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산후조리원에 가시렵니까

2015. 4. 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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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성남에서 불붙은 무상 제2라운드… 전략가 이재명 시장 공공산후조리원 설립 계획 밝혀, 무상교복 정책도 법리 검토 시작

"이재명 성남시장이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실시하겠다고 한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정책에 대해 성남시 시민단체의 의견을 듣고 싶어 전화드렸습니다."

"요즘 점점 저출산으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복지정책인 거죠. 재정이 충분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그걸 할 능력이 있다는 것도 훌륭하고 그걸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이재명 시장이 2014년 재선될 때 득표율을 보니 소득이 높은 분당구에서 지지율이 올랐습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저한테 전화하신 분이 <한겨레21> 기자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왜 그러냐 하면 보수단체에서 의도하는 내용들을 질문하시네요. 운전 중이라 이만 끊겠습니다."

"밥과 공부는 자치단체장 능력 문제"

뚝. 5분가량 통화하던 중 전화가 뚝 끊겼다. 성남시의 한 시민단체 대표는 기자의 질문이 이재명 시장을 음해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시행하겠다는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정책에 대해 중립적 태도로 질문한다는 게 오해를 낳았다.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며 자기 영역을 다진 뒤 정치에 입문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렇듯 성남시 안에서 '작은 비판의 기미'에도 민감한 뜨거운 지지층을 갖고 있다.

최근 그 지지층이 성남시 바깥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계기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만들어줬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최근 보편적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하면서 '밥이냐 공부냐' 양자택일하라는 선택의 프레임으로 논의를 끌고 가자 이 시장은 "밥과 공부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예산을 아끼고 가용 재원을 늘리는 (자치단체장의) 능력 문제"라며 '능력' 프레임으로 논의를 바꿨다. 선택은 둘 다 옳을 수 있으나, 능력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나쁜 것이다.

한술 더 떴다. 보편복지 영역 가운데 새로운 '서비스'를 들고 나왔다.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정책이다. 성남시에 20명이 동시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3곳의 공공산후조리원을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성남시의 연평균 출산 인원은 9천 명 선이다. 1명이 2주씩 지낸다면, 연간 최대 1560명이 성남시 공공산후조리원을 이용할 수 있다.

공공산후조리원 이용 가능자 외에 이미 저소득층을 상대로 시행하고 있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파견' 서비스(국비 70%, 지방정부 지원 30%)를 이용하는 1500명을 빼면 6천여 명이 남는다. 성남시는 이들에게도 민간산후조리원 비용 가운데 5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결국 모든 산모에게 산후 돌봄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재명 시장이 3월16일 이 계획을 발표하자 30~40대 남성 이용자가 많은 한 스포츠 사이트 게시판에서는 해당 기사를 스크랩한 글이 그날 '최다 추천' 게시글이 됐다. 댓글들은 대체로 이 정책을 반겼다. "이거 성남으로 이사가야 하나" "예산을 필요한 곳에 잘 쓰네요" "시정 잘하네요. 이러면 이럴수록 젊은 계층의 지지는 높아지겠죠". 관련한 이재명 시장의 페이스북 글,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조례, 성남시의회 통과' 등의 기사들도 최다 추천을 받았다. 성남에 살든 살지 않든 '젊은 남성'들 역시 이 정책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체 복지사업 예산액 매년 늘어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정책은 지난 1월15일 성남시가 발표한 '공공성 강화 3종 세트'의 일환이다. 성남시는 안전·의료·교육 등 세 영역에서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안전과 관련해선 다세대주택·빌라 등이 많은 지역에 공공부문 일자리로 만들어진 '성남시민순찰대'를 배치하고, 이들이 저녁 늦게 어두운 골목을 가는 시민이 안전하게 귀가하도록 돕거나 취약계층을 위한 간단한 집수리, 아이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 시장은 "공공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부조가 급하지만 공공부조만 할 경우 선별의 덫에 갇힌다. 보편 복지를 통해서 모든 시민들이 복지 당사자가 되면 중산층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는 것에 대한 저항이 줄어들고 복지가 지속 가능해진다."

-이상이 제주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의료 공공성을 높이려고 마련한 정책으로는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100만 시민주치의제도 등이 있다. 이 의료 공공성 정책 가운데 하나가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정책이다. 교육과 관련해선 현재 초·중학교 단계까지 시행하는 무상급식은 고등학교까지 확대할 계획이고, 중학교 신입생에게 교복을 무료로 나눠주기 위해 재정 상황과 법리를 검토하는 연구용역도 발주했다.

