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읽어주는 남자]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일까?

조용석 2015. 4.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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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보도한 인터넷 언론사 명예훼손 무죄동호회 게시판에 악플 단 네티즌 벌금형 선고"사기범에 전과자" 비방..사실이어도 명예훼손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사례1. 의료전문 인터넷 언론매체인 A사는 2013년 7월 ‘UAE 귀족 소녀 국내서 척추교정 받다 사망’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아랍에미리트(UAE) 귀족가문의 소녀가 서울 강남구의 한 병원에서 척추측만증 수술을 받다가 과다출혈과 심장기능 이상 등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A사는 사망 사실을 전하면서 ‘개인병원에서 욕심 낼 것 아니라 과다출혈 등을 대비할 수 있는 대학병원에 보냈어야 한다’, ‘이 병원은 응급상황 발생 시 감당할 능력이 없는 소규모 병원’이라고 썼다. 해당 병원은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됐다며 A사를 고소했다.

사례2. 유기견 관련 포털사이트 카페에서 활동하는 박모씨는 조모씨가 유기견을 돕자고 올린 글에 “후원금으로 본인 전자기기도 사고 집 공사도 하고 애들 병원비도 대고..(중략) 제대로 반성하는 맘을 가진다면 이런 식으로 나대진 못할 것 같아요”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격분한 조씨는 박씨를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사례3. 한모씨는 작년 4월 서울의 한 카페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씨와 그 학원에서 교육국장을 일하는 현모씨를 만나 “김모씨는 2년 전 학원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 남부교도소에서 실형을 살고 나온 전과자다. 학원 운영 능력이 없다”고 비난했다. 화가 난 김모씨는 “한모씨가 나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처벌해 달라”고 고소했다. 실제로 김모씨는 실제 학원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 사기죄로 교도소에서 실형을 살고 나온 전과자다.

명예라는 말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라고 정의합니다. 또 다른 사전에서는 평판이나 자긍심과 같은 추상적인 가치라고 말합니다. 평판과 자긍심은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있으니 모든 사람은 보호받아야 할 명예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사례1’을 살펴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법원은 A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명예훼손죄에 있어서 ‘사실의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과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또 적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맞다면 세부적인 부분에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 해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례도 언급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A사가 병원에 대해 언급한 부분, ‘부작용을 처리할 수 없으면 과다출혈 등을 대비할 수 있는 대학병원에 보내는 것이 옳았을 것’, ‘소규모병원으로 응급상황 발생 시 감당할 능력이 없음에도 무리하게 수술을 강행했다’는 내용을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의견표현으로 본 것입니다. 또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중요한 부분이 진실이기에 세부적인 부분에 다소 과장이 있어도 기사 전체가 허위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지요.

‘사례2’는 우리가 인터넷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악플’입니다. 이 기사를 읽고 뜨끔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지방법원은 지난 16일 박모씨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박씨에게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2항이 적용됐습니다. 물론 조사과정에서 조씨는 박씨의 주장처럼 후원금을 유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요.

그렇다면 진실을 말하면 명예가 훼손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례3’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례 속의 한씨의 발언, 김씨가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한씨와 감방 동기라는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법은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김씨의 명예가 훼손된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형법 307조 제1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씨의 변호인은 당시 대화를 나눈 사람이 김씨와 한씨를 포함해 3명뿐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공연성‘이 없었다며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재판부는 개별적으로 한사람에게만 말했다 해도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크다면 공연성의 요건에 충족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변호인의 주장을 기각하고 한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부과했습니다.

물론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가 모두 명예훼손은 아닙니다. 형법 제310조는 ‘사실 적시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할 때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즉 해당 내용이 사실이거나 사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또 단순한 비방이 아닌 공공이익과 관련된다면 무죄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이를 증명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발생하겠지요?

명예훼손은 고소를 할 수도 민사소송을 낼 수도 있습니다. 둘 다 낼 수도 있고 한 가지만 선택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고소를 하게 돼 형사재판을 하면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조사를 하기에 증거를 확보하기 용이하고 또 증거를 민사소송에도 사용할 수 있어 증거가 다소 불충분한 경우 형사와 민사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실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하면 양 측 모두 피곤하긴 마찬가지”라며 “가장 좋은 것은 최대한 남에 대한 개인적인 비난을 자제해 송사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지금 누군가를 험담하고 싶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변호사 선임비용은 여전히 저렴하지 않고 법원은 우리의 시간을 그다지 배려해주지 않으니까요.

조용석 (chojur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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