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 '기억']케이크·꽃다발·친구들.. 주현아, 왜 너는 없니

정대연 기자 2015. 4. 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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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열일곱 + 하나.. 주현이의 생일잔치

▲ "기억나? 몰래 피운 담배?" 친구 폭로에 다들 '하하하'"못해본 거 많았을 텐데…" 엄만 되레 마음이 놓인다

치킨, 잡채, 떡, 미역국을 차린 밥상에 엄마, 아빠, 동생과 친구들이 둘러앉았다. 꽃다발이 놓인 테이블 위 케이크에 촛불이 타올랐다. 이 잔치엔 생일 맞은 이를 격려하고 살아갈 날을 축복하는 떠들썩함은 없다.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정작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자리하지 못했다. 잔치 도중 간간이 흐느낌도 흘러나왔다.

이날 생일잔치의 주인공은 1년 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안주현군(사망 당시 17세). 지난달 28일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는 '치유공간 이웃'의 스물다섯평 남짓한 공간은 주현이의 특별한 생일잔치를 찾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창가엔 색색의 줄에 빨래집게로 고정한 주현이 사진들이 걸렸다. 부엌에서 나온 고소한 음식 냄새가 마룻바닥을 채웠다.

세월호 희생자인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씨가 생전에 아들이 애지중지했던 전자기타를 매만지고 있다. 김씨는 아들의 빈방을 아직 치우지 못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이날 모인 사람들은 이 자리를 '생일모임'이라 불렀다. 심리기획 및 치유자 이명수·정혜신씨 부부가 만든 치유공간 '이웃'에서 운영하는 심리치유프로그램의 하나다. 생일모임을 진행한 정씨는 "그동안 더 슬퍼질까봐 서로 나누지 못한 말들을 마음껏 이야기하면서 울다 웃다 하는 자리"라고 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치유자'들은 한 달 가까이 생일을 준비했다. 가족·친구들은 치유자들을 만나 주현이에 관한 기억을 털어놨다. 이들의 기억 속에 주현이는 '어릴 적부터 멋을 부리고, 기타를 좋아하던 아이, 운동을 좋아하지만 체력은 좀 떨어지는 아이'였다. 치유자들은 기억을 토대로 주현이 삶을 돌아보는 영상을 만들었다. 생일 프로그램을 짜고 음식도 준비했다.

생일모임 중 주현이 영상을 보던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쏟아냈다. 이날 주현이와 친한 단원고 친구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친구 부모들이 생일모임에 왔다. 초·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들이 편지를 써왔다. 친구들은 울먹이다 소리 내 읽지 못할까봐 편지를 서로 바꿔 읽었다. 친구들은 주현이를 "남을 먼저 배려하는 착한 친구"로 기억했다.

주현이가 부모에게 숨긴 비밀도 폭로됐다. 한 친구가 "주현아, 우리 학원 끝나고 같이 담배 피웠잖아"라고 편지를 읽자 70명쯤 되는 사람들이 함께 웃었다. 주현이 어머니 김정해씨(45)는 "주현이가 즐겨보지도 못하고 간 것 같아 한스러웠는데 그(담배 피운) 얘기를 들으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고 했다. 주현이 아버지는 "주현이 친구들 평생 봐야죠. 내 아들 같으니까, 내 아들이니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밝히려 이곳저곳 뛰어다니느라 부쩍 핼쑥해졌고, 아버지는 울보가 됐다. 네살 터울로 형과 같은 방을 쓰던 동생은 요즘 매일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든다.

고 안주현군의 '팬클럽 회장'인 첫째 이모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주현이가 되어 쓴 편지. 주현이는 자동차 연구원을 꿈꿨고 음악을 좋아했다. | 고 안주현군 첫째 이모 제공

주현이의 '팬클럽 회장'인 첫째 이모는 지난여름 함께 가기로 한 호주여행이 한으로 남았다. 둘째 이모는 작년 수학여행 전 주현이를 만났지만 하필 그때 현금이 없어 '다녀오면 꼭 용돈 줄게'라고 한 말을 이날도 되뇌었다. 수학여행 공연이 결정된 뒤 낙원상가에서 첫째 이모가 사준 '크래프트 기타'는 배 안에 잠겨 있다.

문인들도 이 자리에 왔다. 시인 민구가 쓴 생일시를 참석자들이 함께 소리 내 읽었다. 누구도 혼자서는 끝까지 다 읽을 수 없어서다.

"…엄마, 옷을 항상 깨끗이 입던/나 안주현의 빨래가 줄었다고 슬퍼하지 마/이제 그 빨랫줄에 부쩍 커 있을/우리 OO(동생)이 옷을 널어주세요…."

이 시를 쓰려고 민씨는 1주일 동안 주현이로 살았다. 생전 기록을 찾아 읽었다. 책상과 지갑처럼 손에 닿을 만한 곳곳에 주현이 사진을 걸어뒀다. 평소 꿈을 잘 꾸지 않는 민씨는 시를 구상하는 기간 꿈속에서 동생을 걱정하는 주현이를 만났다. 주현이 뒤로 벚꽃이 휘날렸다. 그래서 시제를 '벚꽃나무 편지'로 지었다.

