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육성] "아내가 갑자기 욕을 하네요..이런 개떡 같은 나라"

2015. 4. 8.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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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故박선균 군 아버지 박형민 씨 인터뷰

[CBS노컷뉴스 권민철 기자]

세월호 참사 1년, 유가족들도 침몰 중

▶ 핸드폰 번호 바꾸고 팽목항으로 이주▶ 거액 받고 잠수탔다? 세월호 가족 이사 소문의 전말▶ 시체장사, 세금도둑…"우리 가슴에 비수로 꽂혀"▶ [세월호 육성] "아내가 갑자기 욕을 하네요…이런 개떡 같은 나라"▶ [세월호 육성] SNS 끊고, 세월호 숨긴 채 회사 다니고…▶ [세월호 육성] "죽은 딸이 거리를 걷고 있데요"

사슴 눈망울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큰 눈은 시종일관 초점을 잃은 채였다.

물기 촉촉이 머금은 스폰지처럼, 누르면 금방이라도 짜질 것처럼 그의 눈은 우수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질문도 굳이 필요치 않았다.

1년의 세월 동안 체득한 '개떡 같은 세상'에 대한 끝없는 저주였고 한탄이었다.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기만, 일부 비뚤어진 사람들의 밑도 끝도 없는 가족들에 대한 비방, 그런 거짓과 불순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열변을 토했다.

그에게 지난 1년의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그는 진실이 바로 설 때까지 자신의 아들은 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는 "우리 애는 유학 가 있는 거다. 언젠가는 올 거다"고 절규했다.

▶ 지금 혹시 누가 더 힘들까?

- 힘든 것은 엄마다. 엄마들이 힘들다.

▶ 얼마나 힘들어 하는가?

- 저 기자님, 이런 소리 하면 뭐한데 옛날에는 저 같은 경우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술 먹으면 보통 새벽 2시, 1시 뭐 빨리 들어가 8시, 9시에 들어갔는데 요즘은 5시, 6시 이러면 집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애 엄마가 어떻게 우울증에 걸릴까봐 겁난다. 무섭다. 그리고 애엄마도 같이 있다 보면 갑자기 일어나서 욕을 한다. 그 다음에 텔레비전 보고 있다 박근혜 나오든 누구 나오든 욕을 한다.

진짜 뭐냐면 우리가 무슨 대통령이나 정부나 지네들이 입으로 뱉었던 약속만 지켜줬어도 욕은 안하고 고맙다고 그럴 거다. 그런데 지네들은 와가지고 우리 면전에서 약속을 다 해놓고 올라가면 안면 까. 이런 식으로 살아왔으니까 우리들은 누굴 믿겠는가? 누구 해가지고 저 새끼들 똑같은 놈이지 저 개새끼 저 죽일 놈 이렇게 되지. 저 새끼 안죽냐 이런식으로 나온다.

솔직히 말해서 정부에서 유가족들한테 우리가 어떻게 해드리겠습니다. 우리 부모들 중에서 누가 돈을 바랬으며, 누가 뭘 요구를 했고 우리 아무 요구도 안했다. 그냥 우리가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은 우리 애들은 다 죽었으니까 생생할 때 안아보고 보내자 한번이라도 만져보고 보내자 그랬다. 애를 그렇게 해달라고 그랬다. 정부에다 다른 요구 않고 그냥 한번 안아보고 만져보고 눈이라도 감겨주고 얼굴이라도 몸이라도 만져보자 그랬다.

근데 정부는 안지켜 주더라. 지금 9명 있잖나. 바닷속. 일년 가까이 있잖나. 지금 바닷속에서. 그럼 그 사람들은 뼈가 있을까? 뼈가 제대로 될까? 그래도 그거라도 한 조각이라도 만져보려고 저렇게 뛰잖은가. 실종자 가족들은…

우린 참 편하다 왜? 우리는 찾았잖아. 저는 우리애 만져보지도 못했다. 25일만에 나왔다. 사고 나고 25일만에 다 불었더라. 그래서 감식원한테 우리애가 흰머리가 많은데 머리좀 봅시다 하는데 머리 가죽이 벗겨지더라. 천을 걷는데 하지 말라고 손대지 말라고 DNA검사 맞고 나는 보겠다고 그리고 말았다. 근데 워낙 살이 불어가지고 만져보지도 못했다. 제 소원은 만져 보는 거였다. 애 엄마 보여주고. 그런데 애엄마 한테도 안 보여줬어. 우리 식구들 아무도 안 보여줬어. 보지말라고 그랬다. 그냥 애가 생생 했을 때 그 모습만 기억하라고. 나머지는 내가 가져가겠다고 절대 보지 말라고.

