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선생님도 '김치녀'인가요?" 초등 남학생까지 여성 조롱

홍상지 입력 2015. 4. 25. 00:35 수정 2015. 4. 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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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심해지는 남녀갈등"여자들 멍청" 장동민 발언이 불씨유희열도 여성비하 농담했다 뭇매여성들 "저질 남자 많아 실망" 격분남성들 "말실수 너무 몰아붙여" 반발

옛날 이야기 하나. 하느님인 환인의 아들 환웅과 동굴에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다 여성이 된 곰 웅녀가 결혼한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단군 왕검이다. 옛날 이야기 둘. 신은 자신과 닮은 인간 아담을 창조하고 그의 갈비뼈로 여성인 이브를 빚었다. 그렇게 둘은 짝이 되었다.

 남성과 여성은 늘 함께였다. 사랑과 연민, 증오 등 다양한 감정을 나누며 사회 공동체를 일궈 나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따지고 보면 평화의 시대는 없었다. 갈등은 늘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요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에는 온갖 여성 혐오 표현들이 난무하고, 여성들의 분노도 임계점에 도달했다.

 최근 잇따른 유명 연예인들의 망언이 그 불씨를 키웠다. 개그맨 옹달샘(장동민·유세윤·유상무)은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한테 안 된다'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등 1년 전 팟캐스트에서 했던 말들이 문제가 됐다. MBC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옹달샘 멤버 장동민이 출연하면서 뒤늦게 논란이 된 것이다. 가수 유희열은 자신의 콘서트에서 "공연을 할 때 힘을 받을 수 있게 앞에 앉은 여자 분들은 다리를 벌려 달라"고 농담을 던졌다가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여성들은 분노했다. '실수가 아닌 인격의 문제'라는 질타가 쏟아졌 다.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을 반대하는 1인 릴레이 시위도 시작됐다. 그러자 남성들을 중심으로 '말 실수 한 번 갖고 너무 몰아붙인다'는 반발 여론이 생겨났다. 현재는 몇몇 연예인의 부적절한 행위가 '저렇게 생각하는 저질 남자들이 많다니 실망스럽다' '예민한 페미니스트들은 제일 극혐(극히 혐오)이다' 등 남녀 갈등으로 확대된 형국이다.

 특히 온라인에서 남성들의 '여성 혐오'는 극에 달했다. 과거 허영심 많은 여자를 뜻하는 '된장녀'가 유행어였다면 이제는 '김치녀'다. 능력도 없으면서 남성들의 조건을 따지고 받기만을 바라는 '무개념' 한국 여성을 비하한 단어다. 초등학교 교사 김지연(30)씨는 "학교에서 남학생이 '선생님도 김치녀예요?'라고 물어서 놀란 적이 있다"며 "소수 여성의 몰지각한 행동을 여성 전체의 문제로 몰아 조롱하는 분위기를 아이들이 배울까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얼마 전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가입해 논란이 된 김모군은 한국을 떠나기 전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겼다. 주식이 상장 폐지되는 것처럼 여성도 30대가 되면 퇴물이 된다는 '상폐녀',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삼일한' 등 심각한 수준의 여성 비하 단어들까지 등장했다.

 사실 남녀 간의 갈등 중 가장 케케묵은 소재는 '군대'와 '출산'이다. 제대 군인의 군 가산점 폐지 논쟁과 맞닿아 있는 이 갈등은 이제 '둘 중 뭐가 더 힘든지'를 따지는 소모전이 됐다. 올해 초엔 여성의 의무 군 복무를 소재로 한 웹툰도 등장했다. 대학생 최형준(25)씨는 "남성들에게 군 복무란 인생의 가장 꽃다운 시절을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일인데 이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일부 여성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자는 '바깥 사람', 여성은 '안 사람'으로 고정화됐던 남녀의 성 역할이 점점 무너지면서 생긴 문제라고 진단한다. 사실 그 흐름은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성별·인종 등에 대해 편견이 담긴 말을 쓰지 말자는 취지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운동을 전개했고, 한국도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일례로 여검사·여교수 등 직업을 뜻하는 어휘 앞에 '여성'이라는 성별을 붙이는 것은 '원래 남성의 직업인데 여성도 있다' 식의 편견을 부추기므로 지양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렇게 여성들은 더 이상 과거의 엄마 세대처럼 살길 거부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배은경(사회학) 교수는 "고학력 여성이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성은 '여자가 밖에서 고생'이라는 온정적인 가부장적 마인드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고용 환경이 갈수록 불안해지면서 그동안 연인이거나 아내, 딸 정도의 역할이던 여성이 남성에게 경쟁자로 돌변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생긴 이성에 대한 견제 심리가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에서 더욱 여과 없이 표출되는 것이다. 회사원 진모(27)씨도 "여성들은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불리할 때 늘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며 "여성들에게 가장 거부감이 드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만든 피임 홍보 포스터는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포스터 속 여성은 남성에게 자신의 가방과 쇼핑백들을 잔뜩 들게 하고는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옆에는 '다 맡기더라도 피임까지 맡기진 마세요'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여성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남성은 여성의 '가방 셔틀'로 전락시킨 시대착오적인 포스터"라는 비난이 나오자 해당 포스터는 바로 수정됐다. TV 속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남성에게 명품백을 사달라고 조르는 여성, 못생긴 여성을 대놓고 비하하는 남성이 단골 소재다.

 중앙대 이나영(사회학) 교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남녀'라는 탈을 쓴 계급 갈등"이라며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루저가 될 수밖에 없는 많은 이가 분노를 대리 배설할 수 있는 타깃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이 지난한 갈등의 끝은 어딜까. 배은경 교수는 "남자 대 여자 프레임으로는 이 갈등을 풀기 매우 어렵다"며 "타인에 대한 존중과 도덕성 등 남녀를 넘어선 '인간'을 향한 감수성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결국 이 모든 게 '인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S BOX] '전구 교체는 아빠, 컴퓨터 교체는 오빠' 광고도 남녀갈등 유발

'날은 더워 죽겠는데 남친은 차가 없네! 목마를 땐 ○○○○'. 한 음료수 회사가 옥외 광고로 내건 문구다. '남친이 물주냐' '저급한 노이즈 마케팅이다' 등 비난이 쏟아졌다. 해당 기업은 '차(車)가 아닌 차(茶)를 말한 것'이었다며 인터넷에 사과문을 올리고 광고를 철회했다. 이렇듯 기업 광고에서도 종종 성차별적 문구들이 등장해 여론의 뭇매를 맞곤 한다. 최근에는 유명 타이어 업체가 '전구 교체할 땐 아빠, 컴퓨터 교체할 땐 오빠'라는 광고를 게재해 논란이 됐다. '여자는 남자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올해 초 모 통신사는 '더치 페이(Dutch Pay)를 요구하는 남성이 꼴불견'이라는 취지의 SNS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같이 영화 보고 싶지 않은 남자는?'이라는 질문의 보기 중 하나가 '더치페이 하는 남자'였던 것이다. 다른 보기로는 '틈틈이 폰 들여다보는 남자' '영화 보는 내내 해설하는 남자' '정말 영화만 보는 남자' 등이 있었다. 이를 본 네티즌은 "남녀 둘 다 비하한 잘못된 설문이다. '정말 영화만 보는 남자'를 보기에 넣은 건 또 무슨 의도인가"라며 반발했고 회사는 설문을 삭제했다. 전문가들은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접하는 이런 광고들이 남녀 간의 비뚤어진 인식을 더욱 고착화시킨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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