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약탈, 칼-도끼로 이민자 공격" 남아공 폭력사태, 왜?

2015. 4. 1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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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가게는 약탈당하고 불길이 치솟았다. 시위대는 마체테(날이 넓은 칼)를 휘두르며 이민자들을 공격했다. 겁에 질린 이민자들은 경찰서나 체육관으로 몸을 피했다."

CNN방송은 18일 위험 수위로 치닫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외국인혐오 폭력사태를 이렇게 전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로 무지개 나라로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이제는 인종차별이 아닌 극심한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로 흔들리고 있다.

시위는 이달 초 남아공에서 3번째로 큰 항구도시 더반에서 시작됐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이 불에 타거나 약탈당했고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인 등 최소 8명이 살해당했다. 위협을 느낀 외국인들은 정부와 군이 운영하는 난민캠프로 몸을 피했다. 영국 가디언 지는 "5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참석을 취소하고 16일 더반의 난민캠프를 찾았다. 그는 "이번 폭력사태는 우리가 믿는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더반 인근에서 112명이 체포된 뒤 이 지역의 폭력사태는 다소 진정되는 분위기지만 시위의 불길은 수도 요하네스버그로 옮겨 붙고 있다. AP는 18일 "시위대가 가게를 약탈하고 이민자의 차에 불을 붙였다. 이들은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쌓았으며 경찰은 고무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민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집어 들면서 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TV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높은 실업률 등 침체된 경제상황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실업률이 25%에 이르는 남아공에선 가난한 흑인들이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주장하며 이민자들을 상대로 폭력 및 약탈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남아공 전체 인구 5100만 명 가운데 이민자는 약 2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 수준이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까지 합치면 약 500만 명으로 10%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이민자의 대부분은 짐바브웨 말라위 모잠비크 등 주변의 아프리카 빈국 출신이다. 이들은 인건비가 저렴한데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아 남아공 내 흑인 빈곤층의 가난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달 초 남아공 최대 부족인 줄루족 지도자 굿윌 즈웰리티니 왕이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번 폭력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즈웰리타니 왕은 사태가 확산되자 "언론이 내 발언을 왜곡 보도했다. 이민자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남아공의 제노포비아 폭력사태는 처음이 아니다. 2008년에도 일자리 부족에 분노한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다른 아프리카 국가 출신 이주민 62명이 사망했다. 당시 정부는 1994년 인종분리 정책을 철폐한 뒤 처음으로 군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남아공 사태는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17일 모잠비크에선 200명의 시위대가 국경 인근에서 남아공 차량에 돌을 던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이지리아에선 남아공 기업의 공장들이 폐쇄 협박을 받았다. 각국의 남아공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국민 송환에 나섰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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