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다독다독]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2015. 4. 2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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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니 가난한 부모였습니다. 아이는 '이승에서의 삶은 끝났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목숨을 끊고는 저승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겠지요. 하지만 대학생들은 이런 자조를 맘껏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청춘의 민낯>(대학가 담쟁이 엮음, 세종서적)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교 수업의 개인 과제나 팀 과제를 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합판 하나를 사이에 둔 고시원에 살면서, 학자금 융자로 벌써부터 천만 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대학생들이 쓴 낙서모음집입니다. 그 책에는 " '서울대를 가야 하는구나'에서 '이과를 가야 하는구나'에서 '외국 명문대를 가야 하는구나'에서 '집이 잘살아야 하는구나'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가능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념과 학력이 달라도 공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느슨한 계급사회가 형성되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1위인 미국이 바로 그랬습니다. <공부의 배신>(원제는 'Excellent Sheep', 다른)은 '엘리트 코스'의 교육을 받고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윌리엄 데레저위츠가 '빅 스리'(하버드, 예일, 프린스턴)를 포함한 미국의 아이비리그가 '똑똑한 학생'들을 지적 호기심이라고는 없는 그저 '똑똑한 양떼'로 만들어내는 한심한 현실을 고발하는 책입니다.

그가 말하는 엘리트란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전문가와 사업가, 상류층과 중류층 그리고 조직의 관리자와 성공한 인물 등 명문대를 나와 자신만의 독점적인 이익을 누리며 사회를 이끄는 무리 모두"를 뜻합니다. 그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작된 '끝없이 주어진 일과' 덕분에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한 경험의 소유자들입니다. "숙제를 해오고, 질문에 답하고, 시험을 치르는" 일만큼은 "순수혈통의 경주마들이 트랙을 도는 장면"처럼 경이롭게 해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 '학생이 되는 법'만 배웠을 뿐 '마음을 알아채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학점, 사교클럽, 장학금, 의과대학 입학, 로스쿨 입학, 골드만삭스 취직" 등의 '마법의 단어'가 자신들의 운명뿐만 아니라 정체성까지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이력서에 쓸 수 없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스펙 쌓기'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들은 "부와 안정 그리고 명성이라는, 제한된 개념 안에서만 움직"이다 보니 결국 "목표의식도 없고, 무엇이 나쁜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길을 창조할 수 있는 상상력, 용기, 그리고 내적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똑똑한 양떼'가 되었습니다.

대학은 "학생을 최고가 입찰자에게 팔아치우는" 이기적인 행동을 앞장서 실행했습니다. "우등생들이 우수한 직장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훈련"시켜서 나중에 기부를 많이 하는 '부유한 동문'이 되기만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만한 투자수익을 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배출되어 지배세력이 된 엘리트들은 "똑똑하고 재능 있고 에너지는 넘치지만, 또한 불안하고 탐욕스럽고 개성이 없고 위험을 회피"했습니다. "용기도 비전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도록 훈련받았을 뿐, 더 나은 것은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훈련받지는 못했"습니다. 신념, 가치, 원칙을 가르치는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전문가란 '지능지수 높은 바보'나 '폭넓은 사색이 부족한 사람'을 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알려준 지배세력이 보여준 행태는 정말 한심했습니다. "더 안전하고 더 싼 약이 있는데도 의사들은 제약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그 회사의 약을 환자에게 과장해 권한다. 대학 총장들은 등록금 급등과 긴축 재정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봉급을 받아 챙긴다.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을 망각하고 로비스트로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단속 기관의 공무원들은 퇴직 후 자신이 감독하던 기업에 당당히 취업한다. 경영진들은 자신의 기업을 노략질한다. 투자은행들은 고객들을 상대로 음모를 꾸민다. 회계회사 및 신용평가기관 들은 회계장부를 조작한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의 지배층은 국민에게 등을 돌렸다."

저자는 그들 모두 '자신'밖에 모른다고 질타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요? 사람들은 대학이 몰락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격의 대학교>(문학동네)의 저자인 오찬호는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의 대학은 죽은 게 아니라 "아주 생생하게 살아서, 활발히 진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방향이 문제겠지요. 한국의 대학은 미국의 대학을 어설프게 따라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저자는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거짓말 자판기'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고 그들이야말로 '똑똑한 양떼'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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