓이다.

청소년의 자율권이나 부모의 선택권 등 침해받는 권리가 많지만, 청소년 유해콘텐츠 차단이란 목적이 제대로 달성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정부 입법도 아니고, 위임을 받아 시행령을 만들었다"며 "(필터링) 앱 설치 의무화는 음란물 차단뿐 아니라 테러 및 자살 예방이란 목적도 있다. 개정법령 시행 전에 관련 세미나에 가면 부모들은 '진작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고 해명했다.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 어떤 것이 있나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은 개발사들이 유료 또는 무료로 제공하던 서비스를 정부가 의무화하면서 주목을 받은 것일 뿐, 법 시행으로 새로이 생겨난 서비스는 아니다.

가령 SK텔레콤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T청소년 안심팩'(무료)은 2013년 10월, KT의 '올레자녀폰 안심'(유료)은 2012년 5월, LG유플러스의 자녀폰지킴이(유료)는 2013년 3월 출시됐다.

이들 앱은 유해 앱과 인터넷사이트를 차단하는 기능을 기본적으로 제공하나 앱 이용시간 제한, 자녀 위치조회 및 학교폭력 의심문자 알림, 유해동영상 재생 차단 등의 기능을 추가로 제공하기도 한다.

무료 앱으로는 스마트보안관을 비롯해 T청소년안심팩, 엑스키퍼 가드, 웹키퍼모바일, 모바일펜스(향후 유료화 예정)와 맘아이스마트(향후 유료화 예정) 등이 있다.

이밖에 KT나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지란지교소프트 등이 제공하는 유료 앱들은 월 2200~4400원씩을 내면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보안관'이 이들 중 가입자 수(21만명, 2015년 4월8일 기준)가 현재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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