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 코 베입니다' 내 컴퓨터에 몰래 깔리는 '어둠의 무늬들'

2015. 4. 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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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람과 디지털] 사용자 속이는 '다크 패턴' 사례

이유없이 PC 느려지고, A 눌렀는데 B 연결되고, 업체에 유리한 부분만 강조되고…

자영업자 고관심(가명·67)씨는 최근 컴퓨터 사용이 부쩍 늘었다. 아내에게 노트북을 선물한 것을 계기로 온라인 주식거래 프로그램이나 전자상거래,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가입 등 다양한 활용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시간이 지나자 컴퓨터가 점점 '느려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사용자 모르게 설치된 여러 프로그램들 때문이었다. "내가 설치한 기억이 없는데 언제 이렇게 깔렸는지 궁금합니다."

밥솥이나 세탁기 등과 달리 컴퓨터는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에 맞춰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설치하고 변형할 수 있는 기기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사용자 모르게 승낙을 얻어내는 경우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스마트폰에서 받은 문자의 링크(웹페이지로 연결되는 파란색에 밑줄이 그어진 문자)를 눌렀다가 깔리는 악성 프로그램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경우는 해킹이나 바이러스 감염과 같은 범죄적 행위에 해당하지만,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사용자가 원치 않았던 일을 하게 만드는 교묘한 일들이 일어난다.

'정보 비대칭' 상황 이용해흑심 품은 디자이너·개발자들의사용자 현혹 컴퓨터 UI·디자인'다크패턴' 덫 피하려면디지털 감시와 이해 수준 높여야

영국의 해리 브링널이라는 독립 디자이너는 이를 '어둠의 무늬'(다크 패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그가 말하는 다크 패턴이란 '사람을 속이기 위해 디자인(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말한다. 여기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란 주로 컴퓨터와 연관된 개념이다. 사람과 기계는 서로 하는 말이 다른데, 둘 사이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돕는 장치나 소프트웨어를 일컫는 말이다. 꼬마나 할머니도 0과 1의 이진법으로 만들어진 컴퓨터를 쉽게 쓸 수 있는 이유는 중간에서 이를 돕는 이런 도구들 덕분이다. 이런 유용한 도구들이 어두운 길을 걷게 되면 다크 패턴이 되는 셈이다.

브링널은 2011년 처음 이 개념을 고안한 뒤 누리집(darkpatterns.org)을 만들어 세계 컴퓨터 사용자들로부터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또 이를 모아 다른 이들도 볼 수 있게 소개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축적된 사례들을 통해 나타난 다크 패턴은 종류만 14가지에 이른다.

앞서 고씨와 같이 많은 사용자들이 당하는 경우는 '바구니에 숨겨넣기'에 해당한다. 사용자는 특정 프로그램을 깔고(구매하고) 싶었을 뿐인데 설치 과정에서 원치 않은 프로그램들이 숨겨져 깔린 경우다. 사용자가 수백만명에 달하는 국내 한 대표적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도 이런 다크 패턴을 활용하고 있다. 설치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찾아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곳에 옵션을 숨겨 놓고 부가 프로그램들을 사용자 컴퓨터에 설치하는 경우다.

'미끼와 스위치'는 광범위하게 쓰이는 속임수다. 사용자에게는 A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용자가 실제로 선택하고 나면 B인 경우다. 다크 패턴 누리집이 소개하는 최근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는 게임 온라인방송 채널 '트위치'의 경우다. 트위치는 온라인에서 쓰는 사용자 이름에 색깔을 입힐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더 많은 색' 단추를 클릭하면 더 많은 색을 정하는 게 아니라 유료 결제 페이지로 이동하는 식이다.

'멀어진 요금청구서'는 논쟁적인 사례다. 통신사나 금융사 등 많은 회사들은 작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사용자가 종이로 된 명세서보다 온라인 명세서를 받도록 유도하고 있다. 환경 보호의 측면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종이 명세서는 사용 명세 등 상세한 내용을 제공하지만 온라인 명세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안 때문에 추가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명세를 확인할 수 없도록 해두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용자는 점점 명세서로부터 멀어진다. 자연히 자신의 소비 패턴에서 불필요하게 쓰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할 가능성이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강요된 지속'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처음에는 사용자에게 무료로 사용하도록 하지만 무료 기간이 끝나면 특별히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유료로 전환해 요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등 월정액을 기준으로 사용하는 온라인 서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숨겨진 비용'은 전자상거래에서 종종 등장한다. 구매자가 최초 본 금액은 저렴했는데, 구매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택배 비용이나 수수료 등이 점점 붙으면서 생각지 않은 액수가 되는 형태다. '현혹하기'(미스디렉션: 마술에서 관객의 눈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기법)도 흔한데, 온라인에서 특정 부분을 화려하게 과장함으로써 회사에 유리한 사용을 유도하는 식이다. 예컨대 여행사에서 특정 상품을 크게 광고하면서 좀더 저렴한 상품은 평범한 검은 글씨로 게재해 눈에 잘 띄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개인정보 저커링'은 사용자가 개인정보를 자발적으로 내놓게 만드는 방식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의 이름에서 따온 점이 흥미롭다. 이밖에도 공짜 등을 미끼로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강요된 노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연계해서 친구들에게 광고를 발송하는 '친구 스팸', 사용자를 유도하는 다양한 기술을 포괄하는 '싼 모텔', 특정 기능을 막판에 못하도록 막는 '도로 통제' 등이 있다. '가격비교 방지', '위장 광고', '속임수 질문' 등은 고전적인 경우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문명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도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의 수를 늘리면서 진보한다"고 말했다. 컴퓨터는 그런 면에서 획기적인 진보를 가져온 도구다. 하지만 그만큼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원치 않는 일을 수행하게 만드는'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사용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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