애 모습은 마지막 모습은 아직 있다. 항상 떠 있다. 근데 어떻게 하진 못한다. 솔직히 말해서 먼저 찾으신 분들은 그 당시는 그랬다. 첫날 이튿날 죽어서 나온 애들은 우리 애들은 살아있겠지 살아있는데 저 사람은 죽어서 안됐다 그랬다.

근데 15일 넘어가니까 뭐라하냐면 찾아간 사람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먼저 올라갑니다. 이러고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있는 사람이 축하한다고 그랬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갔었다. 팽목항하고 진도는 죽은 사람 찾는 건 축하한거고 못찾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찾은 사람들은 얼굴도 못들었다. 그런 세계가 어딨나? 정부는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누굴 믿고 누굴 의지하고 여당, 야당, 대통령 아무도 의지할 수가 없어. 우리가 기댈건 부모 입장에서 국민들이 좀 나서 줬으면 좋겠는데 참 그러더라. 저도 나 아니면 되지, 나만 안당하면 되지, 나만 안당하면 저사람 당해서 아프던 뭐하던 나는 몰라 우리 다 그러더라.

보니까 의정부 사고 나서 참 안됐다. 근데 저 사람들도 힘들겠는데 나는 우리애 죽어서 더 힘든거 같아 내 아픔이 더 큰 거다. 항상 뭐 다른데서 사고 나더라도 좀 조심하지, 뭐하지, 이런 마음은 있는데 근데 나는 우리애가 죽어서 더 아파 난 더 힘들어. 그러고 또 뒷짐지게 되더라.

저희들은 사고를 당한 사람 입장이지만 저희들도 뒷짐을 지는데 안 당한 사람은 오죽하겠나. 근데 저희들은 그냥 시신 9구 찾고 여기 분향소 철거하고 그 다음에 별도로 반끼리 모여서라도 모임을 갖고 싶지. 저 입장만 다른 사람 입장이 아니라 우리 애들 반 우리 애들이 뭉치도록 해줬던 반 그 반끼리 모이는 것은 모르겠고, 그 반들끼리만 이렇게 하고 또 아는 사람 있으면 서로 친하게 지내고 그 수준까지만 됐으면 좋겠는데 없다.

지금 정부에서는 저거 뒤져 엎을지 모른다. 그게 뭐냐면 정부에서 전부 찾아가서 합동 영결식을 해준다고 했다. 우린 그것만 믿고 버티는 거고 근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시신 9구 찾아야지 영결식 할거 아니냐? 같이 보낼거 아닌가? 근데 우리는 분향소라는 걸 만들어 놓고 1년째 애들 보내지도 못하고 있는거다.

영결식도 못했고 애들을 그냥 장례식은 치뤘지만 영결식도 못하고 그냥 있는거다. 그러니 사람이 환장한다. 기자님도 알지만 여기 가만히 보시면 집에 계신 분들도 많지만 직장 그만두고 일 못해가지고 그냥 있으신 분도 많다. 멍하니… 멍하다 직장 나가서 일을 해야되는데… 일거리가 있다 그런데 보고 막 하고 있다 그냥 쳐다만 보고 있다.

일은 못하고 누가 좋아하나 저는 사업자니까 제가 어떻게 해가지고 시간 끌더라도 해가지고 처리하면 되지만 사원들이 그러고 있으면 누가 좋아하겠나? 저 같아도 짤라 버린다. 못 견딘다니까. 대기업 다니시는 분들 말고는 못 다닌다. 중소기업 다녔던 분들은 가끔 얘기하면 내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단다. 자기가 뭘 하고있는지를 모르겠단다. 어떻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데 힘들단다. 일도 하기 싫은데 죽겠단다. 그런데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해야된다. 근데 그것도 안된다.

