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평정심..OK저축銀 신화을 쓰다

입력 2015. 4. 2. 05:51 수정 2015. 4. 2.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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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이 1일 삼성화재를 꺾고 창단 첫 우승을 확정한 뒤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안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OK저축은행 창단 첫 우승의 원동력은?정규리그 5R 삼성화재전 대패 후 감독-선수 서로 소통한전과 1차전 16번의 듀스 끝 승리…빅게임 예방 주사김세진 감독 "그냥 경기에 몰두하라" 평정심 주문 효과

'NH농협 2014∼2015 V리그' 남자부 챔피언 결정전(5전3승제) 2차전 내내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한 세트만 따내면 돼"라고 선수들에게 외쳤다. 아직 정상은 아니지만 팀의 리듬을 되찾기만 한다면 시리즈를 뒤집을 수 있다고 믿었다. 지난 시즌 챔프전에서도 먼저 4세트를 빼앗기고도 이후 9세트를 내리 따내며 우승했던 삼성화재다. 2차전 2세트 35-33의 듀스 대접전 속에 간신히 반전의 기틀을 마련해 파죽지세로 현대캐피탈을 눌렀다.

19번째 챔프전을 맞이한 신 감독의 담력과 경험, 승부처에서의 냉철한 판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OK저축은행의 제자들이다. 되돌아보면 삼성화재의 시작은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에서 비롯됐다. 화려했던 영광을 전설로 만든 석진욱 코치도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신 감독의 만류 속에 유니폼을 벗었다. 김 감독은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되자 "더 이상 구차하게 선수생활을 하기 싫다"며 삼성화재를 떠났다. 석 코치는 "그냥 팀에 있으면 알아서 해줄게"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택했다. 자신의 품에서 벗어난 두 제자가 대견하지만, 아직은 정상에서 내려오기 싫은 스승이었다.

● 5차전 그 패배가 새로운 OK의 탄생을 유도했다!

2월 10일 대전에서 벌어졌던 정규리그 5라운드 삼성화재와 OK저축은행의 맞대결. 신치용 감독이 정규리그 우승의 분수령이라고 기억하는 경기다. 당시 21승6패로 팽팽한 선두경쟁을 펼치던 두 팀의 힘겨루기는 예상외의 결말을 낳았다. 삼성화재가 3-0으로 압도했다. 그날 OK저축은행 선수들 대부분은 구름 속에 발이 떠 있는 듯했다.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고, 이상하리만치 서둘렀다. 팀의 패배를 지켜보면서도 김세진 감독은 여유가 있었다. 선수들에게 "그것 봐, 욕심대로 하니까 안 되지"라며 편안하게 말했다.

용인 숙소로 돌아간 김 감독은 새벽까지 모든 선수와 면담했다. 김 감독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선수들의 얘기를 모두 들어줬다. 경기와 승패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때로는 자신에게 불안감을 가진 선수들이, 팀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던 선수들이 속마음을 후련히 털어놓았다. 누구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리더는 때때로 먼저 말하기보다는 들어줘야 한다. 초짜 감독은 그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 OK저축은행은 2연패를 더 했지만, 대화의 교훈은 포스트시즌에서 발휘됐다.

● 큰 경기의 예방주사와 평상심

한국전력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 1세트가 OK저축은행을 챔프전 우승까지 이끄는 결정적 계기였다. 41-39까지 이어진 무려 16번의 듀스에서 OK저축은행 선수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버텼다. 시즌 들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그 세트에서 17점을 몰아친 한국전력 쥬리치의 강타를 막아내며 이겼고, 그 기세로 챔프전까지 올랐다.

제자들은 "경기 해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적당히 긴장하고 그냥 경기에 몰두하라"고 했다. 젊은 선수들은 그 말대로 했다. 모두 긴장했지만 승패를 두려워하진 않았다. 아직 경기를 즐길 연차나 내공은 없지만, 첫 관문에서 힘든 고비를 넘긴 뒤 맞은 예방주사의 효과가 지속됐다. 챔프전 2차전을 앞두고 김세진 감독은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갈 뿐이다. 아직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삼성이 그냥 삼성이 아니다. 레오가 살아나면 우리는 못 이긴다"며 자신과 선수들에게 평정심을 요구했다. 2차전 승리로 우승에 1승만을 남겨둔 순간에도 OK저축은행은 침착했다. 석진욱 코치는 라커룸에서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기뻐하다가 역전패하면 더 뼈아프다. 평소대로 우리가 할 것을 하고 흥분하지 마라"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김 감독은 "(5차전을 위해) 다시 대전에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진다는 것"이라며 안산 3차전에서 끝내겠다고 했다. 우승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빼앗아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배수의 진을 쳤다. 4월 1일 만우절 밤에 결국 삼성화재와 신치용 감독은 제자들에 의해 7년간 지켜온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안산|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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