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증언 "귀신병 알고보니 48년 전 포탄 파편"

고동명 2015. 3. 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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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시스】 고동명 기자= "군인들이 뜀박질하던 사람들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했는데 하필 내가 서 있는 길가에 맞았어. 바로 기절하고 얼마 후 깨어 보니 바지는 피로 범벅이 됐고 등을 만져보니 구멍이 뚫려 있었지. 포탄 파편이 박힌 거야…"

김순혜(78·여) 할머니는 제67주년 제주 4·3 추념일을 앞두고 31일 오후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열네 번째 4·3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12살 소녀였던 1948년 제주 4·3사건 당시 입었던 상처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날 본풀이 마당에는 김순혜 할머니와 그의 남편이자 4·3 피해자이기도 한 양치부(76) 할아버지가 증언대에 앉았다. 양 할아버지는 아내의 고통스런 기억을 들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5남매인 김 할머니는 4·3 때 큰 오빠는 군인에게 총살당했고 3살 막냇동생은 군인 차에 놀란 소에 밟혀 숨졌다.

김 할머니는 군인들이 쏜 로켓탄 파편이 등과 오른쪽 허벅지에 박힌 후 파편제거수술을 받았다. 이후 완치됐다고 믿은 할머니는 결혼하고 아이를 여섯이나 낳고 살며 파편을 맞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나 아이를 다 낳은 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이 시작됐다. 가슴이 불안하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탕탕' 거리는 날이 반복됐다.

여기저기 용하다는 병원에 다녀 봐도 감기라는 말만 할 뿐 병명을 몰라 귀신에 씌었나 해서 굿도 여러 번 했다.

그러던 중 1994년 병원에서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에서 폐에 박힌 파편 조각이 발견됐다. 48년간 몸 안에 있던 4·3의 흔적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수술을 끝내고 나서 보니 파편이 어른 엄지 크기더라. 이게 어떻게 폐 속으로 들어갔을까 놀랍기도 하고 쇳덩이를 가슴에 안아 평생을 살아오느라 그렇게 무서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라며 김 할머니는 얘기를 마쳤다.4·3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생 마음속에 쌓아온 기억을 풀어내 치유하고, 4·3의 진실을 후세대들에 알리는 자리인 4·3증언 본풀이는 지난 2002년 시작돼 올해로 열 네번째를 맞고 있다.

본풀이를 주관하는 제주 4·3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증언자들이 본풀이에 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 본풀이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kdm8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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