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서의 스윙맨]누가 대한민국 최고 소방수였을까

이상서 입력 2015. 4. 20. 06:16 수정 2015. 4. 21. 23: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간스포츠 이상서]

"마무리는 구질은 밋밋하거나 보잘 것 없어도 괜찮지만, 어느 한 가지만은 절대로 믿을 수 있고 타자가 좀처럼 칠 수 없어야 한다. 그들은 곧바로 등판할 수 있을 만큼 워밍업 시간이 짧거나, 사나흘은 연속해서 등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주무기로 삼진 또는 땅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마운드에 올라가는 상황은 주로 누상에 주자가 있을 때고, 그의 임무는 그들이 진루 또는 득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진이나 땅볼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유용하다."

미국의 저명한 야구기자 레너드 코페트(<야구란 무엇인가>, 황금가지 펴냄)의 말이다. 마무리 수난시대다. 봉중근은 보기만 해도 불안하고, 다른 팀의 소방수들도 차곡차곡 블론 세이브를 적립하고 있다. 클로저가 흔들리니 끝내기 승부도 많아졌다. LG는 14일까지 치른 14경기 중 6경기가 끝내기로 승패가 좌우 됐다. 그 많던 마무리 투수들은 어디로 간걸까. 레너드 코페트가 정의 내린 것에 가장 부합하는 역대 마무리 투수들을 꼽아 봤다. 다시 말해 삼진을 많이 잡고, 볼넷은 적게 주고, 안타는 덜 맞은 이들이다. 또 매일 같이 출근 도장을 찍던 투수도 알아 봤다. 대상은 통산 세이브 순위 10위권 이내의 선수들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마무리는 누구였는가?

▲ "사나흘은 연속해서 등판할 수 있어야"

2013년 6월 2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KIA전에서 삼성 마무리 오승환이 세이브를 거둔 후 진갑용과 승리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다.

밥 먹듯 등판 했던 마무리는 누구였을까. 한 시즌에 20세이브 이상 거둔 투수를 대상으로 분석했다. 이들 중 1999년의 진필중과 같은 해 임창용은 유이하게 불펜으로만 70경기 이상 출장한 선수였다. 진필중은 오승환이나 선동열 같은 화려함은 부족하다. 그러나 그의 미덕은 '꾸준함'이다. 진필중이 마무리로서 기량을 만개하기 시작한 시즌은 1998년이었다. 19 세이브를 올리며 괜찮은 성적을 거둔 진필중은 2004년까지 7년 연속 두자릿수 이상 세이브를 거둔다. 이는 오승환 조차 달성하지 못한 업적이었다.

진필중은 1999년 114이닝을 던져 36세이브에 평균자책점 2.37이란 성적을 거뒀다. 진필중 보다 딱 2경기 모자르긴 했지만 임창용도 대단했다. 1999년의 그는 무려 138.2이닝을 던져 개인 통산 최다인 38세이브를 거뒀다. 13 구원승은 덤이었다. 임창용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 연속 130이닝 이상-26 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다.

4위인 2006년 오승환은 63경기에 나와 79.1이닝 동안 4구원승 3패 47세이브에 1.5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참고로 2005년의 오승환 역시 61경기를 불펜으로 나섰지만 세이브가 16세이브에 불과했다. 루키 시즌이었던 그해, 오승환은 10승과 11홀드를 거두는 등 전천후로 활약했다. 이는 오승환의 9년 통산 중 유일한 두자리 승수와 두자리 홀드 기록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1998년의 진필중 역시 61경기(선발 등판은 5번)에 나와 무려 158.1이닝을 던지며 8승(3선발승) 6패 19세이브를 거뒀다. 2009년의 구대성은 71경기나 출장했으나 그 해 세이브 수가 단 한 개에 불과했을 정도로 마무리라 보기 어려웠다.

▲"주무기로 삼진 또는 땅볼로 처리할 수 있어야"

1999년 4월 19일 100승-200세이브를 달성한 LG 김용수의 배번 41번이 영구 결번으로 결정됐다. 김용수가 자신의 유니폼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막강한 구위로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것은 마무리 투수들의 전매특허. 삼진은 많이 잡고 볼넷은 적게 내준 투수는 누구였을까. 역시 한 시즌에 20 세이브 이상 거둔 투수들 중에 9이닝당 탈삼진 비율(K/9)를 꼽았다. 독식이다. 이 부분에는 '넘사벽' 투수가 있다. 바로 오승환이다. 1위부터 3위까지가 모두 그의 차지다. 특히 완벽히 부활했던 2012년엔 무려 13.10 K/9를 기록했다. 오승환은 그 해 2승 1패 37세이브에 평균자책점 1.94란 성적을 거뒀다. 삼진 생산 능력만 빼면 이전 해의 성적은 더 완벽했다. 0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었고(0.63), 2006년 세운 최다 세이브 기록(47)을 또 한 번 달성했다.

2005년 데뷔한 오승환은 2013년까지 444경기에 불펜으로 나와 277세이브를 올렸다. 510.1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1.69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단 13번만 패전을 덮어 썼을 정도로 완벽했다. 전인미답의 300세이브까지는 단 23개만이 남았다. 오승환이 만일 한국에서 야구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다면 1년 안에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숫자다. 오승환 아래로는 구대성과 선동열이 있다. 구대성은 1996년과 1997년, 선동열은 1993년과 1995년 등 각각 두 번씩이나 자신의 이름을 올려놨다.

