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골을 넘는다고 감히 전설까지 넘으랴

2015. 4. 1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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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차범근과 손흥민, 누가 센가
1979년 당시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였던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한 차범근. <한겨레> 자료 사진

19골.

축구팬들의 시선이 19골에 집중됐다. 19골은 아시아 축구의 전설 차범근(62)이 1985~1986 시즌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터뜨린 총득점이다. 19골 가운데 분데스리가 정규리그에서 터뜨린 17골은 아직도 아시아 선수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차범근의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30년 시차를 두고 레버쿠젠에 입단한 손흥민(23)이다. 손흥민은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총 17골을 터뜨렸다. 정규리그에서는 11골로 차범근의 기록과 큰 차이가 나지만 챔피언스리그(본선 3골, 예선 2골), 컵대회(1골)를 합친 총량에서는 차범근의 19골을 두 골 차로 턱밑까지 쫓아왔다. 6경기를 남겨둔 손흥민이 차범근의 기록을 넘어설지에 팬들이 초점이 쏠리면서 ‘차범근과 손흥민, 과연 누가 세냐?’는 식의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정규리그나 챔피언스리그, 컵대회 골에 큰 차등을 두지 않는다. 리그에서 많이 넣었든 리그 밖에서 넣었든 동등하게 골의 가치를 인정한다. 조영증 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은 “유럽의 챔피언스리그는 최강팀들이 나온다. 본선이나 예선이나 승리를 장담할 수 없고, 골은 다 귀중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하재훈 K리그 경기 감독관 역시 “정규리그와 다른 대회의 골을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축구협회 컵대회는 하부리그 팀들도 참가해서 순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것도 골은 골”이라고 했다. 손흥민이 19골 고지를 넘어서면 역사가 되고 기록이 된다는 것이다.

분데스리가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무대

2010년 함부르크에 입단한 손흥민은 2010~2011 시즌 정규리그 13경기에서 3골, 2011~2012 시즌 정규 27경기 5골에 이어 2012~2013 시즌엔 처음으로 두자릿수인 12골(정규 33경기)을 쏘아 올렸다. 함부르크에 머물던 세 시즌 정규리그 78경기에서 손흥민이 양산한 골은 20골이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1000만유로로 알려진 이적료를 함부르크에 안겨주며 2013년 레버쿠젠으로 옮겼고,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 ‘써니’(Sonny) 돌풍을 몰아오고 있다. 동료들의 애칭인 써니 말고도 팬들한테 영어 알파벳의 독일어 발음으로 ‘호잉민 손’이라고도 불리는 손흥민은 지난 시즌 10골에 이어 두 시즌 연속 레버쿠젠에서 두자릿수 득점대로 진입했다.

손흥민의 비중은 팀 내 몸값에서도 드러난다. 이달 3일 독일 <빌트>가 공개한 손흥민의 바이아웃 가격은 레버쿠젠 팀에서 가장 높은 2250만유로로 돼 있다. 바이아웃은 계약 기간이 남은 선수를 다른 팀이 데려갈 때 원소속팀에 내야 하는 최소한의 이적료다. 손흥민의 바이아웃 액수는 팀 간판 카림 벨라라비(2200만유로)보다 높다. 정규리그 11골로 벨라라비와 동률이고,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만 3골을 터뜨린 손흥민의 가치를 팀도 인정하고 있다.

1970~80년대와 2010년대 분데스리가의 위상은 둘을 평가하는 첫번째 잣대다. 전문가들은 일단 70~80년대 분데스리가가 세계 최강이라는 데 동의한다. 한웅수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은 “차범근 선수가 활약하던 당시의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고의 무대였다. 이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서독이 엄청난 통일비용을 부담하게 되면서 주도권이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최근 분데스리가는 재정적으로 가장 탄탄하고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리그로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2010년대 들어 최근 4년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팀을 보면 분데스리가의 뮌헨(2회), 도르트문트(1회)가 3번을 차지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3개 팀)와 동률이었다. 이 기간 결승에 진출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은 2개였다. 최근 4년간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팀을 보면 분데스리가 팀이 7개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10개 팀)보다 적지만 프리미어리그(6개 팀)나 프랑스 리그1(3개 팀), 이탈리아 세리에A(3개 팀)보다 많다. 차범근 감독이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았던 무대에서 뛰었고, 손흥민은 다시 최강 무대로 부상하는 리그에서 뛰는 셈이다.

