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국가대표 선발전에 '암행어사' 출도

권종오 기자 2015. 4. 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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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선수들의 꿈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그리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개인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론 각종 포상금과 체육 연금까지 받게 돼 은퇴 후 생활까지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국가대표 선수가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표 선발전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누구나 태극마크를 달고 싶어 하기 때문에 심판 판정에 모든 선수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심판이 납득할 수 없는 판정을 내릴 경우 그 선발전은 불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며 심각한 후유증을 낳게 됩니다.

지난해 3월 열린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를 뽑기 위해 개최된 이 대회는 편파 판정 논란으로 경기가 중단되는 파행을 빚었습니다. 남자부에 출전한 A선수가 B선수에 3회전 내내 우세한 경기를 펼쳤는데도 심판은 B선수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어 열린 여자부에서도 C선수가 D선수를 상대로 우위를 보였는데도 D선수가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해당 선수의 코치는 "누가 봐도 명백한 편파 판정으로 졌다"며 재경기를 요구하면서 링을 3시간이나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국기(國技) 태권도의 경우 국가대표 선발전이 아닌데도 낯부끄러운 부정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지난 2013년 5월 Z 씨는 전국체전 대표 선발전에 나간 자신의 아들이 석연찮은 판정으로 역전패하자 담당 심판에게 원망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경찰조사 결과 특정인의 대학 진학에 유리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승부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돼 더욱 충격을 줬습니다.

이렇듯 국가대표 선발전이나 각종 선발전에서 승자와 패자가 뒤바뀌는 부정과 혼탁 양상이 벌어진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이 일이 아닙니다. 한국 스포츠의 해묵은 고질병으로 특히 심판 판정에 의해 승부가 절대적으로 가려지는 복싱, 태권도, 유도 같은 투기 종목이 심했습니다. 공정성을 생명으로 여겨야 할 심판들이 지연, 학연에 따라 양심을 저버리고 때로는 돈의 유혹에 넘어간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체육계의 대처도 '땜질 처방'에 불과해 판정 비리는 쉽게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스포츠에 만연된 판정 비리를 사전에 막기 위해 대한체육회가 마침내 칼을 빼들었습니다. 각 종목별 대표선수 선발이 공정하게 진행되는지 점검하고 또 조사하는 '대표선발 공정성 침해 특별점검반'을 구성해 상시 운영하기로 한 것입니다. 점검반은 대한체육회 공정체육진흥부, 훈련기획부, 법무팀 소속 직원과 각 종목 전문가 등 5∼6명으로 구성됩니다.

이들의 하는 일과 권한은 굳이 비유하면 일종의 '암행어사'와 같습니다. 새로 제정된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따라 선수 선발이 공정하게 적용·이행되는지를 점검하고, 공정성 침해 사안이 있다는 신고를 받으면 현장에 출동해 직접 조사에서 나설 계획입니다. 또 문제가 예상되는 곳에도 몰래 파견돼 판정 비리가 실제로 발생하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점검반을 이끌게 될 조성태 대한체육회 공정체육부장은 SBS와 통화에서 향후 계획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판정 문제가 발생하면 구성원 회의를 통해 어떻게 처리할 지를 결정할 것이다. 변호사인 법무팀장은 법률적 판단을 할 것이고 전문적인 사항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할 것이다. 사안이 무겁고 불공정 정도가 심각할 경우 대한체육회 상벌위에서 징계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판정에 절대 간여하지 않을 방침이고 우리가 경기장에 왔다는 것도 미리 알리지 않을 것이다. 불공정 시비만 현장에서 면밀히 지켜본 뒤 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대처하겠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각 종목의 스케줄을 미리 확인해 현장 점검이 필요한 대회를 선택할 것이다."

대한체육회 점검반은 내일(22일)경북 안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복싱 대표 선발전에 처음으로 출동합니다. 대한체육회는 올해 안에 국가대표 선발규정 가이드북을 제작·배포하고, 점검반에 신고하는 방법 등에 관한 홍보를 전개해 불이익을 받는 선수들이 없도록 할 방침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뿌리 깊은 불공정 행태가 단시일 내에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심판들이 오직 양심에 따라 판정할 수 있는 환경과 비리를 즉시에 적발할 수 있는 감시 시스템 구축이 급선무입니다. 한국 체육계의 오랜 숙원인 '클린 스포츠'란 목표는 체육회는 물론 선수, 지도자, 심판, 체육 단체 관계자 모두의 노력이 합쳐질 때만 이뤄질 수 있습니다.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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