볼넷도 살펴 보자. 1995년에 선동열을 만나면 걸어 나갈 생각을 아예 접는 것이 좋다. 그 해 33세이브를 수확한 선동열은 9이닝당 볼넷 허용(BB/9)을 단 1.15만을 기록했다. 볼넷에 인색하기론 LG의 수호신 김용수도 못지 않다. 탈삼진 생산 능력은 다소 뒤쳐지나 1994년, 1999년 등 두 번이나 순위권 안에 들었다.

마무리를 논하면서 정명원도 빼놓을 수 없겠다. 1997년의 정명원은 볼넷을 9이닝 동안 불과 1.56개만 내줄 정도로 짠물 피칭을 선보였다. 정명원은 그 해 55경기(개인 최다)에 나와 115.2이닝 동안 2승 10패 28세이브란 성적을 거뒀다. 오승환 얘기는 이제 식상하니 넘어가자.

▲"(타자가) 진루 또는 득점하지 못하게 하는"

볼넷도 싫다. 안타는 더 싫다. 1루 밟는 것이 질색인 마무리 투수가 있다. 피출루율(OOBP)와 피안타율(OAVG)가 가장 낮은 클로저는 누구였나. 선동열은 이 부분을 독식했다. 1993년과 1995년의 그는 피안타율이 고작 0.120과 0.138에 불과했다. 두 시즌 모두 30세이브 이상을 거뒀는데 평균자책점이 좀 충격적이다. 0.78과 0.49(커리어 최저)이다. 특히 1993년엔 마무리로서는 다소 많은 126.1이닝을 던지며 10구원승 31세이브를 기록한다. 49경기(선발 1경기 포함)에 나와 만든 성적이다. 선동열은 한국에서 활약한 마지막 시즌인 1995년에 개인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다. 33세이브. 그에게 두 번째 세이브 왕을 안겨준 해다.

이 정도면 정든다. 피안타율 부문에서 선동열의 아래로는 또 오승환이 있다. 다소 낯선 이름도 보이는데 바로 1991년의 조규제다. 약체인 쌍방울의 뒷문을 지키며 피안타율 0.148을 기록했다. 조규제는 데뷔 첫해였던 그 해 49경기에 나와 9승(2선발승) 7패27세이브란 성적을 거뒀다. 1.64란 평균자책점은 조규제의 통산 성적 중 1993년의 1.42에 이어 가장 좋은 것이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선수는 1996년의 구대성이다. 피안타율에선 6위, 피출루율 부문에선 5위를 기록한 그는 그해 말도 안 되는 성적을 거둔다. 55경기에 나와 139이닝 동안 18승(2 선발승 포함) 3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을 올린 것이다. 불펜진이 규정 이닝을 채운 셈이다. 다시 나올 수 있는 기록일까? 아니, 다시 나와도 되는 기록일까?

▲"마무리는 선발이 갖추지 못한 정신적, 신체적 특질을 가져야"

현대 정명원이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후 환호하고 있다.

"마무리는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오승환은 과거 "중간계투도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수차례 말했다. SK의 불펜투수인 박희수 역시 "생각보다 (불펜 투수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부족해 서운하다"고 말했다. 시즌 초반 KIA로 돌아온 윤석민의 포지션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김기태 감독이 "마무리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자 "90억 짜리 불펜이 어디 있냐"며 비난의 여론이 커진 것이다. KBO 역사상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불펜 투수는 1994년의 정명원(태평양)과 2001년의 신윤호(LG), 재작년의 손승락(넥센) 단 셋 뿐이다. 오승환이 아시아 세이브 신기록을 세워도, 박희수가 불펜으로는 진귀한 80이닝 이상을 던져도, 안지만이 홀드 부문을 개척하는 동안에도 스포트 라이트는 선발진에게만 쏠렸다.

오승환은 "마무리는 외롭다"고 말했다. 오승환의 그 말이 더 절실히 와닿는 마무리 위기의 시대. 어쩌면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불펜진에 대해 적절한 관심(미디어)과 따뜻한 격려(팬)를 보내준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메이저리그는 1976년 부터 40년째 '롤레이즈 구원상'를 재정해 매시즌 최고의 불펜 투수를 뽑고 있다.

해태투수 선동렬의 100 세이브 시상이 1995년 4월 23일에 열렸다.

온라인팀=이상서 기자 coda@joongang.co.kr

▶스윙맨 지난호 보기

※지난 기사인 '혹사 논란'에서 closer fatigue 스탯 가공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명백한 제 실수입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앞으로 숫자 하나도 꼼꼼히 윤문하여 출고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이제부터 제 ▶제 SNS 개인 계정을 통해 오류를 말씀해 주시면 실시간으로 수정 후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적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본, 섹시한 착시 드레스 '보일 듯 말 듯'

클럽 '나체 댄스'女, 이번엔 지하철에도? '신출귀몰'

피트니스 女강사, 온라인 뒤흔든 '콜라병 몸매' 화제

몸짱 치어리더, 그 부분 강조하는 몸짓 '충격'

이청용, 첫 훈련 소화... 그라운드 복귀 수순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