정부에서는 시간끌기 우리 아사 직전까지 갈지 모르겠는데 원래 그게 정부 방침이었다. 사고 났을 때 정부 방침이 아사까지 가게 만들잖나? 우리 견뎌야 되는데 견딜 힘이 없다. 우리 부모들 지금 이 인터뷰도 그렇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기 싫다. 방송 나가지도 않는다.

우리 4월 16일날 저희 12시에 팽목항 떨어졌다. 저녁 12시에 가가지고 있는데 참 죽겠더라. 비는 부슬부슬 오는데 어디 앉을 자리 없어서 어디 구석지 찾아보고 뭐하고 애 엄마 어디 구석지 찾아놓고 멍 때리고 있고 멍 때리고 바다보는데 조명탄만 4개씩 뚝뚝 떨어지고 있고. 거기에서 또 어느 부모가 애한테 전화왔어 딱 그소리만 들으면 기자들, 부모들 필요없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밟고 지나가고 그거 찍는다고 난리치는데 그럼 방송이 되야 할거 아니냐? 그런 현상이 방송 하나도 안되더라.

방송안되니까, 성질나니까 17일 저녁때 부터인가 기자들 못들어 오게 한다고 막아버리고 이 개새끼들 넘어오면 죽여버린다고 니네들 방송도 안하는 인간들이 왜 찍냐고 가족들이라도 편하게 있어야 되지 않냐고 막았고 체육관 막고 그랬다.

솔직히 뭐 방송도 안되는 거 뭐할라고 열심히들 하나 찍으면 뭐할건데 나중에 증거자료? 언제 발표될건데? 우리 죽은뒤에? 지금 당장 우리는 애 찾아야 되는데 애 찾을라고 난리치고 있는데 맨날 정규 방송 나오는건 세월호 배 엎어져 있는거 그거 나오고 몇 명구했습니다. 몇 명 죽었습니다. 그거만 방송해주지 뭘 해주나? 아무것도 없더라고. 기자님들 못믿는다. 정부 못믿는다. 그 못 믿는게 3일째다. 3일째 부터는 누구도 못 믿는다.

제가 웃긴게 뭔지 아나? 해경한테 우리가 그물 쳐달라. 야 이새끼들아 배 저렇게 엎어지면 산소 없어지지 않나. 산소 공급시켜라. 뭐 해달라. 그물 쳐달라니까 그물 만드는데 3일 치는데 이틀. 야 배 저거 가라앉기 전에 크레인으로 잡고 있어라. 니네 바지 왔잖냐. 그럼 잡고 있어라. 그럼 크레인 안카 박는데 4일 그러다 보면 배 가라앉기 때문에 크레인 들어갈수 없다. 이런 개떡같은 나라가 있나? 뭐하면 뭔 4일. 뭐하면 3일. 그런 개떡 같은 나라가 어딨나? 구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거지 않나?

처음부터 사고 나자마자 만톤짜리 8천톤짜리 6천톤짜리 세 개 와있었다. 3일이나 가면서 100억 썼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 100억은 뭐로 썼는지 모르겠다. 왜 100억이 들어갔는지… 100억 썼단다. 와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최소한 그걸 해가지고 잡아줘야 될거 아닌가? 배는 더 가라앉지 않게 그리고 끌어 내줘야 될거 아닌가? 바닥까지 가라앉게 왜 냅두면서 버티냐고 거기서 크레인 기사하고 머구리 기사 불러가지고 체인 감아가지고 버티는 방법 잡아달라고 하니까 저녁 걸린단다.