골을 넣을 수 있는 환경은 어떨까? 차범근이 뛰던 80년대 분데스리가는 힘에서 압도적이지 않고서는 동양 선수가 버텨낼 수 없었다. 아시아 선수로는 예외적으로 체격이 좋고 경주마처럼 각진 허벅지를 갖고 있던 차범근은 덩치 큰 독일이나 유럽의 수비수를 힘으로 무너뜨렸다.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스피드가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윙 포워드 역할로 충분했고 그걸로 통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빠른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았다. 돌파를 해도 빨리 따라와서 바로 태클을 했다. 수비수들의 다리가 길기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태클 영역이 넓었다. 정교하게 볼을 다루지 않으면 빼앗겼다. 많은 부분에서 새롭게 적응해야 했다”고 밝혔다.(2010년 다음-대한축구협회 월드컵 인터뷰 발췌) 차범근은 혼자서 돌파해 골을 넣거나, 홀로 드리블해 크로스를 하면서 골을 돕는 스타일이다. 차범근의 공 간수 능력, 광폭 질주, 결정력이 평가를 받지만 전문가들은 포지션별로 분업화가 이뤄진 당시의 전술 난이도가 지금보다 높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힘보다는 스피드가 떠오르는 손흥민은 어떤 상황에 있을까. 마쿠스 한 <한겨레> 독일 통신원은 “현대 축구가 기술이나 전술적으로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점을 봐야 한다. 과거에는 선수들 사이의 공간이 넓었다. 그러나 현대 축구에서는 최후방 수비와 최전방 공격 사이의 거리가 30m까지 좁혀지고 있다. 더 좁은 공간에서 더 빠른 템포축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전술도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월드컵마다 새로운 유형의 축구가 등장하고 있다. 차범근 시절에는 스리백이나 리베로를 두는 전형이 유행했다면, 지금은 포백에서 다시 스리백, 아니면 파이브백 등 다양한 형태가 혼용되고 있다. 하재훈 감독관은 “축구 전술의 발전은 어떻게 하면 수비를 잘해서 상대 공격수를 막을까라는 목표에서 시작한다. 4-4-2니 3-5-2니 하는 것들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에 현대 축구의 중앙 수비수들은 체격적으로 좋을 뿐 아니라 빠르다. 스트라이커가 버티기 힘드니까 톱 자리를 따로 두지 않고 전방의 선수들이 협력해서 골을 터뜨리도록 하는 제로톱 전술도 나왔다. 옛날 분들은 옛날에 골 넣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지금이 더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레버쿠젠 30년 선후배 두 사람
차범근의 한 시즌 최다골 19
손흥민이 17골 넣으며 쫓아와
과연 손흥민은 대선배 넘어설까
두 사람 중에 과연 누가 더 센가 골 기회에선 스트라이커였던
차범근이 유리했다는 평가
예전보다 수비벽도 더 두터워져
그러나 차범근이 쌓은 성취는
손흥민이 쫓아가기엔 높고 커

어떤 상황에서도 골 넣은 손흥민

차범근은 한국대표팀에서는 주로 오른쪽 날개 공격수로 출전했다. 측면을 직선으로 주파한 뒤 중앙으로 공을 띄우면 이회택이나 김재한이 잡아 골을 넣는 게 대표팀의 제1 득점 루트였다. 직접 해결사로 나서 대표팀 최다골(134경기 59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는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바꿨다. 그는 다음-대한축구협회 인터뷰에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원래 윙 포워드 출신이기 때문에 측면으로 나와 스피드를 살려 드리블을 시도하며 득점을 했다”고 회고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일찍이 멀티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애초 리그 중하위권이던 레버쿠젠은 차범근 입단 첫 무대인 1983~1984 시즌 11위에서 7위로 올라선다. 차범근이 은퇴한 이후인 90년대부터 레버쿠젠은 2차례만 10위 밖으로 밀리는 등 지금까지 톱5의 상위권 팀이라는 입지를 굳혀왔다.

손흥민은 소속팀과 대표팀 두 영역 모두에서 왼쪽 측면 공격수 구실을 하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은 오른쪽 날개나 중앙 미드필드까지 확대해 기용하지만 전공은 왼쪽 윙 포워드다. 이 자리에서 골을 넣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완벽해야 하고, 주변에 있는 동료 선수들을 영리하게 활용해야 한다. 전술 이해력뿐만 아니라 패스 감각, 넓은 시야를 갖춰야 한다. 수비까지 가담하는 등 활동 반경이 크기 때문에 체력 소모도 심하다. 마쿠스 한은 “전체적으로 골을 넣을 기회에서는 스트라이커 위치에 있던 차범근이 유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손흥민은 중원에서부터 스피드를 살려서 침투하거나 주고받는 패스를 통해 공간을 만들어야 기회가 난다”고 했다. 현대 축구 환경에서는 과거보다 그라운드 잔디 상태가 좋고, 공은 더 가볍고 탄력이 있어 공격수한테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실력이 과거보다 상향 평준화되면서 공격수들이 수비벽을 뚫기가 더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는 슈팅력과 헤딩력, 민첩한 움직임과 젊음은 손흥민의 강점이다.

