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스포츠⑧]기보배 "사상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솔직히 욕심나요"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사진 2015. 4. 2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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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하계올림픽의 태권도와 양궁은 소위 '효자종목'이다. 그만큼 나가기만 하면 메달이 보장될 정도로 꾸준한 성적을 거둬왔기에 국민들의 신뢰는 크다. 그러나 막상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 워낙 국민들이 '당연히 금메달'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에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

양궁도 그랬다. 여자 개인전에서 올림픽 6연속 금메달을 이어갔던 한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의 장쥐안쥐안에게 금메달을 내주며 7연속 금메달에 실패했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고 우려 속에 2012 런던 올림픽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기보배(27·광주시청)가 있었다. 기보배는 다시금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양궁의 자존심을 세웠고 이제 그녀는 전설적인 궁사였던 김수녕, 윤미진 등도 해내지 못했던 사상 최초의 올림픽 개인전 2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대표팀 복귀가 확정된 지 이틀 만에 만난 기보배의 눈은 어느새 2016 리우 올림픽을 향하고 있었다.

▶국가대표 탈락이 미친 긍정적 영향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양궁을 볼 때 흥미로웠던 부분은 2년 전만 해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기보배가 선수가 아닌 해설을 맡았던 것이었다. 이에 많은 이들이 벌써 기보배가 은퇴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달랐다. 냉정히 말하면 실력이 부족해 대표선발전에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지 못한 것은 개인적으로도 참 아쉬웠어요. 저 역시 계속 대표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2012년 올림픽 금메달 이후 목표의식이 결여돼 정체성을 잃고 방황한 것이 결국 아시안게임 참가 불발로 이어졌죠. 도리어 전 해설을 하면서 메달을 따내는 선수들을 보니 다시금 동기부여가 됐어요. 한 발짝 물러나니 제가 해야 할 일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거죠."

기보배는 20일 충청북도 보인 공설운동장에서 끝난 2015 양궁 리커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딱 3명에게만 허락된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여왕의 귀환이었다. 기보배는 이로서 자신의 소속팀 연고에서 열리는 광주 유니버시아드, 덴마크 세계선수권대회, 2016 리우 프레 올림픽까지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모든 걸 이룬 기보배가 다시 태극마크를 달아야했던 이유

사실 외부에서 보기엔 기보배가 더 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할 만한 이유가 없어보였다. 그 이유는 그야말로 모든 걸 다 이뤘기 때문. 양궁선수 최고의 영광인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에 단체전까지 금메달(2012 런던),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2010 광저우 단체), 세계선수권도 금메달(2011 토리노 혼성)을 따내며 굳이 맞추자면 그랜드슬램(원래 그랜드슬램은 개인전 올림픽-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 모두 제패, 박성현이 2006년 최초 달성)까지 해냈기 때문이다.

"주위 분들도 모든 걸 이루지 않았냐고 하시기도 해요.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저에겐 꿈이 있어요. 아직 올림픽에서 2관왕은 있었어도 개인전 2연패를 한 선수는 단 한명도 없어요. 바로 제가 그 최초의 선수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물론 '욕심을 버려야지'하지만 그 목표가 계속 활을 잡게 만드네요. 전설적인 선배들을 뛰어넘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요."

1972 뮌헨 올림픽부터 시작된 양궁 여자 개인전은 2012년까지 40년이 흐르는 동안 11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기보배의 말대로 한국은 총 7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보유하긴 했지만 그 누구도 2연패를 달성한 선수는 없다.

기보배가 2016 리우 올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양궁 역사상 전무후무한 올림픽 2연패의 업적이 이뤄지는 것이다. 기보배는 "올해부터 세계대회에서 경험을 쌓으며 차근차근 리우를 준비할 것"이라며 전의를 다졌다.

▶내 인생의 '한발' 런던 슛오프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2012 런던올림픽 여자 개인전 결승전으로 넘어갔다. 당시 기보배는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을 상대로 5세트까지 동점으로 마친 후 누구의 화살이 가장 과녁 정중앙에 가까운가로 승부를 결정짓는 슛오프까지 갔다. 이때 기보배는 상대와 같은 8점을 쏘았지만 5㎜더 과녁 정중앙에 가깝게 쏘아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생각해보니 제가 시청자였어도 마음을 졸였을 것 같아요. 정말 그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조마조마하고 심장이 뛰는 순간이었죠. 사실 당시 제 컨디션은 최악에 가까웠어요. 모든 기술들이 마음대로 안 되고 몸이 굳어있었죠.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심리학 박사님과 많은 얘기를 하며 심리적으로 다 잡은 게 효과가 컸죠. 결국 그런 상황은 실력보다는 정신력 싸움이거든요."

극한의 상황에서 긴장감을 이겨내 끝내 금메달을 따낸 그 순간은 한국 양궁사 뿐만 아니라 기보배의 인생도 바꿔놓았다.

기보배의 인생의 '한발' 런던 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슛오프 후 (왼쪽)와 금메달을 목에 건 모습. ⓒAFPBBNews = News1

"떠올려보면 결국 '그 한발'이 제 인생의 한발이었네요. 물론 당시에는 슛오프에서 이기고 기쁨보다는 '진작 좀 더 잘했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지만 그 한발 이후 국민적 관심도, 제 양궁 인생 모두가 그전과 완전히 달라졌죠. 아직 선수생활을 하고 있기에 당시가 절정이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분명 큰 전환점이었죠."

▶'미녀'라는 말 쓰실 건 아니죠?… IOC위원돼 한국의 올림픽 개최 도우고 싶어

기보배를 언급할 때 '가수 채연 닮은 꼴', '미녀 궁사'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기보배는 지레 "혹시 기사에 '미녀'라는 말 쓰실 건 아니죠? 색다른 수식어 없나요? 부담스러워요"라며 진저리를 쳤다. 여성 선수를 판단할 때 실력보다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세태에 대해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한 명의 체육인으로서 당연히 운동하는 사람에겐 외모보다 실력이 우선이죠. 전 솔직히 그런 풍토에 대해 불만이 있어요. 물론 둘 다 갖추는 것이 현대에는 좋긴 하지만 운동 외에 주목받는 것이 운동선수에게 필요할까요?"

최소 선수생활을 3~4년은 더 하고 싶다는 기보배에게 선수생활 그 이후의 목표에 대해 물어봤다.

"아직 확실치 않아요. 하고 싶은 건 많네요. 먼저 제가 있는 모교(광주여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리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대한 꿈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문대성 IOC위원과 함께 자리하며 이러한 진로에 대해 관심을 가졌어요. IOC위원으로 1988년 이후 없는 한국의 올림픽 재개최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제가 IOC위원이 될 때쯤이면 충분히 현실적일 수 있잖아요? 세계양궁연맹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도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그러려면 영어공부부터 해야겠죠? 아직 꿈이 많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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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jay12@hankooki.com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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