서해청장이 거기 하는데 저녁 7시에 미팅하기로 했다. 크레인 기사하고 현대 크레인 기사하고 머구리 기사하고 미팅하기로 했다. 크레인 기사 안온다. 머구리 기사 없다. 난리쳤다. 어떻게 되냐고 11시에 머구리 기사왔다. 그것도 목포에서 잠수했다고 올라온 놈 바로 끌고 왔더라고 헬기 태워서 와가지고 벌벌 떨고 있더라. 머구리 기사 하나 델다 놓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 거기서 막 따지니까 크레인 기사 데리고 오라니까 크레인 기사가 외부로 나가서 뭐 어때서 핑계되더라. 내일 아침이든 세상에 거기가 300명있는 배야 내일 아침이란다. 내일 아침에 데리고 온단다. 우리나라 정부가 이렇다. 우리나라 관공서가 이렇다 누구도 책임 안진다.

지 책임질걸 얘기하고 너 상사한테 전화해라. 저 상사하고 얘기해가지고 끌어오던가 하겠다 전화통화 시켜달라 안된다 전화통화 그거 보셨나? 얼마나 심한지 그래서 뭐했냐 따지고 따지니까 열한시 반 쯤인가 서해청장이 저는 할 게 없습니다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손들더라. 그럼 우린 대통령 찾아간다. 그 마디 하고 딱 방송하고 부모들 데리고 팽목항을 나오는데 관광버스가 한 50대가 있었는데 50대가 없어졌다. 팽목항 주차장에 50대가 사라졌다. 관광버스 자체가 없다 경찰버스밖에…

팽목항에서 주차장까지 거리 되는 거 아시잖나? 거기 걸어오는데 없어졌다. 한 대도 없었다. 체육관에 전화해서 체육관에 있는 관광버스 3대 여기로 보냈다. 팽목항으로 그거 타고 체육관 넘어왔다. 체육관 부모들 설득해가지고 델고 가자고 했는데 체육관에 있는 관광버스가 또 다 사라졌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걸었다. 저녁 1시부터 진도대교 앞에까지 근데 걸어가신 부모들이 한 100여분 된다 근데 경찰은 한 2천명 깔려 있더라. 무슨 나라가 이런가?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나?

▶ 아직도 그날의 답답함이 생생하게 몸을 지배하고 있는 거 같다.

- 저희 우리애 안죽은 거 같다. 우리애 유학 가있는 거 같다. 애 방 물건 하나 못 치운다. 우리애 그냥 유학가있는 거다. 언젠가 올거다. 여기 부모님들 애 잊어먹는 사람 없을 거다. 이사가더라도 애 방 그대로 냅두고 애 물건 그대로 냅두고 손도 못댈거다. 애 물건을 어떻게 손대나?

저도 집에 들어가면 애 방문 우리애는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로봇 같은거 이런걸 만드는 걸 좋아해자기고 A4용지 있다가 인터넷 뒤져보면 조립한거 있더라. 이렇게 잘라가지고 조립해가지고 만드는거. 그거 A4용지 4장, 5장 그거 프린트해가지고 가위로 그걸 일일이 잘라가지고 테이프 본드 칠해가면서 지가 풀칠해가지고 그런거 좋아했다. 지 방에 딱 들어가면 끝이었다. 방을 안 연다. 자기 방에서 그것만 만들고 있었다.

근데 지금 항상 그 문이 열려있다. 그 영정사진 있고 애들 사진 있고 딱 들어가서 보자마자 그것 밖에 안보인다. 근데 어떻게 잊어먹나? 뭘 잊어먹나? 그냥 술로 한 순간이라도 잊어먹으려고 취해가지고 있는거 그거 밖에 더 있나? 근데 잊어먹게 하려면 저희가 이 분향소 안나오게 해야될거 아닌가? 열흘에 한번씩 나오잖나? 그런데 뭘 잊어먹나? 어떻게 잊어먹나? 이런것도 안만들어주고 잊어먹으라고 마음으로 떠나고 어떻게 뜨나? 그걸어떻게 하라고. 지내온거? 좋아요. 이런사람 저 부모님들한테 물어봐라. 4월 15일이나 16일 전일거다 다 거기서 멈춰있다. 그런데 뭘 잊어먹나? 잊어먹을게 뭐가 있는데? 애들은 아직 살아있는데 애들 생일되면 반톡 난리난다. 생일 축하한다고. 근데 뭘 잊어 먹나? 죽은 애 생일을 누가 찾는가 근데 애들 생일이라고 딱 뜨면 반톡 난리난다. 생일 축하한다고 잘보내라고 행복하라고. 이게 자체가 잘못된거다.

