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테니스 국가대표, 이렇게 뽑아도 됩니까?

김기범 입력 2015. 4. 27. 15:49 수정 2015. 4. 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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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를 뽑는 기준은 명확합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국위선양을 할 수 있는, 한 마디로 '가장 잘 하는' 선수가 뽑혀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몇몇 종목에서는 실력순대로 뽑히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주니어 테니스 대표팀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테니스협회는 지난 4월 중순부터 호주에서 열리는 16세 이하 국가대항전인 페드컵에 출전할 3명의 주니어 대표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3명 가운데 2명은 해당 연령대 선수중 국내 랭킹이 높은 선수로 발탁됐지만, 나머지 1명의 선수 선발이 문제였습니다. 중앙여중 2학년의 이 선수는 16세부가 아닌 14부에서 뛰어야 할 선수인데 이례적으로 뽑혔습니다.

이번 선발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통상적인 선발 기준인 국내 랭킹을 무시했다는 점입니다. 중앙여중의 이 선수는 같은 연령대 선수들 가운데 우수한 축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특출한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국제대회 입상이나 국내 대회 우승 등 뚜렷한 성적도 내지 못했습니다. 같은 연령대 선수들 가운데서도 이러한데, 그보다 두 살 위인 16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테니스계의 중론입니다. 적어도 추천 선수 선발에는 최소한의 명분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 선수가 대표 선발권을 갖고 있는 협회 고위 임원의 제자라는 점입니다. 테니스 주니어 대표 선발은 협회 중고연맹 산하의 주니어 육성 위원회에서 책임집니다. 그런데 이 위원회의 수장인 양주식 테니스협회 부회장은 중앙여중과 중앙여고 총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자기 선수를 뽑았다'라는 의심이 테니스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논란이 일자 양주식 부회장은 다음과 같이 해명했습니다.

"페드컵은 단체전이기 때문에 복식을 잘 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해당 중학생 선수가 랭킹이 높지도, 국제대회 입상 경력은 없지만 지난 해 말 국내 주니어 대회에서 괄목할 만한 수준의 기량을 보여줬다. 그래서 당장의 성적도 중요했지만 장래성과 가능성을 보고 선발했다."

"또 국내 랭킹은 그 자체로 허점이 많아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선수인 경우 국제대회 출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랭킹 포인트를 얻기 힘든 구조다. 이 때문에 랭킹보다는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발전 가능성을 보고 선발했다. 오히려 내가 가르치는 학교 제자이기 때문에 더 선발을 망설였지만 선발 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뽑았다."

그러나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입니다. 실제 추천으로 뽑힌 그 선수의 복식 랭킹은 16세부의 경우, 아예 200위권에 들지도 못했고, 14세부에서도 8위에 그쳤습니다. '복식 전문'이라는 명분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또한 발전 가능성만 보고 국가대표를 선발한다면 도대체 그 근거는 무엇인지 많은 테니스 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주니어 국가대표 선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원칙의 부재'로 요약됩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를 뽑는데 마땅한 선발 기준을 전혀 마련해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니어 대표팀 선발은 테니스협회 산하 중고연맹의 주니어 육성 위원회에서 전적으로 결정하는데, 이를 규정으로 삼은 것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 뿐입니다.

[주니어 육성위원회 규정 제3조(기능) 3항]

주니어 육성위원회는 국제테니스연맹 주최 국가대항전 선수단 파견에 관한 사항을 검토 심의한다.

이것이 국가대표를 뽑는 유일한 규정입니다. 즉, 주니어위원회가 심의 토론만 하면 누구든지 뽑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랭킹도, 선발전에 대한 규정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니어 위원회의 '올바른 판단'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상위 단체인 대한테니스협회도 주니어 대표팀의 선발에 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협회 강화위원이 한 명 파견되기는 하지만 주니어 위원회의 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오랜 관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테니스인들은 이런 시스템적인 결함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테니스 지도자는 "주니어위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라. 모두 일선 중고등학교 감독을 맡고 있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 이들이 과연 공정한 선발을 할 수 있겠는가. 또 그런다 한들 주변에서 그 결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며 주니어위원회 구성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는 나아가서 "20년 넘게 중고연맹 수뇌부들은 바뀐 적이 없다. 일종의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고, 다른 지도자들은 그들의 결정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함부로 꺼낼 수가 없는 분위기다"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대표 선발에 관한 잡음은 비단 이번 U-16 여자대표팀에서만 나온 게 아닙니다. 남자 주니어 대표팀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접수됐습니다. 16세 이하 남자 대표팀 가운데 국내 최고 랭킹을 보유한 김재우(남양고)는 아무런 이유없이 주니어 데이비스컵 대표팀에서 탈락했습니다. 이 선수는 올해 종별선수권대회를 우승한 자타공인 국내 최고 선수입니다. 김재우의 탈락에 대해서도 주니어 위원회는 "위원회가 모여 누가 괜찮은지 추천을 받아서 그 선수를 뽑았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납득할 수 없는 '그들만의 기준'으로 선수가 선발되는 관행,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정성과 객관성입니다. 이는 대표팀의 단기적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불공정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대표 선발에는 필연적으로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해당 종목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발 과정에서 애꿎은 희생양이 된 일부 선수들은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요?

대표 선발의 공정성 문제는 현 시점 체육계 전체의 뜨거운 화두입니다. 체육계 최상위 단체인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나섰습니다. 문체부는 테니스 대표 선발 문제점을 다룬 KBS 보도를 접한 뒤 곧바로 대한테니스협회를 상대로 진상 조사에 나섰습니다. 대표 선발에 심각한 비리나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 이를 스포츠 4대악 특별 수사대에 넘긴다는 강경한 대응 방침을 세웠습니다.

대한체육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체육회는 이번 달부터 대표 선발이 공정하게 이뤄지는지를 감시하는 기구인 '대표 선발 공정성 침해 특별 점검반'을 가동했습니다. 체육회의 첫 감사 대상으로 테니스 국가대표 선발 문제점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테니스계는 최근 오랜 숙원 한 가지를 풀었습니다. 주니어 유망주 정현(19)이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88위를 차지해, 마침내 톱 100위 안에 드는 선수를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제 2, 제3의 정현이 나오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그 가운데 무원칙, 불공정으로 상징되는 테니스 대표 선발 구조는 개혁 대상 1호입니다. 묵묵히 노력하는 선수들의 땀을 눈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테니스는 물론,전종목에서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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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9] 실력보다 장래성 우선? 대표선발 논란 여전

김기범기자 (kikiholi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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