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김응룡 감독, 난생 처음 선동렬 등 제자들의 생일상을 받다

입력 2015. 4. 21. 09:09 수정 2015. 4. 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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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보았네올라갈 때보지 못한그 꽃

-고은 시인의 시 '순간의 꽃' 중에서

4월 20일 낮 12시께,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 선동렬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을 비롯한 '해태 명가'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스승인 김응룡 전 해태 타이거즈 감독의 75세 생일을 축하하기위한 조촐한 자리였다.

김응룡 감독이 밝힌 자신의 태어난 날은 호적으론 1941년 9월15일로 돼 있지만 실제론 1940년 3월 1일(음력)이다. 올해 음력 3월 1일은 4월 19일로 일요일이어서 해태 시절 제자들이 하루 뒤인 20일에 스승을 모신 것이다.

그 자리에는 이상국 전 해태 단장(전 KBO 사무총장)과 한대화 전 한화 이글스 감독, 양승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이강철 넥센 히어로즈 수석코치 등 '해태 V9'의 역전의 용사들이 함께했고, 천보성 LG 트윈스 감독도 손님으로 참석했다. 당초 참석하기로 했던 이순철 SBS 해설위원과 장채근 홍익대 감독 등은 급한 일정으로 오지 못했다. 천보성 전 감독도 인연이 있다.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 대회 때 김응룡 감독이 처음으로 국가대표 감독 지휘봉 잡았을 당시 대표선수였다. 이들 외에도 1980, 90년대 해태 담당 기자 3명도 오랜만에 얼굴을 내비쳤다.

자리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선동렬 등 제자들로선 '영원한 우리들의 감독'일수밖에 없는 스승 김응룡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고 화색이 돌았다. 막걸리 두어 잔을 마신 김응룡 감독은 "요즘 꽃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다. 꽃이 많은 것도 처음 본다."고 신기한 세상이라는 듯이 진지하게 말했다.

"차를 몰고 아우내 장터로 가는 길에 온통 벚꽃이 천지였는데, 그거 문제 아니야"라는 그의 반문은, 민족의 3․ 1 운동 성지가 왜색으로 물든데 대한 우려였다. 그동안 승부세계에 파묻혀 봄이 오는지 가는지 전혀 느낄 겨를이 없었던 '퇴역 승부사'의 새삼스런 감회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응룡 감독은 자신의 생일조차 챙겨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부산상고를 나와 1961년 대한통운 야구부에 입단, 1965년에 한일은행으로 옮겨 당대의 최고 강타자로, 지도자로 숨 고를 틈 없이 50년 남짓한 세월을 현장에서 부대끼며 살아왔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이제 비로소 '완전한 휴식' 을 갖게 된 김응룡 감독은 "이런 생일 자리를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해마다 시즌에 들어가 있어 기껏해야 며칠 지난 뒤에 집으로 돌아가면 식구들과 늦은 생일 밥상을 받은 게 고작이었다"면서 제자들의 '성의'를 기꺼워했다.

1983년부터 18년간 해태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9번 우승의 신화를 세우고, 2001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2002년에 삼성야구단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그였다. 그의 생애 마지막 감독 자리였던 한화 이글스에서의 2년간의 실험이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은 진하게 남았지만, 그의 공적은 야구박물관 명예의 전당 공로자 자리에 들어갈 최고 후보로 손색이 없는 터.

그는 "밖에 나가보니 나를 해태 감독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70~80%이고 나머지는 삼성 감독이었고, 한화 감독으로 기억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며 크게 웃었다.

김응룡 감독은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사는 곳(경기도 용인 수지) 주변 도서관 5곳에 들러 잡지나 소설책을 읽고 저녁 어스름이 돼야 귀가 한다."면서 "고민할 일이 없으니까 아주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야구 판의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류현진이 미국으로 가는 문제는 감독한테 맡긴다고 하더니, 알고 보니 (한화 구단이) 이미 보내기로 했더라. 대신 투수 두 명만 잡아 달라고 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거(한화 구단이 선수들을 대거 잡아준 일) 보면 (김)성근이는 센가봐."라는 그의 회고담에 주변에선 잠시 잔웃음의 물결이 일었다.

제자들이 번갈아 따라주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받은 김응룡 감독은 "이젠 오래 사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며 건강 얘기로 자리를 매듭지었다. 그에게선 승부의 세계를 떠난 '금단 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글. 사진/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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