설문조사도 지내면서 1년 됐어? 그런거 없어. 몇 년이 가야 잡을지는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렇다. 그냥그냥 하루 지나가는거. 아, 눈 떴다. 아 저 같은 경우는 회사나 가야지 멍 때리다 야 다섯시 됐네 퇴근해야지 집에 왔다. 에이, 몰라 어떻게 됐어 그냥 있어 자 눈떠 이게 방법이다. 그걸 어떻게 하라고 저런 설문조사가 왜 필요하나? 어디 아프냐고? 몰라 어디 아픈지. 근데 다 쑤셔 내가 뭘 했는지 몰라. 내가 어제 뭐했지? 오늘 뭐하지? 에이 그냥 시간 가겠지. 그게 전부인데. 우리 부모님들이 근데 뭘 어떻게 하라고 인터뷰요? 이 정도면 될거 같은데?

▶ 아까 부인 걱정이 많이 되신다고? 치료는 좀 받고 계신가?

- 기자님, 죄송하지만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하나? 저도 우울증 있는데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하나? 그냥 부둥켜 안고 있어야지. 그냥 풀게 끔 냅둬야지. 누구한테 얘기해서 풀어라? 솔직히 말해서 여기 의사분들 있고 심리상담사 다 있다. 근데 이 세월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우리 부모들 여기 가면서 가르친다. 가르쳐서 뭐할건데? 그 사람들 우리 마음 어떻게 아는가? 어떻게 치료해줄건데? 누구한테 하소연할건데? 울라고? 우는거 계속 운다. 애 부모 운다. 애 생각나면 운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하라고? 누가 치료해줄건데? 자조모임 저거 할 때 마다 성질난다. 들어주신단다. 아니 우리 술먹으면서 우리끼리 얘기 잘해. 근데 왜 우리를 울리려고 하나? 울기 싫은데 우리 눈물하나 보이기 싫다. 우리애 살아있을 때는 아예 울지 않았던 사람들이 거의 다 운다. 애 얘기 하다보면… 근데 왜 울리냐고? 울리고 있으니까… 더 싫은거다. 울어야 치료된다고? 그런 개떡같은 소리가 어딨는데? 우리애는 아직 가슴에 살아있다. 그냥 유학 가있고. 그런애를 왜 잊어먹어야 하나? 그렇잖나?

아버지 돌아가시고도 이러지 않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일주일 고생하고 잊어먹었다. 근데 내 새끼 죽으니까 만져보지도 못하고 죽은 애 보니까 안 잊혀진다. 못잊는다. 부모하고 자식하고 틀리다던데… 진짜 뭐냐면 4월 16일 날 정부서 대응만 잘해줬더라면 물론 우리애가 죽을 수도 있어. 근데 304명이나 되는 희생자는 안나왔을거 아니냐? 거기서 50명 30명 최저 희생자만 나왔을거 아닌가? 304명이라는 희생자는 안나온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 그 사람들도 정부에서 할만큼 했구나. 고맙구나. 하면서도 잊어먹을 수 있잖아. 그런데 정부에서 한거 없다.

세월호 넘어지고 대가리 보일 때 비행기 몇 대, 배 몇 대, 뭐 함정 몇 대? 개코는 시발 세월호 죽어있는데. 거기에 떠 있는건 고무보트 몇 대 거기 죽어가지고 밖에서 떠오르는 거 그거 주어서 줄라고 2대, 3대 떠 있는거 그게 전부인데. 그것도 3일동안 그 짓하고 있었는데. 누굴 믿고 누굴 어떻게 하느냐? 우리 애들 죽으라고 그냥 있었다. 걔들은 구할 생각이 없었다. 아예 누굴 믿는가? 방송국에서 헬기 띠어서 찍어가지고 이게 몇 개냐 하고 까줬었으면 그 방송국 되게 좋아했을거다. 그런 방송국 한 군데도 없더라.

