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예멘> 미국 대테러작전 모범생에서 화약고로

2015. 4. 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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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성공사례" 언급 반년만에 내전·외세개입에 휩싸여

오바마 "성공사례" 언급 반년만에 내전·외세개입에 휩싸여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가 난 지 공교롭게 꼭 13년째 되던 지난해 9월 1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예멘을 대(對) 테러 작전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당시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시리아 공습을 발표하면서 그는 "우리를 위협하는 테러세력을 제거해 우방을 돕는 전략은 이미 예멘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돼 왔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흘 뒤 9월21일 북쪽에서 밀고 들어온 시아파 반군 후티는 수도 사나를 사흘만에 점령하면서 예멘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테러 작전의 '모범생' 예멘이 반년 만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은 '아랍의 봄' 이후 평화적 정권 이양이 좌초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예멘은 2011년 말 벌어진 민주화 시위로 이듬해 2월, 34년을 철권통치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가 하야하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이 부풀었다.

민주화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진 이집트, 바레인, 리비아 등과 다르게 예멘은 튀니지와 함께 아랍의 봄 결실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장기 독재의 깊은 뿌리는 예멘의 민주주의를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살레 시절 부통령이던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가 2년 임기의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불행히도 하디 정권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 합법성을 갖췄음에도 정치·군사적 기반이 취약했다.

하디 대통령의 개인 역량 부족일 수도 있지만 그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환경은 민주화를 꽃피우기엔 열악했다.

의회 다수당 국민의회당(GPC)은 여전히 퇴출당한 독재자 살레의 통제 아래였고 군부에서도 살레의 영향력이 건재했다. 하디 대통령은 군 고위 인사의 개혁을 단행, 살레의 장남과 조카 등 측근을 제거하긴 했지만 이는 군 전력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에 맞서야 할 이슬라당, 남부 사회주의 정파 등 야권은 정치 개혁과 민생보다는 정부 요직에 자신의 세력을 심는 눈앞의 이득에 더 관심이 있었다.

과거 적대적이었지만 정권 획득이라는 목표 아래 살레 전 대통령과 전략적으로 내통한 후티는 끊임없이 하디 대통령 정부를 흔들어댔다.

후티가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로 진입했을 때 예멘 정부군은 이를 저지할 전투력이 없었고 살레 편에 선 일부 군장교는 후티의 '진격'을 환영했다.

평화적 정권이양을 맡은 과도 정부에 반기를 든 후티가 쉽게 민심을 얻게 된 배경엔 무엇보다 '빵' 문제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후티가 본격적으로 반정부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은 하디 정부가 재정을 개혁한다며 지난해 7월 정부 재정의 3분의 1(연간 약 20억달러)을 차지하는 연료 보조금을 축소하면서부터다.

이 결정으로 휘발유 가격이 60%, 경유는 95%가 폭등했다.

연료값이 치솟자 하디 정권에 반대하는 민심이 들끓었고 후티는 이를 틈 타 반정부 시위에 앞장서며 지지 기반을 넓혔다.

예멘은 걸프지역 최빈국으로 실업률이 20%에 육박해 이웃 사우디로 밀입국해 허드렛일로 연명하는 젊은이도 허다하다.

산유량은 일일 16만 배럴 정도로 산유국 중 39위에 불과하고 천연가스 생산량도 41위에 그친다.

절대 권력의 갑작스러운 부재와 함께 분출된 민생 문제는 반군이 뿌리를 내리는 좋은 배양토가 됐다.

반군은 수도 장악 뒤에도 예멘에 막대한 군사·경제적 지원을 하는 미국과 사우디의 압력을 고려해 이들의 지지를 받는 하디 대통령을 표면상 인정했지만 약 5개월간 하디 정부와 연방분할 방법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반군은 자신이 차지하게 될 북부 지역에 자원이 풍부한 알자우프와 마리브주, 항구가 있는 하즈자주를 포함해야 한다고 고집했고, 과도 정부는 수도를 반군의 영역에 붙여 이들을 중앙정부가 통제하기 원했다.

반군은 결국 2월 6일 예멘 의회와 내각을 해산하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의 전면에 나섰다.

아덴으로 피신한 하디 대통령은 유엔과 사우디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옛 남예멘 분리주의 세력을 규합해 후티에 저항하려고 했다.

그러나 무력을 앞세워 순식간에 남하하는 후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던 데다 분리주의 세력 내에서도 한때 살레 정권에 협력했던 하디 대통령를 신뢰하지 못했다.

결국 하디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외국의 군사개입을 요청했고 이틀 뒤 사우디 주도의 아랍권 수니파 동맹군이 전격 공습을 개시했다.

시아파 맹주 이란을 반군 후티의 배후로 확신하는 사우디는 걸프 지역에 이란의 교두보를 내주지 않으려고 뜻밖의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혼란한 틈을 타 예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도 동남부 하드라마우트, 샤브와, 아브얀 주를 중심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예멘은 '반군-정부-알카에다'가 서로 총을 겨누는 화약고가 되고 말았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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