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홀 칩샷·연장 이글샷… '두 번의 기적'

민학수 기자 입력 2015. 4. 20. 03:00 수정 2015. 4. 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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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박인비 제치고 LPGA 롯데 챔피언십 우승… '빨간 바지의 마법' 또 통했다] 18번홀 물에 빠졌다가 그림같은 칩샷으로 연장行… 美언론 "Kim-credible" 가장 먼저 시즌 2승 올려 "이글은 내 생애 두 번째 샷"

"이럴 수도 있나?"

마지막 18번 홀에서 까다로운 칩샷을 성공시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가더니 이번엔 두 번째 샷을 그대로 홀에 집어넣는 샷 이글을 터뜨려 우승했다. 좀처럼 믿기 힘든 미러클 샷을 두 차례 연거푸 성공한 주인공은 '태권 소녀'라는 애칭을 지닌 김세영(22)이었다. 그가 마지막 날 우승의 상징처럼 즐겨 입는 빨간색 바지가 유달리 선명하게 보인 날이었다.

19일(한국 시각)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오아후 코올리나 골프클럽(파72)에서 막을 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총상금 180만달러). 승리는 '골프 여제' 박인비(27)가 차지하는 듯했다. 박인비는 20m 거리의 까다로운 내리막 퍼팅을 홀 10㎝ 옆에 붙이며 여유 있게 파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이브리드로 친 티샷이 생각보다 멀리 나가 물에 빠진 뒤 세 번째 샷으로 그린 주변에 공을 떨어뜨린 김세영은 무조건 칩샷을 홀에 집어넣어야 연장에 갈 수 있었다. 6m 남짓한 거리에서 친 샷이 그린에 떨어져 홀을 향해 구르더니 거짓말처럼 들어갔다. 클럽을 내던지면서 하늘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김세영 특유의 세리머니에 환호성이 터졌다.

18번홀(403야드)에서 벌어진 연장 승부. 하루 종일 분 강풍은 선수들의 클럽 선택을 조심스럽게 했다. 김세영은 4번 아이언으로, 박인비는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티샷을 해 페어웨이에 공을 보냈다. 그린 앞에는 워터 해저드가 위협적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김세영은 홀까지 154야드 거리에서 8번 아이언으로 핀을 향해 두 번째 샷을 날렸다. 공이 그린 프린지에 한 번 튕기더니 그린에 올라 한 번 더 튕기고는 홀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현장의 팬들은 물론이고 "누가 우승해도 어차피 한국 선수"라는 생각에 조금은 느긋하게 지켜보던 국내 팬들까지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장면이었다. 평소 여자 골프에 큰 비중을 두지 않던 미국 골프 채널도 인터넷 홈페이지에 'That's Kim-credible!'이라는 재미있는 제목과 함께 김세영 사진을 가장 돋보이게 실었다.

박인비도 최선을 다했지만 공은 그린에 미치지 못했고 승부는 그대로 끝났다. 박인비는 김세영에게 "어떻게 넣은 거니. 축하한다"라고 말했다.

국내 투어 5승과 미국 투어 1승을 모두 역전승으로 장식했던 김세영은 이번 대회에서는 1타 차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해 우승했다. 지난번 메이저 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3타 차 선두로 출발했다가 역전패했던 김세영은 이날 우승으로 '선두로 출발해도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김세영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생각에 밤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다"며 "이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나를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라운드를 했다"고 말했다.

김세영이 154 야드 거리에서 성공한 샷 이글의 확률은 파3홀에서 티샷으로 공을 홀에 집어넣는 홀인원에 견줘 생각할 수 있다. 보스턴대 수학과의 프랜시스 셰이드 교수가 미국 골프다이제스트의 의뢰로 홀인원 확률을 계산해 '프로 선수는 3000분의 1' '아마추어는 1만2000분의 1'이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파4홀의 샷 이글은 티샷과 두 번째 아이언샷 모두 좋아야 하는 만큼 홀인원보다 더 어렵다고도 할 수 있다.

김세영은 어린 시절부터 '태권 소녀'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태권도장 관장인 아버지 김정일(53)씨의 영향을 받아 12년간 태권도를 배웠다. 공인 3단이다. 163㎝로 큰 키는 아니지만 270야드가 넘는 드라이브샷 거리를 기록해 미국 투어에서도 장타자 소리를 듣고 있다. 김세영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극적 승부를 연출하곤 했다. 2011년 KLPGA 투어에 데뷔해 2013년 4월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 마지막 홀 이글을 잡아내며 첫 승을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그해 한화금융 클래식 때는 4라운드 17번홀(파3)에서 홀인원을 기록해 유소연을 제치고 우승하는 등 강력한 '한 방'으로 팬들을 매료했다.

김세영은 이날 "한화금융 클래식 홀인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 샷이고, 오늘 샷 이글이 두 번째, 정규 라운드 18번 홀의 칩샷이 세 번째"라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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