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가 위험하다] 공사 때마다 수십개 管 옮겨… 늘어나는 '지하 빈틈'

김효인 기자 입력 2015. 4. 18. 03:00 수정 2015. 4. 1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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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끝] 지하 상·하수관, 가스관, 송전선 이설 현장 르포 작년 발견한 서울 싱크홀 절반이 '관로 손상'이 원인… 부실 이설작업 영향 커 당장 필요한 '지하 지도' 작년에야 제작 들어가… 상용화까지 수년 걸릴 듯

지난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부근 지하철 9호선 3단계 구간 공사 현장.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높이 5m, 길이 260m, 너비 25m 크기의 널찍한 공사장이 나타났다. 기자의 머리 2m 위엔 지름2.2m 크기 대형 상수도관을 포함해 십수 갈래의 크고 작은 관로들이 천장에 고정돼 있었다. 통신사별 통신선, 가스관, 송전선 등이 구불구불하게 놓인 가운데로 높이 3.5m짜리 하수박스도 보였다. 공사 관계자는 "지하철 공사장은 상·하수도, 통신선, 가스관, 송전선 등 지장물의 총집합소"라며 "서울시내 도로 밑은 어디를 파도 비슷할 것"이라 했다.

공사장은 왕복 8차로 도로가 교차되는 사거리 아래에 있다. 관로들은 2~3m 간격으로 설치된 철제 케이블에 의해 공사장 천장부에 고정돼 있었다. 도로 위로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관로의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간이 다리에 올라 관로에 손을 대보니 땅속에 묻혀 있던 사실을 증명하듯 틈새에서 젖은 흙이 만져졌다. 일부 하수관로에서는 '쉭 쉭' 하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2010년 공사가 시작된 이 구간에는 지하 23m 깊이에 2층짜리 지하철역이 들어섰다. 지금은 보도 쪽으로 출입구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일부 통신선이나 전기선은 지하 공동구를 만들어 묻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는 이 선들이 그냥 땅에 묻혀 있었다. 그 때문에 이 선들과 관로를 고정만 한 채 지하터널을 뚫었다고 한다.

출입구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보도 아래쪽으로 이동하자 상가와 가정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규모 관로들이 빼곡히 놓인 모습이 보였다. 출구가 만들어질 지점에는 여전히 하수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자리에 출입구를 내려면 하수관을 옮겨야 한다. 시공사 관계자는 "하수관 이설(移設)은 인근 다른 관로들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물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는 각도를 유지해야 해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라며 "관로 이설을 잘못하면 지반 침하나 동공이 생길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일 지하철 9호선 삼성중앙역 2번 출구 인근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긴 6개의 싱크홀(sinkhole·지반 침하)은 이런 하수관 이설 작업이 부실해 발생했다. 당시 서울시는 "시공사가 하수관을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비가 내리자 불량 시공됐던 하수관이 접속부를 이탈해 물이 새기 시작했고, 이 물을 타고 흙이 쓸려나가면서 지하에 동공이 생겼다가 싱크홀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작년 도심 3개 지역에서 발견한 25개의 동공 중 52%는 이처럼 관로 연결부 손상으로 발생했다.

서울시 지하에는 상하수도, 통신선, 가스선 등 매설물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서울의 상수도 길이는 총 1만3700여km, 하수도는 1만3900여km 로 서울보다 3배 넓은 일본 도쿄와 비슷한 수준이다. 가스관도 9000km에 달하고, 통신·전기관도 각각 수천km다. 그래서 지하철 공사 등 대형 지하 공사를 할 때마다 이 관로들을 이설해야 한다. 지난달 개통한 지하철 9호선 2단계 구간(4.5km) 공사 중에만 34회의 관로 이설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산하 투자·출연기관이 발주하는 대형 공사는 대부분 턴키 방식(설계와 시공 일괄 공사)으로 진행돼, 매설물 이설 상황을 서울시가 실시간으로 감독하기 어렵다. 이를 악용해 시공사들이 매설물들을 대충대충 옮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이게 싱크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재일 중앙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서울은 급격하게 지하 개발이 이뤄지면서 다른 도시에 비해 지하 지장물이 많고 복잡하다"며 "이 때문에 지장물 이설 공사도 많고 그 과정도 어려워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고 했다.

지장물은 많은데 제대로 된 지하 지도가 없는 점도 문제다. 서울시는 2003년부터 지반정보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2만9800여개의 시추공(지질 조사를 위해 땅속 깊이 뚫은 구멍)을 만들어 주변 지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시추 장소의 지반 단면도만 볼 수 있을 뿐 상하수도·전기·통신 등 매설물에 대한 정보는 한눈에 파악할 수 없다. 9호선 3단계 구간 공사 관계자는 "지장물 정보를 얻으려면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가스공사, 통신사 등 기관에 개별적으로 문의해야 한다"며 "이렇게 자료를 모아도 20~30%는 실제 지하 상황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서울시는 작년 도로 함몰 이력 정보와 지역별 위험도 등급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로 함몰 관리 지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정부도 상하수도, 전기 등 각종 지하 매설물 정보를 한데 모은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전국 지도는 데이터를 측정하는 데만도 3년가량 걸릴 전망이어서 상용화 시기는 아직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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