차범근 전 감독의 팬들은 “차범근은 전설이고, 손흥민은 스타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듯하다. 차범근은 유럽이 생소했던 시기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10년을 한결같이 뛰면서 유럽축구연맹컵 정상에 두번 올랐고, 독일축구협회컵(DFB포칼) 우승도 차지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동양 선수가 유럽리그에서 뛴다는 것이 매우 낯설었던 시기였다. 일본의 오쿠데라 야스히코가 먼저 독일에 진출했지만 차범근은 오쿠데라와는 질적으로 다른 선수였고 아시아 선수에 대한 독일 축구팬들의 이미지를 바꿨다”고 평가했다. 최경식 해설위원은 “차범근은 걸어다니는 필드매뉴얼(FM)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다.

아직도 프랑크푸르트나 레버쿠젠의 축구팬들한테 차붐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차범근 이후 허정무, 김주성, 서정원, 이동국, 박지성, 이영표 등 내로라하는 국내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진출했지만 차범근만큼의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다. 특히 몸 관리를 위한 생활습관이나 식단의 엄격함은 전설처럼 들려온다. 한국에서 자기를 보러 손님이나 기자들이 찾아와도 그는 밤 10시가 되면 ‘돌아가라, 내일 훈련하기 위해 나는 자야 한다’며 냉정하게 내쳤다고 한다. 그래서 감정이 상하거나 섭섭함을 느낀 이도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 적응하던 때를 두고 분데스리가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동물의 세계 같았다. 먹고 먹히는 잔인한 세계였다. 빼앗고, 내주고, 사라지는 그 현장을 목격하면서 얼마나 냉혹하고 처절한지 깨달았다. 살아남아야 했다.” 하재훈 감독관은 “아시아 선수가 유럽에서 살아남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하고 주관도 뚜렷해야 한다. 축구에만 전념하는 모습은 축구 후배들이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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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은 마라톤 완주, 손흥민은 겨우 10㎞

축구 외적인 측면에서 차범근이 쌓은 성취는 손흥민이 쫓아가기에는 높고 크다. 조영증 K리그 심판위원장은 “차범근은 그라운드 활약을 통해 독일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 구실을 했다. 대한민국 정부도 못 한 일이다. 단순히 기록만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실제 손흥민은 차범근이 닦아놓은 길 때문에 쉽고 편하고 빠르게 유럽에 진출했는지도 모른다. 한국 기업이 소속팀 레버쿠젠을 후원하는 사례도 차범근 선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다. 레버쿠젠은 손흥민의 상품성을 살리기 위해 경기 출전 등에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마쿠스 한 통신원은 “차범근이 옛 세대의 기억에 남아 있다면, 손흥민은 독일 전체에서 알아주는 선수다. 지금 분데스리가에서 한국 축구의 아이콘은 손흥민으로 통한다”고 전했다. 레버쿠젠이 매우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고, 손흥민이 유럽축구연맹컵(현재는 유로파리그)보다 한 단계 위인 챔피언스리그에서 골을 터뜨리면서 인기는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차범근이 이미 마라톤을 완주한 상태라면 손흥민은 겨우 10㎞쯤을 달린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하재훈 감독관은 “축구 선수로 대성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축구인 아버지 손웅정씨가 지금까지는 철저하게 손흥민을 관리하면서 잘 키워왔다. 앞으로도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손흥민의 미래 전망에 대해서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최경식 해설위원은 “다른 리그로 이적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의 기량을 발전시킨다면 차범근의 10년 분데스리가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나 조영증 심판위원장은 “50대 이상한테 차범근은 이상적인 선수로 남아 있다. 한 리그에서 10년 이상 뛰기도 쉽지 않고 꾸준히 득점하기도 어렵다. 차범근이 이룬 분데스리가의 성과를 넘어서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손흥민은 18일 밤 10시30분(한국시각) 분데스리가 하노버전에 출전해 골을 노린다.

김창금 기자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 김창금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란 말이 있다. 그런데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학창시절도 아닌 군대였으니, 여자들은 이런 마음을 알까? <한겨레> 스포츠 기자로 1999년 이후 줄곧 축구 기사를 써오면서 대한민국 여성들이 마음껏 축구 할 수 있는 날을 만드는 꿈을 간직해왔다. 스포츠 경제와 스포츠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김양희의 야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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