민씨는 시 낭송이 끝나자 "나도 고등학교 때 친구를 화재로 잃었다"고 했다. 그는 주현이 친구들에게 "슬퍼하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위로했다. 생일모임에서 읊은 시는 심리치유에 예술을 접목하는 데 관심이 많은 이명수씨가 평소 친분이 있는 김선우 시인에게 부탁하면서 시작됐다. 취지에 공감한 시인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는 '치유공간 이웃'에서 열린 고 안주현군 생일모임에서 어머니 김정해씨(45)가 생일초를 끄고 있다. 그 뒤로 눈물을 훔치는 둘째 이모와 사촌동생, 친구들이 서 있다. | 박준수씨 제공

사람들은 울다 웃던 자리를 정리하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 초는 가족과 친구들이 껐다. 사람들은 생일상에 모여앉아 두런두런 주현이에 대한 기억을 나눴다. 엄마는 "주현이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줘 정말 감사하다"면서 인사를 돌았다.

서울 배화여중 신호현 교사가 고 안주현군과 어머니·이모를 위해 쓴 추모시(오른쪽)와 편지가 주현이 방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강윤중 기자

'이웃'이 주인공 없는 생일 모임을 준비하는 이유는 자녀 생일이 다가오면 더 불안해지는 '기념일 증후군'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해 4월 초까지 18명의 생일모임을 열었다. 이명수씨는 "부모들에게 고통의 원천이 아이의 부재지만 동시에 기쁨의 원천이기도 하다. 엄마들은 서너시간씩 자식 이야기를 하며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설명한다. '절벽 같은 이별'을 맞은 이들이 떠난 사람을 비로소 애도할 수 있는 심리상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이씨는 말했다. 그는 "한 자리에서 '주현이'라는 말이 이렇게 많이 나오기는 처음일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주현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서로 치유받게 된다"고 했다.

벚꽃나무 편지

엄마, 봄비가 내리면

우리 주현이가 우는구나 생각하지 마

그건 내가 운동을 좋아해서 흘리는 땀방울

자전거 바퀴소리를 들어주세요

엄마가 다정하게 주현아 하고 부르면

새로 조립한 자동차 프라모델을

빨리 보여주고 싶잖아

노을 한가운데 걸어둔 우리 식구 사진

멋쩍어하며 괜히 입 맞추게 돼요

엄마, 옷을 항상 깨끗이 입던

나 안주현의 빨래가 줄었다고 슬퍼하지 마

이제 그 빨랫줄에 부쩍 커 있을

우리 OO(동생)이 옷을 널어주세요

뚜따, OO아

네가 소파에 누워 잠들면 형은 마음이 아파

그래서 네 배를 어루만지며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하곤 해

형이 네게 해준 말이 생각 안 날 땐

화랑유원지 벚꽃나무 아래 가봐

그리고 가만히 귀 기울여봐

수많은 벚꽃들이 다가와 괜찮아, 괜찮아 속삭이며

너를 응원할 거야

환선굴에 놀러가서 힘들다고 투덜거려도

친구와 다투고 마음 상해 있을 때도

내겐 귀엽고 멋진 동생 안OO

화가 나고 힘들면 어때 형한테 말해

나는 언제나 네 편이고 너를 사랑해

아빠, 콜라 고마워요

요새 부쩍 울보가 된 우리 아빠

아빠 우는 거 여기서 다 보여

아빠가 일찍 퇴근해서 끓여준 김치찌개가

엄마가 해준 고추장찌개만큼 그리워요

저는 아직도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함께 조촐하게 먹던 저녁식사와

산과 바다에서 가만히 바라본

우리 아빠 뒷모습을 생각해요

남자끼린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 창피하니까

이모에게 대신 말할게

띠동갑 찰떡궁합 사랑하는 우리 이모!

나 이모 껌딱지 주현이야

함께 호주여행을 못 간다고 아쉬워하지 마

언젠가 이모와 만난다면 우주여행은 내가 쏠게

그때 내가 준비한 이모송을 들으면

아마 무릎을 탁 칠 거야

나는 여기서 이모가 사준 기타를 치고

로이 형보다 멋진 음악을 꿈꾸며 노래를 해

전세계에서 모인 친구들에게 공개하려면

많이 연습해야 하니까 꿈에 다녀가는 게 소홀해도

이모가 이해해줘

잠깐만 이모, 아직 촛불을 끄지 마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줘

나는 이모가 우리를 사랑한 만큼

스스로를 더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건 천기누설급 비밀인데

이모가 그랬듯이 많은 이들이 앞으로

이모들을 더 사랑하게 될 거예요

안녕 얘들아, 많이 기다렸지?

내 생일날 와줘서 진짜 고마워

나는 역시 친구부자구나!

너희들 덕에 생일 아닌 날에도

생일처럼 행복하다는 거 알아?

촛불을 끄려 동그랗게 입을 모으고 있을

멋지고 예쁜 내 친구들아

너희의 따뜻한 입김을 타고서

어느덧 성큼 봄이 왔네

자전거를 타고 축구를 하고

자동차를 만들고 기타 연주하던 기억

항상 잊지 않을게

못 다한 말은 올봄에 자필로 쓸 거야

다 쓰면 벚꽃나무 우체국에 부치러 갈게

부끄럽지만 한 장 한 장

정성껏 읽어줄래?

-씩씩한 목소리로 주현이가 말하고

주현이를 사랑하는 시인 민구가 받아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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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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