기초연금 등 중앙정부의 복지정책을 지자체가 대행하는 사업을 제외하고도,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등 성남시 자체 복지사업 예산액은 매년 늘고 있다. 2010년 533억원에서 2015년 880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건물을 짓고 도로를 확장하는 등의 시설사업비는 전임 시장 시절의 절반으로 줄였다.

보편적 복지 시행이 가능한 것은 성남시의 여건 때문이기도 하다. 성남시의 공공부조수급자 비율은 2.8%로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9번째로 낮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빈곤율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상대빈곤율(중위소득 50% 미만 가구의 비중)은 15.7%다. 경기도 시·군 가운데 12번째로 낮다(경기복지재단, <지도로 보는 경기도 빈곤>, 2012). 빈곤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이므로, 취약계층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많은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받는 복지 비중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시민 대다수의 '복지효능감'도 높일 수 있다.

이상이 제주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료관리학)는 "(취약계층에 대한) 공공부조가 급하긴 하지만 이 사업만 벌일 경우, 선별 복지의 덫에 갇힌다. 보편 복지를 통해 모든 시민들이 복지 당사자가 되면 중산층 국민들도 세금을 더 내는 것에 대한 저항이 줄어들고 복지가 지속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공공성 강화 및 보편적 복지 확대'는 2010년 이 시장이 처음 당선된 때부터 내건 공약이었다. '복지 예산 증액 및 보편적 복지 구현'이 10대 정책과제였다. 그가 시장에 재선된 것에 보편적 복지 구현 정책이 영향을 미쳤을까.

분당구민들은 왜 이재명 시장을 뽑았을까

이 시장의 2014년 지방선거 득표율은 2010년에 비해 3.8% 올랐다. 두드러지는 점은 분당구에서의 선전이다. 2014년 선거에서 이 시장의 분당구 득표율은 2010년보다 9.3% 올랐다. 대신 수정구·중원구에서는 각각 2.51%, 1.25% 떨어졌다. 성남시에서 수정·중원구와 분당구 간 생활 환경 격차는 크다. 지금의 성남시 수정·중원구 지역은 1960년대 서울시가 철거민 대책 중 하나로 실시한 이주정책에 따라 땅을 분양해 철거민들을 이주시킨 곳이다. 좁은 땅에 다닥다닥 지은 집들이 늘어선 주거촌의 모습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반면 분당구는 1989년 신도시건설계획에 따라 아파트단지 등으로 조성되면서 비교적 소득수준이 높은 계층이 많이 유입됐다.

이후 수정·중원구와 분당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있는 것처럼 격차가 생겼다. 실제 성남시는 서울의 강남·강북처럼 사이에 둔 강 하나 없이 버스로 10~20분, 지하철역 네댓 개만 가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격차에 대한 체감도가 더 크다. 지지 정당도 많이 갈린다. 18대 대선 결과를 보면 수정·중원구는 문재인 후보가, 분당구는 박근혜 대통령이 더 많은 표를 받았다. 지난 시·도지사 선거에서도 수정·중원구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진표 후보가 표를 많이 받았지만 분당구에서는 남경필 도지사(새누리당)가 더 많은 표를 받았다.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던 분당구민들은 왜 4년 뒤 이 시장을 더 많이 지지했을까. 그 이유로 이 지역 시민들이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복지 정책'보다는 '채무 탈출'이었다. 이 시장은 2010년 당선된 뒤 한 달 만에 전 시장이 호화 청사 건설과 도로 확장, 주거환경개선사업 등 공사를 벌이느라 진 빚이 너무 많다며 모라토리엄(채무지급 유예)을 선언했다. 전임 시장이 진 빚을 나눠서 갚겠다는 것이었지만 '모라토리엄'이라는 용어는 시민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정확히 3년6개월 뒤 "이제 다 갚았다"고 선언했다. 그 드라마틱한 반전이 주는 효과는 '능력 있네' '일 잘하네'였다. 그는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2012년 대전 동구에서 성남시 분당구로 이주해온 장지연(34·가명·한의사)씨는 "당시 대전 동구 역시 호화 구청 청사를 설립하느라 성남시와 똑같이 '부도'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동구는 여전히 돈이 없다. 성남시 역시 호화 청사를 짓느라 7천억원가량 빚을 졌다는데 다 갚았다고 하니까 믿을 만한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최진철(44·가명·회사원)씨도 "채무 7천억원을 잘 갚았다. 지지 정당을 떠나 '잘하고 있다, 헛돈 쓰지 않는다'는 신뢰 정도는 시민들이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지지율이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남시 수정구에 사는 김원녕(42)씨도 "보통 지방정치에 일일이 관심을 갖기 쉽지 않은데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서 깜짝 놀라면서 걱정도 됐고, 나중에 이 위기를 잘 넘기고 회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봤다"고 말했다. 중산층의 지지가 복지정책에 대한 호감보다는 지자체 재정 위기 탈출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방증하는 이야기들이다.

