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경환 특파원의 차이나스토리] '공자의 나라' 중국인들이 쓰러진 행인 안돕는 이유

입력 2015. 4. 25. 02:45 수정 2015. 4. 25.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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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할머니 도운 여중생 되레 교통사고 가해자 몰려

중국에서는 도로에서 사람이 차에 치여 쓰러져 있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10시간 넘게 방치돼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손해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중국인들은 남의 일에는 좀처럼 나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참으로 드문 일이 벌어졌습니다. 길에 쓰러진 노인을 위해 달려가 도와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난 3일 안후이성 수청(舒城)의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인 샤오허는 등굣길에 대로변 가판대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길을 건너던 장모 할머니는 도로에 세워둔 샤오허의 전동오토바이 앞에서 쓰러집니다. 급히 달려가 일으켜 세우고 도와줬지만 할머니는 샤오허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샤오허의 전동오토바이에 치였다는 겁니다. 경찰에도 '교통사고' 신고가 들어갑니다.

사건은 흔히 벌어지는 익숙한 과정을 거치는 듯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미심쩍었던 경찰은 여러 차례 사건 현장을 찾았고 결정적인 목격자를 찾아내면서 샤오허의 누명은 벗겨집니다. 샤오허를 몰아세웠던 할머니의 가족도 가책을 느끼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샤오허는 병원에 입원 중인 장 할머니의 가족이 1만여 위안(170여만원)의 병원비 때문에 고생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지난 21일 할머니가 퇴원하는 날 샤오허는 부모를 설득해 1000위안의 현금을 건넵니다. 중국 사람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람에게 다시 은혜를 베푼 이야기'라며 감탄하고 있습니다. 훈훈한 이야기로 맺어졌지만 중국에 '선한 사마리아인'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최근 안후이성 난링(南陵)에서는 한 남성에게 벌어진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화제가 됐습니다. 고향집으로 향하던 장모씨가 교통사고로 거리에 쓰러진 할머니를 늘 그렇듯 모른 척 지나쳤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얘깁니다. 다시 돌아가 구급차를 불렀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곤경에 처한 사람을 아무도 구해주지 않게 됐는지는 불확실합니다. 그래도 대체로 2006년 난징에서 발생한 '펑위(彭宇) 사건'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시 일용직 노동자인 펑위는 버스 승강장에서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고 가족에게 연락해 병원 치료를 받도록 도왔지만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이 사건 이후 중국에서는 선의의 행동이 도리어 자신에게 화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 돼 버렸습니다. 2011년 10월 광둥성 포산(佛山)에서는 두 살배기 아이가 두 번이나 차에 치였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피 흘리는 아이를 본 사람이 18명이나 됐지만 모두 그냥 지나쳤다고 합니다.

이후 중국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지 않는 '견사불구(見死不救)'의 반인륜적 행위를 막기 위해 갖가지 방법이 논의됐습니다. 그 결과 중 하나는 광둥성 선전시에서 2013년 8월부터 시행된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법입니다. 법은 구호자가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구호 과정에서 생긴 문제에 대해 책임을 면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더 나아가 소극적인 면책 수준에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처럼 견사불구 행위를 적극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인륜과 도덕의 문제를 법으로 강제해야 하는 상황이 오늘 '공자의 나라' 중국의 모습입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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