그러더라 기자들 아는 사람들이 가서 좀 인맥있다고 해서 알면 공무원들은 세월호에 세자도 못꺼낸다. 기자들 세월호에 대한 기사 못낸다. 정부에서 브리핑 해준거 그것만 해가지고 낸다. 그런 나라다 거기 304명이 죽어가고 있는데…

저 웃긴거 이야기 해드릴까? 저도 이제 어떻게 들었는데 강남에서 계모임하면서 부모님들이 그랬다더라. 세월호 사건나니까 '야 사고나서 저거 돈받으니까 좋겠다. 저거 목돈 받아간다 큰돈 받아간다' 그러더라. 큰 돈 받아가서 좋겠다고? 그 부모들 있었으면 나 죽여버리고 싶어. 자식새끼 죽어가지고 돈 바란다고? 자식새끼가 죽었는데 저 돈 못번다? 요즘 근데 생활비는 옛날에는 200만원 돈 생활비 들어갔다. 그럼 요즘은 한 50만원 들어가나? 두 부부만 먹고 사는데 뭔 생활비가 들어가나? 생활비 안들어간다. 좋더라, 돈 못벌어도 어떻게든 유지는 되니까.

옛날에는 악착같이 벌어야지. 큰 애 등록금내야지 작은 애 분기마다 뭐 내야지 그 다음에 식대내야지 돈 계속 들어가더라. 그 다음에 옷 사입혀야지 돈 안들어가니까 좋데. 그런데 우리 애는 보고 싶데 보고 싶다 미치겠다. 제발 꿈 속에라도 나와달라고… 안나온다. 딱 한번 나왔다. '추석때 아빠 진도내려가? 팽목항 내려가?' 야 아빠가 명절인데 왜 내려가냐? 꿈속에서 딱 그거 아직도 안잊혀진다. 딱 한번 나와가지고 물어본거 진짜 보고 싶다. 꿈속이라도…

진짜 꿈속에서 우리애가 졸업식인지 방학식인지 있는데 뭐 끝나가지고 했는데 만나가지고 '아빠, 애들 몇 명 팽목항 간데. 아빠 가?' 그럴때는 나 팽목항 2주에 한번씩 내려가 추석 전에는 2주에 한번씩 내려갔던 데다 아빠는 내려가? 그 소리 들은거. 내가 팽목항 내려갔으면 우리 애들은 다 올라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안한 생각도 든다. 추석때 우리 아들이 나한테 힌트 준거 아니었나 아빠가 가 가지고 있었으면 애들 나온다고 힌트 준거 아니었나 그런 죄스러움도 있고 난 그 꿈 밖에 기억안난다. 근데 또 보고 싶다. 어떻게든 봤으면 좋겠다 꿈속에서라도…

▶ 보고 싶을 땐 어떻게 하나?

- 술 먹고 잔다. 뻗는다. 어떻게 하나? 우나? 집사람도 우울증 있는데 내가 거기서 울고 있으면 어떻게 되나? 취할 정도 먹고 잔다. 애 방 한번 쳐다보고 술 먹고 한번 쳐다보고. 방 들어가서 뻗어버리고. 아침이 되면 또 출근해야지 뭘 더하나? 할 수 있는 게 없다.

▶ 애 방도 볼 수 있나?

- 그건 저희 와이프한테 들어야 한다. 저는 권한없다. 집에 대한 권한은 애 물건에 대한 권한도 없고 그건 저 와이프한테 다 맡기고 저도 그렇다. '야, 차라리 이사 가자.' 우리 와이프 여기 분향소, 하늘공원, 집 이거다 가끔가다 저기 마트나 큰 데 동네마트는 안간다. 아예 동네 밖으로 안 나간다. 와이프 차있으니까 차 끌고 집 딱 들어가면 끝이다. 동네에서는 나오질 않는다. 집 밖으로 먹고 싶으면 내가 다 마트 가서 음료수 사다줘 빵 사다줘 아이스크림 사다줘. 우리 와이프 옛날에는 배 부르면 안 먹었다. 그런데 배 부른데 자기야 뭐 궁금하다 뭐 사줘 사다주면 그럼 또 꾸역꾸역 먹는다 계속 먹는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 먹여야지. 그거라도 해야지. 그냥 사는 게 흘러 가는 거다. 흘러가는 데로 사는 거다. 친구들 못 만나. 옛날에는 모임도 자주 나갔고 한 달에 두세번은 모임 다녔을거야. 아예 모임 끊어 .외부 모임 다 끊어. 아는 사람 다 끊어.