산후조리가 과연 '절박한 복지'인가

이 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복지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확고한 것은 아닌 듯했다.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박혜자(73·가명)씨는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정책에 대해 "또 젊은 애들을 위한 정책이네. 별로 마음에 안 든다"며 말을 아꼈다. 셋째아이를 임신한 이민영(38·가명)씨는 "나도 곧 출산하는 입장에서 산후조리원 이용료를 지원해준다니 고맙긴 하다. 돈이 있어서 준다니 좋긴 한데 꼭 필요한 돈인지는 모르겠다. 당장 문제는 어린이집이다. 이 동네 근처에 3곳이 있는데 대기가 매우 길다. 국공립 어린이집도 늘 모자란다. 재정적 여유가 된다면 차라리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통해 보육이나 돌봄 영역의 질을 높이는 게 더 필요한 서비스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지연씨도 "좀 많은 것은 아닌지, 그 예산을 감당할 수 있는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무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포퓰리즘이다' '꼭 필요한 복지다' 논쟁이 오가는 사이 정작 수혜 당사자가 될 시민들은 아직 예산은 충분한지, 이 정책이 꼭 필요한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성남시가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정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려면 복지정책의 수혜자가 지지자로 이어지게 하는 디딤돌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격차를 해소하는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산후조리원은 평균비용이 300만원 이상인 고가의 시설이어서 중산층이 아니면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과 달리 아이를 낳으면 모두 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격차'가 많이 나는 서비스를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옴으로써 격차를 줄이는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도 "산후조리원 서비스를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오면서 오히려 민간산후조리원의 거품이 빠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보편적 복지'의 영역을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상이 교수는 "출산·육아·보육·교육·의료·노인요양 등 각각의 생애주기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돌봄을 보편적인 사회 서비스로 제공하면,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가 높아진다. 성남시의 정책이 성공해서 무상급식처럼 다른 지자체로, 나아가서는 국가 수준으로 번진다면 의미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산후조리가 과연 '절박한 복지'인가에 대한 토론도 필요해 보인다. 신동면 경희대 교수(행정)는 "이미 임신 단계에서 지원되는 고운맘카드, 양육 단계에서 지원되는 양육비 등 출산·양육 단계에 여러 가지 복지가 제공되고 있다. 산후조리에 대한 지원보다 오히려 지원이 잘 가지 않는, 더 가난한 계층의 양육비를 올려주는 게 필요한 복지가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국의 복지 수준은 낮은 편이다. 국가예산정책처가 노령인구 비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등의 변수를 고려해 각국의 복지지출 지수를 산출한 결과(2010년)에서도 한국의 복지지출은 조사 대상 30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국가의 공공복지지출 수준이 이렇게 낮은 상황에서 이재명 시장이 꿈꾸는 공공성 강화의 도시, 복지도시는 가능할까. 이 시장은 지자체 예산의 낭비 요소를 줄여 최대한 복지정책을 추진하겠지만 장기적으론 지방재정이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라토리엄'이라는 용어는 시민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정확히 3년6개월 뒤 "이제 다 갚았다"고 선언했다. 그 드라마틱한 반전은 재선으로 이어졌다.

논쟁과 주목을 즐기는 시장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 비율이 8:2인 상황에서 한 도시가 독자적으로 복지도시가 될 수는 없다. 진짜 복지도시가 가능하려면 적어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재정 비율이 6:4까지는 돼야 한다."

'모라토리엄 탈출' 퍼포먼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재명 시장은 전략가이자 승부사다. 논쟁과 주목을 즐긴다. 다만 "공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펴면서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이재명 시장이 꺼낸 '무상 공공산후조리'라는 '공공성 강화' 카드는 한국 사회의 복지 논쟁, 그리고 그 자신의 정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성남=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ryuw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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