▶ 왜?

- 왜요? 만나면 뭐할건데 '야 아직도 세월호 안끝났냐?', '야 그거 언제까지 끄냐?', '야 니네 얼마 보상받았냐?', '보상받았다는데 얼마나 보상받았냐?' 뭐라고 하냐?

▶ 친구들도 그런가?

- 네. 뭐라고 하냐? 근데 왜 만나나? 엊그제 오랜만에 시골 동창만났다. 와이프가 먹고 싶다고 해서 명태 간장조림 그걸 사러 갔는데 그 근방에 친구가게가 있다 안본지 일년이 되니까 가서 봤다 '야 오랜만이다. 장사되냐' 물어봤는데 걔가 나중에 한단 소리가 '저 분향소 언제 철거하냐'… 그런 소리가 나오는데 그럼 내가 뭐라고 하나? '야 실종자 다 나와야지 저거 철회하지 어떻게 철거 하냐' 그러고 나와버렸다. 누굴 만나나…

회사가서 있으면 저 거래소들이 공장들이 조그만 가내수공업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기계 팔다보니까 많으니까 나이도 한 60 넘고 그러신 분들이 많다. 야 죽은 자식 잊어먹어야지… 어떻게 사냐? 잊어먹고 일해라? 근데 그 노인네들한테 뭐라고 하나 사장님 그런 소리하지 마십시오. 더 시간이 지나야 되겠죠. 가만히 계십시오. 뭐라고 하나 가서 그소리 딱 듣고 나면 일 안잡힌다. 그냥 작업실 들어가서 뻗는다. 멍하니 있는다. 진짜 그게 일상이다 저희들.

이제 친구들은 워낙 친했던 애들이니까 그냥 부담없이 얘기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부담이 무지 크다. 솔직히 자식 죽어서 돈 바란다고 돈 바래가지고 이사 간다고… 304 가족이다. 학생들만 254명이다. 그러면 그 가족들 중에서 이사가려고 준비하고 전세살았던 사람이 전세기간 끝나서 집 알아보는 사람 없을까요? 그럼 이사가야지 그럼. 그 근방으로 간다. 애 있는 근방으로 멀리도 못간다. 제가 처음에 그랬다. 애들이 우리 발자취를 찾아야 하는데 왜 거꾸로 우리가 애들 친구들을 잡고 애들 뭘 찾을까 애들이 뭐하고 지냈고 학교에서 뭐 했던거 이런걸 찾고 있으니 참 웃기더라. 그걸 찾고 애 사진 한 장 건지면 그것도 고맙다.

우리 애는 사진찍는걸 되게 싫어했다. 집에서 지네 형이 지 사진만 찍으면 형 쫓아가서 멱살잡고 뭐하고 해가지고 핸드폰 뺏어서 지 사진 지웠던 놈이다. 그 사진 한장 찾으려고 아는 사람들한테 혹시 애들이 갖고 있는거 있습니까? 동아리 활동하는 애들한테 선균이 사진 좀 주라 그걸 받으면 또 고마운거다. 그리고 선균이가 우리한테 지 친구들 의정부에서 살다가 선균이 4학년때인가, 4학년때 우리 안산으로 이사왔다. 그러니까 지 깨쟁이 친구들은 다 의정부에 있다 친한 친구들은… 그 의정부 친구들은 아는데 안산와서 친구들은 모른다. 선균이 친구들이 누가 있는지를 모른다 애가 학교와서 딱 집에 오면 집 밖으로는 안나갔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친구인지를 몰라서 친구들 찾으러 다녔다. 사고나고 난 다음에 참 불쌍하다. 참 뭐라고 말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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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권민철 기자 twinpin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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